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미식회] 황교익 “우리가 한 끼라도 맛있게 먹으려면 정치를 건드려야 한다”

2015.03.05
“양념치킨은 맛이 없다”, “전통대로라면 명절 음식은 남자가 만들어야 한다”. 황교익은 이렇게 음식에 관해 논란이 되는 발언을 꾸준히 해왔다. 그가 tvN [수요미식회]의 패널로 자리 잡은 이유다. [수요미식회]는 소개되는 맛집에서 음식을 먹는 대신 출연자들이 원탁에 둘러앉아 음식에 대해 평가하고 비판한다. 18세기 프랑스의 ‘미식 클럽’ 중 하나였던 ‘수요회’를 연상하게 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황교익은 음식의 맥락과 의미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하고, 때문에 그가 말할 때면 언제나 ‘교익의 참견’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그는 왜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일까. 실제로 만나본 그는 비판적이라기보다 음식에 관한 자신의 관점이 뚜렷한 사람에 가까웠다. 음식으로 인문학을 할 수 있다고 믿는 황교익을 만났다.

사진 촬영 때 “야외 작업이 많아서 얼굴이 탔다”라고 하던데, 취재를 많이 나가나 보다.
황교익
: 음식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이 글쓰기 재료다 보니 현장이 다양하다. 먹을거리 제조 현장부터 농산물, 수산물 생산, 수확 현장까지 다 간다. 사진도 내가 찍는데, 사진작가와 같이 작업하다가 지금은 혼자 찍는다. 잘 찍는다는 생각은 안 하지만, ‘내가 보는 음식’이라는 시각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으니까.

요즘은 카메라 앞에 서는 입장이다.
황교익
: 다큐멘터리 같은 인간이라 [수요미식회] 같은 예능은 힘들다. 그냥 내 식대로 말하는데, [수요미식회] 팀원들이 나를 받쳐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수요미식회]가 예능적인 잔재미만 있는 프로그램은 아니니까, 내용이 비었다 싶으면 나를 부른다. 그 양반들이 잘 해줘. (웃음)

[수요미식회]에서 “원재료의 맛을 느껴보라”고 말하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가.
황교익
: 음식의 본질에 대해서 집중해봐라, 이런 거다. 음식은 짜고, 맵고, 달고 몇 가지 밸런스만 맞추면 다 맛있다. TV에서 ‘마법의 양념장’이란 게 나오는데 이 양념장은 약간 고소한 맛까지 추가된 거다. 이것만 있으면 재료는 중요하지 않다. 인간의 미각이란 게 단순해서, 먹을 만하게 만들어주기는 참 쉽다. 그래서 다들 이걸로 음식이 맛있다, 맛없다를 분별하려고 한다. 그 외의 다른 맛도 느껴보란 이야기다.

그래서 [수요미식회] 치킨 편에서 양념치킨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건가.
황교익
: 양념치킨은 솔직히 그 안에 닭이 없어도 양념치킨 맛이 난다. 닭이 맛이 없으니까 양념을 대충해서 그 맛으로 먹는다. 진짜 맛있는 건 닭고기가 맛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할 수 있겠지. “맛있는 닭은 어떻게 확보되나?” 외국은 육계를 2.7kg 정도, 우리나라는 1.5kg까지 키운다. 닭을 밀집해서 키우니까 2.7kg가 되려면 오래 길러야 해서 질병으로 죽을 수도 있다. 또, 우리는 닭을 마리로 파니까 닭이 크든 작든 상관이 없는 거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파는 닭다리는 주먹보다 훨씬 커서 한국 사람은 다리 하나로 배부를 수 있다. 근데, 우리나라 닭은 반 주먹도 안 된다. 이건 진짜 잘못됐다.

