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를 위한 나라는 없다

2015.02.02

2년 전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자 직업을 묻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정기적으로 운동을 배운다든가, 평일 낮 관공서 등에 들러서 낯선 사람들과 대화할 시간이 비로소 생긴 덕분이었다. 출퇴근을 하지 않으니 대답은 주로 “집에 있어요” 정도였는데, 직업이 없는 나의 처지에 대해 상대방들은 여지없이 묻지 않은 이야기를 더해주고는 했다. “여자가 집에 있어야 밖에서 일하는 사람 마음이 편하지. 여자는 놀아도 돼요”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또래의 남자, “그러면 얼른 예쁜 아기를 낳아야겠네”라며 기쁜 표정을 짓는 엄마뻘의 아줌마들에게 분명 악의는 없었다. 그러나 ‘일하지 않는 유부녀’라는 나의 상황은 분명 그들에게 일종의 신분으로 이해되었고, 그것이 누구나 참견하고 쉽게 단정 지을 수 있을 정도로 낮은 등급이라는 것을 파악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말하자면 나는 주부로서는 ‘불가촉천민’이었다. 회사를 포기하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도모하자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신중한 가족회의가 수차례 있었지만, 노는 것처럼 보이는 정도의 살림에 육아에서조차 자유로운 형편을 인지할수록 점점 실체 없는 눈칫밥을 먹는 기분이었다. 방송은 하루 온종일 뼈를 고아 보양식을 만들고, 칫솔로 온 집 안을 청소하고, 말리고 닦고 조여서 물 샐 틈 없이 가계를 정비하는 주부의 상식들을 오전 내내 공표했다. 주식과 부동산으로 재산을 증식시키거나, 아이를 길러 명문 대학에 진학시키는 것이 주부의 목표라고 사람들은 서슴없이 말했다. 좋은 주부가 되는 길은 멀고 험해만 보였지만, 한편으로 세상은 점점 더 주부란 뻔뻔하고 이기적인 족속들이라 비난하기도 했다. 돈을 벌지 않으니까. 주부가 필요 이상의 일을 감당해야 하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부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폄하당하는 것도 이유는 같았다.

그러나 사실 돈은 핑계에 불과한 것이었다. 출산을 경험한 친구들은 전업을 선택했건 복직을 계획했건 하나같이 음식이 묻은 아이의 볼에 입을 맞추다가도 “둘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아이의 이유식과 남편의 반찬 투정을 동시에 감당하면서, 옛날 어머니들의 희생과 현대 연예인들의 몸매 회복에 한꺼번에 비교당하면서, 주부들은 가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책임이자 원인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남편의 돈’으로 아이를 기른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쉽게 ‘아내의 손’으로 해결되는 문제들을 잊어버린다.

일하는 엄마들이 월급의 대부분을 대리 양육자에게 쏟아부으며 일터의 자리를 보전해도 양육의 책임을 나눠지는 것은 아빠가 아닌 이들의 엄마, 더 늙은 주부다. 심지어 양육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고충을 털어놓을라치면 직업인으로서의 전문성이나 건강한 모성을 의심하는 간편한 힐난을 듣기나 할 뿐이다. 과연 “돈 버는 게 유세냐”는 논란에 휘말려본 남성이 얼마나 될까. 결혼과 출산은 여성에게 할당량이라도 있는 듯 죄책감을 부여하는 시스템이며, 경제력으로도 여성이 면죄부를 구할 길은 요원하다. 어떤 선택을 해도 주부들의 기회비용은 참작되지 않으며 그런 분위기에서 주부들을 이기적이라고 경멸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다. 올해 방송된 SBS [피노키오]에서 악인으로 묘사된 송차옥(진경)은 야심 찬 직장인인 동시에 자신의 아이를 포기한 나쁜 엄마였고, tvN에서 방송 중인 [일리 있는 사랑]의 김일리(이시영)는 아이가 없는 대신 시누이와 시어머니의 간호라는 양육의 대체 경험을 통해서만 가족의 인정을 얻는 존재다. 다른 유형의 여성을 제시하려는 드라마에서조차 결혼은 여성에게 추심하듯 과도한 책임을 묻고, 이것은 집요하며 가혹한 세상의 시선이 반영된 결과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주부들은 명백히 약자 집단이다. 소속이 없고 롤모델이 불분명한 이들은 연대에 실패하며 배려받지 못한다. 노키즈존의 공분과 전업 양육자의 어린이집 이용 제한 정책이 일관되게 드러내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눈앞에서 치워버리려는 편의주의적 발상이다. 정부와 기업이, 사회가 주부에게 원하는 것은 묵묵히 몫을 해내는 것일 뿐 이들의 행복에는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대신 가족의 행복으로만 성취가 설명되는 주부들에게는 ‘보람’만이 허락된다. 일하는 엄마들이 전업주부를 비난하고, 전업주부들은 외동 자녀를, 자녀가 없는 가정을 비난하는 것은 그런 사회에서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보람의 크기는 쉽게 수치화되고, 비교하기 적합한 형태로 정돈되며, 주부들의 인생을 긍정하는 데 간편하게 동원되고는 한다. 세상이 만만한 약자들을 갑자기 존중해주거나, 주부들이 문득 스스로 행복해지는 비법을 발견할 리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상호비방의 연쇄에서 탈출하기 위해 나는 적어도 보람에 집착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밥보다 잠을 선택한 남편을 아침부터 깨워서 굳이 접시를 들이밀거나 노하우로 무장한 주부들의 블로그를 탐독하지 않아도 큰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믿기로 했다. 대신 누가 얼마를 벌고, 누가 무엇을 키우든 가정 구성원이 결정한 일에 대해 외부의 누구도 함부로 간섭할 수 없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불가촉천민인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부의 자격, 기혼 여성의 덕목으로 무장한 세상의 잣대들이 접촉해오지 않는 한, 적어도 나의 행복은 내가 판단할 수 있을 테니.

글. 윤희성(객원기자)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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