그와 그녀의 책장

[세월호를 기록하다], 집요한 취재로 재구성한 악마의 포트폴리오

2015.04.10


인류는 진화사 내내 대충 열다섯 명짜리 무리생활자였다. 이런 세계에서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을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책임져야 할 악마를 찾는 것이다. 사냥에서 뒤로 빠진 겁쟁이가 누구인지, 누가 누구와 부정한 관계를 맺어서 신을 노하게 했는지, 다쳤거나 나이가 많아서 무리의 속도를 떨어뜨리는 게 누군지를 알면 문제를 그럭저럭 해결할 수 있었다. 우리는 대단히 성능 좋은 악마 식별 기계로 진화했다.

문제가 있다. 열다섯 명 무리에서 악마를 찾아내는 데 맞게 진화한 우리의 레이더는 고도로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자주 엉뚱하게 작동한다. 우리 시대의 악마는 탁월한 분산투자자다. 일이 잘못될 때, 거기에는 모든 것을 조종한 거대한 악마 하나가 아니라, 단계마다 조금씩 일을 어그러뜨리는 소심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무심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잔뜩 있다. 이들은 자신이 일을 어떻게 망치고 있는지 인식하지도 못한다. 1부터 100까지 거대한 연쇄 고리에서 어느 한 단계만 정신을 차려도 막았을 일이 가끔 거짓말같이 일어난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곤혹스러운 순간은 독자가 악마를 찾아 끌고 오라고 요구할 때다. 일이 어그러지는 궤적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기사는 보통 인기가 없다. 누가 악마라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주는 기사는 대박이 난다. 하지만 세련된 분산투자자 악마는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는 법이 없다. 십자가에 걸린 것은 악마의 본체라기보다는 그저 여러 바구니 중의 하나일 때가 많다. 그걸 십자가에 단다고 세상은 나아지지 않는다.

[세월호를 기록하다]는 계란 바구니 하나에 현혹되지 않는다. 작가이자 번역가인 저자 오준호는 5개월 동안 33차례 공판을 방청했고, 기자에게는 허용되는 노트북을 쓸 수 없어 메모로 수첩 30권을 채웠다. 거기서 그가 본 것은 거대한 음모가 아니라 무능과 무책임의 촘촘한 대연쇄였다. 읽다 보면 ‘이 사람만 이 때 제대로 판단했어도…’라는 탄식을 몇 십 번은 쏟아내게 되는데, 대상이 한명이기는커녕 겹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욕지기를 내뱉다가도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흠칫하는, 그런 평범하고 본능적인 판단이 겹겹이 쌓여 참사를 만들었다. 악마의 분산투자는 우리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세월호 논의는 “저놈이 악마다”와 “우리 모두 죄인이다”라는, 정반대지만 둘 다 놀랍도록 쓸모없는 양극단을 오갔다. 이 책은 거대한 음모를 찾다 길을 잃지도 않았고 만악의 근원 신자유주의 타령으로 빠지지도 않았다. 양극단을 대신한 것은 집요한 취재로 재구성한 악마의 포트폴리오다. 하나의 거대한 악마보다 훨씬 어렵고 각오가 필요한 상대다. 그래도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진정 세월호로부터 한국 사회를 바꾸려면, 대통령이든 국가정보원이든 유병언 회장이든 이준석 선장이든, 누구 하나 십자가에 못 박고 끝내고픈 유혹부터 떨쳐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덧붙임. 이 책은 지독히 건조하지만, 그래서 감정 동요 없이 읽을 수 있다고는 못하겠다.

천관율
[시사IN] 기자. 6년 동안 정치 기사를 썼다. 2014년 11월부터 사회 기사를 쓴다. 농땡이를 보다 못한 조직이 발로 뛰는 부서로 보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정확하다.

디자인. 정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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