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옥고감은 잘못이 없다

2015.02.09

카페는 이미 누군가의 작업공간, 혹은 도서관이 된 지 오래다. 나 역시 할 일이 쌓여 있을 땐 종종 노트북을 끌어안고 근처 카페로 달려갔다. 작은 규모의 카페든,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이든 노트북이나 책을 펼쳐놓고 저마다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남녀를 불문하고 그런 이들이 가장 많은 곳은 스타벅스였다.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거나, 연인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다운로드받은 영화를 보고 있거나, 심지어는 넓은 테이블에 털실을 늘어놓고 뜨개질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친구 중 한 명은 자취방에 인터넷을 따로 설치하지 않아 가끔 같은 건물에 있는 스타벅스로 가서 커피 한 잔을 시킨 다음 와이파이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가끔 들리는 이야기로는, 하루 종일 스타벅스에서 뭔가를 하다가 식사시간이 되면 자리를 맡아놓은 다음 밖에서 밥을 먹고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때문에 스타벅스의 옥고감(옥수수, 고구마, 감자) 출시 소식은 그리 놀랍지 않은 것이었다. 긴 시간을 카페에 머무는 누군가에겐 제법 괜찮은 식사거리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3,800원이라는 가격은 쉽게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근거 불명의 여성혐오에 가까운 ‘스타벅스 가는 여자=된장녀’ 논란과 구황작물로서 옥고감의 이미지가 겹쳐지며 벌어진 일이었다. [파이낸셜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실제 대형마트에서는 옥수수 하나에 1,200원, 고구마와 감자는 100g당 각각 400원, 430원에 판매 중이다. 원가만 따지자면 옥고감 세트보다 훨씬 더 저렴한 셈이다. 다만 스타벅스에서 실질적으로 판매하는 것이 커피나 음식이 아닌, 공간과 시간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현재 스타벅스에서 판매 중인 음료와 먹거리 중 가장 저렴한 것은 각각 오늘의 커피(숏 사이즈 기준 3,300원)와 바나나(한 개 1,500원)다. 그러나 커피는 포만감을 주지 못한다. 바나나 또한 최소한 다른 음료와 함께 섭취하거나, 1인당 두 개는 먹어야 어느 정도 배가 찬다. 반면 옥고감은 실제로 먹어보면 알 수 있듯 두 명 정도가 나눠 먹어도 괜찮은 양이고, 스타벅스에서 판매하는 대부분의 베이커리류보다 취향도 덜 타는 음식이며, 건강에도 나쁘지 않을뿐더러 가격 면에서도 훨씬 저렴하다. 카페가 “커피를 미끼 상품으로 내걸고 일정 시간 동안 공간을 빌려주는 업종, 즉 초단기 부동산 임대업”(박해천, [아파트 게임])이 돼버린 지금, 옥고감을 구매한다는 것은 가장 적은 임대료를 지불하고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스타벅스의 공간을 대여하는 것과 같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되묻는다. 도대체 왜 카페에서 공부나 일을 해야 하냐고.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집에서 해결해도 충분하지 않냐고. 웬만한 방보다 훨씬 더 안락하게 연출된 스타벅스의 환경은 거기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 스타벅스 홍보팀 관계자는 “실제로 고객들이 스타벅스 매장에서 얼마나 긴 시간을 보내는지는 따로 체크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처음부터 ‘제3의 공간’을 표방해왔다”고 말했다. 들릴 듯 말 듯한 음악, 포근한 소파, 적당한 소음, 널찍한 매장, 거의 모든 자리마다 설치된 콘센트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와이파이, 아늑한 조명 밝기, 춥거나 덥거나 적절하게 조율되는 실내 온도 등은 다른 카페와 달리 스타벅스가 처음부터 일관되게 신경 써왔던 부분이며, 그들 스스로는 이것을 ‘스타벅스 익스피리언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스타벅스는 분명 집이나 사무실과는 다르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그리는 ‘나만의 공간’의 이상향에 가깝다. 옥고감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 중 “3,800원에 옥수수, 감자, 고구마를 먹기 좋게 요리해서 추울 때나 더울 때나 쾌적하게 강남 한복판에서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먹게 해줄 수 있는 놈이나 지적질 해라”라는 말은 스타벅스와 옥고감을 둘러싼 논쟁의 본질을 꿰뚫은 것이다.

오래 앉아 있다고 해서 누군가 눈치를 주지도 않는다. 주인의 존재가 딱히 신경 쓰이는 것도 아니다. 요컨대 스타벅스는 몸뿐 아니라 마음의 편안함까지 가져다준다. 누구라도 5,000원 정도만 지불하면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내가 머물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공간에 대한 이만큼 확실한 투자가 또 있을까? 폭신한 소파를 배치할 만큼 넓은 방을 얻기 위해서 적게는 천만 원, 많게는 1억 원에서 2억 원을 모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과연 더 나은 삶인 걸까? 그렇다면 그 금액을 다 모으는 날이 정말 오기는 하는 걸까? 젊은 세대의 잦은 카페 행(行)을 세상물정 모르는 소비 패턴으로 해석하거나, 도서관이나 스터디룸에서 해도 충분하지 않냐고 지적하는 것은 그래서 적절하지 않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앉아서 일을 하고 공부를 할 수 있는 물리적인 뜻에서의 공간이 아니다. 의자와 책상, 침대가 있다고 무조건 방이라고 부를 순 없듯, 안락하고 쾌적하며 기왕이면 몇 시간이나마 제법 풍족하게 살고 있다는 느낌을 안겨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지난해 12월, 20대가 만드는 웹 매거진 [미스핏츠]의 한 필자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띄운 글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최 부총리가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 때문에 기업들이 겁이 나서 인력을 뽑지 못하고 있는 만큼 노동시장의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말한 뒤였다. “강남에 토익 학원 빌딩은 높아져만 가는데, 지방에서 올라온 내 친구 집은 좁디좁은 세 평 방입니다. 스타벅스 커피 마신다고 팔자 좋은 대학생 아닙니다. 오래오래 눌러앉아 눈치 안 보고 이용할 공간 찾아, 빌딩숲에서 갈 수 있는 ‘자리’ 찾는 겁니다.” 이것은 대학생뿐 아니라 취직한 후에도 안정적인 자리를 잡기 힘든 환경에 놓인 20~30대 젊은이들 대부분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옥고감이 스타벅스의 상술이든 뭐든, 아무래도 상관없다. 최소한 밥버거나 그저 그런 편의점 음식을 사 먹는 것보다는 내 몸 하나 편안할 자리를 보장받으며 옥수수와 고구마, 감자를 먹는 게 더 나을 테니. 물론, 앞으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이 얼마나 더 낮아질지는 모르겠지만.

글. 황효진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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