최근 ‘소울푸드’라 불릴 만큼 양념치킨에 대한 한국 사람의 애정은 상당한데, 방송 후 반응이 안 좋았을 것 같다.
황교익
: 난 저런 큰 맥락 안에서 지적한 건데, “양념치킨이 맛없다”고 하니까 이것만 듣고 발끈한다. (웃음) 하지만 난 이런 말들이 오히려 정상 상태로 되돌려놓기 위한 작업이 될 수 있고 생각한다. 소비자가 “2.7kg짜리 닭을 내놔라” 하면 양계 산업도 바뀌고, 건강한 닭을 키울 거다. 그러려면 소나 돼지처럼 닭도 마리당 팔지 말고 그램당으로 팔아야 한다. 소비자가 요구하면 질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전체 맥락을 방송에서 다 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음식에 대한 맥락을 설명하는 게 [수요미식회]의 장점 같다. 최근 음식 프로그램들이 많아졌는데, 어떻게 보나.
황교익
: 90년대 중반쯤에 일본 방송의 포맷을 가져다가 MBC [찾아라! 맛있는 TV]나 SBS [결정! 맛대맛]과 같은 프로그램들이 많아졌다. 이 프로그램들은 교양이 아니라 예능이고, 하나의 ‘쇼’가 된 것이다. 고발 프로그램도 음식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을 협박하는 것일 뿐이다. KBS [2TV 저녁 생생정보]나 올리브 [테이스티 로드] 같은 프로그램들은 음식이 아니라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음식 포르노다. 예술이 만들어지는 게 다 감정 모방에 의한 건데, 이 감정 모방을 극단으로 써먹는 것 중 하나가 포르노다. 전후관계 없이 감정만 보여준다. 포르노란 게 그렇잖아. (웃음) 다른 사람이 먹는 음식에 대한 만족감을 보면서 내가 만족을 얻는 거지. 이게 다 나쁜 건 아니다. 품격 있게 먹는, 절정의 포르노도 있을 수 있다.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가 그 예라고 본다.

각각의 음식 프로그램이 음식을 바라보는 스타일이 다른데, 맛 칼럼니스트로서 본인은 어떤 스타일인가.
황교익
: 나는 [농민신문사]에서 10여 년간 일한 기자 출신이니까, 있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인문학적 상상력이라고 봐야 한다. 박찬일(요리연구가, 칼럼니스트) 같은 친구는 문학적 상상력을 가지고 있고 감성 전달에 충실하다. 난 문학적 상상력이 약하다. 대신 내가 [고독한 미식가]의 이노가시라 고로처럼 연기는 못하지만, 이노가시라 고로가 왜 그렇게 연기하는지는 분석할 수 있고, 난 그걸 설명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분석적으로 쓰기 위해 현장을 찾아다니는 건가.
황교익
: 재료가 어떻게 재배되는지 봐야 어떤 맛을 내는가에 대한 맛의 그림이 그려지고, 그래야 그 재료를 써서 만든 음식을 평할 수 있다. 현장에 가서 감자를 손에 쥔 느낌부터 알아야 감자 맛의 본질이 내 마음속에 들어온다. 음식의 맛은 생산 현장에 있다. 주방은 거쳐 가는 곳이지, 음식의 맛이 결정되는 곳은 아니다. 요리사는 생산 현장에서 결정된 맛을 증폭시키고 배합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지, 창조자가 아니다. 요리사들이 착각하는 부분이 이 점이다. 자기가 창조자라고 생각하지만, 요리사는 전통적으로 자연의 전달자다. 요리사의 전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고대에는 식재료를 가지고 와서 나눠주는 사람이 요리사의 처음이었을 거다.

요리사의 기원을 상당히 오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황교익
: 현대의 요리사들은 농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상인과 거래를 해서 자연을 모른다. 과거 왕이나 귀족 밑에 있던 요리사는 정말 극소수였고, 현대적인 의미의 요리사는 산업사회 이후에 만들어졌다. 그러면서 스킬만 강조가 된다. 하지만 내 생각에 요리사는 고대에는 사냥을 진두지휘하는 추장이기도 했을 것이고, 음식을 나누는 정치가, 자연에서 받은 음식을 다시 자연에게 돌려주는 제사(고수레)를 지내는 제사장 모두가 결합된 사람이라고 본다. 요리사는 자연에 대해 이해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자연을 어떻게 해석해서 먹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요리사가 자연을 전달해주는 사람이라는 것은 요리 행위를 인문적으로 해석하는 것이기도 하고, 요리사를 전통 안으로 되돌려놓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음식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다. 미술평론가가 고흐의 그림의 해석을 해주면 고흐의 그림이 달리 보이는 거다. 나도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왜 평론가 대신 맛 칼럼니스트란 이름을 쓰나.
황교익
: 음식은 작품은 아니다. 작품은 만든 사람의 분명한 의도가 있다. 그런데 음식은 보통 의도가 약화되어 있다. 이 의도는 요리사의 의도가 아니라 대중의 욕구라고 봐야 한다. 평론이 만든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는 일이라면, 나는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욕구를 들여다보는 게 차이다.

