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섹남’ 같은 소리 하고 있네

2015.03.06

실체 없는 하나의 유령이 한국 대중문화 미디어를 배회하고 있다. 바로 ‘뇌섹남’이라는 유령이다. 뇌가 섹시한 남자를 뜻하는 이 신조어는 지난 2014년 5월, 여성지 [우먼센스]에서 기획기사를 낸 것을 기점으로 각종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하지만 명확한 정의 없이 유통되기 시작했다. 매체들은 유희열, 허지웅, 김갑수, 장기하, 나영석 PD 등 서로 화법도 개성도 다른 사람들과, 심지어 tvN [라이어 게임]의 하우진(이상윤)이나 MBC [오만과 편견]의 구동치(최우혁) 같은 캐릭터들까지 ‘뇌섹남’으로 묶는다. 스스로 ‘뇌가 섹시한 남자’라는 표현의 원조라 주장하는 낸시 랭은 2013년 MBC퀸 [토크콘서트 퀸]에서 뇌가 섹시한 남자로 JYJ의 박유천을 꼽으며 “연기할 때마다 눈빛이 바뀌는 모습과 열정적인 모습”을 이유로 들었는데, 사실 이것만으로는 자기 일에 열심인 남자가 섹시하다는 오래된 담론과 뭐가 다른지 알 수 없다. 김보성이 웬만한 도덕적 가치를 모두 ‘의리’로 통칭한 것처럼, 웬만한 내면적인 스펙은 모두 다 ‘뇌섹남’의 요소가 되는 듯하다.

물론 연예인이 알 만한 대학만 나오면 ‘엄친아’, ‘엄친딸’이 되듯 조금 유행하는 개념이 있으면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는 매체의 못된 습관이야 새삼스럽지 않다. 문제는 이토록 자의적이고 불분명한 개념으로 남성의 섹시함을 지시한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유독 뇌가 섹시하다는 표현이 사용된 건, JTBC [썰전]과 [마녀사냥]에서의 허지웅, [비정상회담]의 타일러 라쉬나 에네스 카야처럼 연예인이나 전문 방송인이 아니지만 논리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말할 줄 아는 남성들이 방송 엔터테인먼트의 블루칩으로 떠오르면서다. 기본적으로 상당한 미남이라는 것을 차치하고(사실 매우 중요한 요소지만) 그들의 언변이 섹시할 수 있었던 건, 더 정확히 말해 이성애자 여성들에게 어필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한국 사회에서는 흔치 않게 어떤 문제에 대해서건 합리적인 개인의 입장에서 접근했기 때문이다. 가령 허지웅은 [마녀사냥]에서 춤 동호회에 빠져 애인과의 약속도 지키지 않는 여성의 사연에 대해, 춤의 스킨십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뭔가에 빠져 애인을 배려하지 않는 태도가 문제라고 말했다. 상당수 남성이 이럴 경우 여성의 취미의 자유 자체를 문제 삼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의 비판은 날카롭되 폭력적이지 않았다. 타일러 라쉬가 매력적인 것도, 단순히 한자성어로 상대방을 주눅 들게 해서가 아니라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 안에 남녀 간 소통부재가 담겨 있다는 논리적 해석을 내놓을 수 있어서다. 요컨대 그들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권위를 행사하는 이들이 가득한 한국 사회에서 그나마 소통 가능한 남자들이다. 종종 왜 ‘뇌섹남’이라는 표현은 있지만 ‘뇌섹녀’가 없느냐는 정당한 비판이 나오는데, 사실 이것은 남성의 지성이 여성의 그것보다 중요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합리적 소통이 가능한 남성이 적어 ‘뇌섹남’이 비교 우위를 차지할 수 있어서다.

역시 지난해의 대표적인 신조어 중 하나가 ‘개저씨’라는 건 그래서 흥미롭다. 소위 최초의 ‘뇌섹남’이라 할 수 있는 부류의 장점은 ‘개저씨’의 반대 항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앞서의 [우먼센스] 기사에서 ‘원조 뇌섹남’으로 꼽힌 문화평론가 김갑수는 “여성 입장에서 지성을 갖춘 남자가 자신을 논리적으로 압도한다면 그런 남자가 매혹적인 남자, 즉 ‘뇌섹남’”이라고 정의했다. 완전히 잘못 짚은 셈이다. 합리적 소통능력이 아닌 지적 우월함에 방점이 찍히는 순간 ‘뇌섹남’ 개념은 그대로 ‘개저씨’의 영역으로 전이된다. 제법 배울 만큼 배우고 심지어 인문학적 소양도 있지만 젊은 여자를 만나면 수작을 걸거나 꼰대 짓을 하는 홍상수 영화의 남자들처럼. [시사IN] 고재열 기자가 젊은 여성의 욕망은 연예인과 썸을 타는 것이라 정의했던 것이나, 김갑수와 마찬가지로 종종 매체에 ‘원조 뇌섹남’으로 수식되던 칼럼니스트 김태훈이 페미니즘에 대해 위에서 내려 보는 태도의 글을 쓴 것은, 똑똑하되 ‘뇌섹남’의 진정한 미덕을 놓친 남자들이 벌일 수 있는 최대의 비극이었다.

‘뇌섹남’ 개념의 무분별한 확장이 결과적으로 오염인 건 그래서다. 매체들은 허지웅과 [비정상회담]의 성공 이후 사후적 구성을 통해 언변이 좋거나 지성의 스펙이 높은 남자들에 너 나 할 것 없이 ‘뇌섹남’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심지어 tvN은 아예 서로 전혀 다른 재능을 지닌 남자들을 캐스팅해 어려운 문제를 푸는 걸로 뇌의 섹시함을 증명하는 [뇌섹시대-문제적 남자](이하 [문제적 남자])를 지난 2월 26일부터 방영하기 시작했다. 여성과 소통할 수 있던 남자의 담론은 잘난 척하는 남자의 담론으로 대체됐다. 심지어 이것이 섹시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과 함께. 이것은 ‘뇌섹남’이라는 개념 안에 있던 한 줌의 미덕과 긍정적인 가능성을 내쳤다는 점에서 명백한 퇴행이다. 자신이 시대를 앞섰다는 낸시 랭의 자신감은 그래서 어느 면에선 진실이다. 정말 뇌가 섹시한 남자의 시대는 아직 멀고도 멀어 보인다.

글. 위근우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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