그 욕구를 어떤 과정을 통해 파악하나.
황교익
: 보통 대중 음식들은 그 음식이 탄생하고 번창하는 시기의 시대상과 관련이 깊다. 한국 사회는 전통적인 농업사회였던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70%가 농민이었다. 이후 박정희 정권에 의해 산업화가 되어 농업사회가 한순간에 확 바뀌었다. 그 시대 유행하는 음식은 당시 소비자들의 욕구를 대변한다고 본다. 그걸 보기 위해서 시대상, 정치, 경제적인 부분을 다 들여다봐야 한다. 이걸 던지면 사람들이 공감하는데, 공감이라는 것은 나를 확인하는 과정인 셈이다. “그런 것 같아. 내가 갈비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어?” 그렇게 내 욕구의 정체를 확인하는 거다. 음식을 통해서 인문학이 가능하다고 보는데, 인문학의 본질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얻어내는 작업이다. 난 이게 음식을 통해서도 가능하다고 본다.

관심의 대상이 주로 대중 음식이다.
황교익
: 예전에 어떤 기관에서 소와 관련된 책을 써달라고 해서 삼국시대부터 소 관련 자료를 찾았다. 그런데 없다. 반면 말은 안장, 토우, 기마상 등 엄청나게 널렸다. 소는 민중들의 가축이기 때문에 없는 거다. 조선시대의 양반이 대략 10%인데 90%의 농민들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 시각으로 박물관을 보니까 다르게 보이더라. 조선 음식 관련 문헌들, [음식디미방] 같은 책들을 조선 전체의 기록으로 보면 안 된다. 윤봉길 의사의 [농민독본]에 “조선은 4천년 동안 농민의 나라였습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조선에서 가장 많이 살았던 사람은 농민이니, 역사의 주체도 농민이지. 이걸 대한민국으로 바꾸면 대한민국은 노동자의 나라다. 그러니 노동자의 음식이 대한민국의 음식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먹는 음식에 관한 게 나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노동자가 접근하기 힘든 음식들, 한식 세계화니 하면서 청와대 이런 사람들이 개폼 잡는 음식들, 의미 없다고 본다. 대부분이 노동자인 우리나라 국민이 이 의미 없는 일을 구경하고 있는 것도 화가 난다.

그런 시각이 책 [한국음식문화 박물지]에서 잘 드러난다. 챕터가 ‘밥과 반찬’으로 시작해서 ‘정치’로 끝난다.
황교익
: 이탈리아처럼 우리와 비슷한 경제 수준의 국가들이 유럽에도 많다. 걔네는 잘 먹는다. 노동자들도 파인 다이닝 같은 곳에 가서 한 달에 한두 번씩 나비넥타이 매고, 폼 잡고 먹는다. 우리나라는 절대 못 한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써야 할 돈이 너무 많다. 이게 한국의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못 먹는 이유다. 맛있는 음식도 넉넉하게 제대로 먹으려면 집값, 사교육비, 노후 비용에 있어 풀려나야 한다. 그러려면 정치를 건드려야 한다. 우리의 삶을 비정치적으로 생각하게끔 만들어야 정치권력을 쥘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들은 음식과 정치를 자꾸 떼어놓는다. 조금 더 복잡해졌고 다면화되었다 뿐이지 음식과 정치는 같이 붙어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음식을 가볍게 보는 시선도 많다. 그래서 책 [황교익의 맛있는 여행] 말머리에서 자신의 일을 “문화적인 눈 치우기”라고 말한 건 자조적으로도 보인다.
황교익
: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 실제로 그런 대목이 있다. “내가 하는 일은 눈 치우기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는데, 동의한다. 음식에 대한 글은 진입이 아주 쉽다. 우리 모두 하루에 삼시 세끼는 먹으니까. 그런데 5~6년 쓰다가 다들 나가떨어진다. 글의 질을 유지하면서 계속 새로운 아이템을 내는 게 쉽지 않다. 유자차 하나도 지금 이 유자차의 재료적 특성부터 가공까지 들어가면 엄청 어렵다. 그런데 공부를 한 만큼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도 별로 없다. 영화평론가, 방송전문가와 더불어 사람들이 우습게 보는 영역 중에 하나다. (웃음) 누구든 할 수 있지만, 잘하긴 참 어렵다.

과거보다 맛에 대해 쓰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비판적으로 쓰긴 더 어려워진 것 같다.
황교익
: 다 산업으로 연결되어 있다. 모든 음식은 외식이 아니라 매식이다. 매식의 시대에는 돈이 관여하게 돼 있다. 그게 음식을 정상적으로 소비하지 못하게 한다. 블로그들은 그런 외식 산업에 의해 조종되는 하나의 연결이라고 보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 또 객관적인 음식에 대한 맛없음을 평하려면 논리적인 설명이 붙어야 하는데, 스스로의 기준을 만들어서 그 논리적 설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예를 들어 나는 백종원 씨를 셰프로 보지 않고 사업가로 본다. 그에게는 식재료가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는 그의 식당 음식이 맛있고 싸고 좋다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음식의 재료가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타협의 여지가 없다. 또 동종업계 종사자라서 연대하기보다, 글쟁이는 직업윤리를 지키면서 자신의 기준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면 대중에게 욕을 먹고 이 판에 발을 못 붙일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길 거다. 그래도 글쟁이로 살려면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어떤 계기로 글을 쓰게 됐나.
황교익
: 시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훌륭한 시인들이 쓴 걸 보니까 나는 별게 아니더라. 그래서 방향을 수정해서 신방과를 갔다. 처음에는 미술 평론을 하고 싶었는데 잘 안 돼서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걷자고 해서 음식으로 정했다. 내가 손댈 때만 하더라도 백파 홍성유, 김순경 이런 분들이 일했다. 그분들은 음식이 어떻고, 카드가, 차가 어떻고, 주소가 뭐고, 이런 글을 썼다. 이 정도를 넘어서는 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10년 정도 하면 되겠지 했는데 IMF가 터져서 대중들이 음식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다가 최근에야 다시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나와 같은 일을 하겠다는 후배들도 생겼는데, 안타까워 죽겠다. 만약 내가 처음에 홍성유, 김순경 스타일로 썼으면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했을 거다. 후배들도 나와 다른 영역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영역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황교익
: 산업자본주의에서는 직업이 다종, 다양해지고 점점 섬세해진다. 그 쪼개는 영역을 10년 정도 뒤를 생각하고 의도적으로 쪼개야 한다. 나는 의도적으로 쪼개서 아주 얇게 차지했다고 본다. 다만 의도한 것을 완성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어떤 음식이 나와도 2시간 정도는 썰을 풀 수 있어야 한다. 글쟁이로 살아가려면 나같이 10년은 내다보고 하는 건 괜찮을 거다. 잘게 쪼개보면 엄청나게 많은 게 아직 남아 있다.

앞으로 남은 영역은 무엇일까.
황교익
: 음식이 맛있다는 것을 극상의 아름다움으로 표현하는 것을 생각해보라. 다만, 한국음식으로. 한국 사람들은 한국음식에 대해 공통된 의견을 갖지, 외국 음식으로는 못 느낀다. 음식문화가 선진문화로 들어간다는 것은 섬세해진다는 것이다. 대상에 대한 인간의 감각 자체가 섬세해지는 거다. 이 섬세의 작업들이 누적되고, 그 섬세함이 인간의 근원적인 행복과 동일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미식가로서, 글쟁이로서 들어선 이 길에 대해 만족은 하나.
황교익
: 이제 그냥 가는 거지. 딴건 하라고 해도 못 한다. (웃음) 하루키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세상의 고리에 한번 빠져들면 나오지 못하는 게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들이다. 나도 그냥 그걸 받아들이는 거지. 그나마 나는 행복한 게, 내가 의도한 삶이라는 것이다. 불행한 것으로 보자면 시인이 못 된 것. 시인은 문학을 알고, 예술을 알고, 인격 자체가 고고한 느낌이잖아. 사람들이 칼럼니스트 하면 인격적으로 고고하다고는 생각 안 한다. 남보다 좀 더 음식을 먹어보겠거니 그 정도다. 인간이 최종적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건 인격이다. 일의 능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인품을 대외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완성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글. 이지혜
사진. 이진혁(KoiWorks)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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