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남겨진 사람들이 슬픔을 마주하는 법

2015.01.28

여자(리즈 위더스푼)의 발은 피로 물들었다. 4,000km가 넘는 여정은 험난하고, 하이킹에 서툰 여자는 한계에 봉착했다. “언제든 그만두고 싶을 때는 그만둬도 괜찮다”는 엄마의 말이 떠오르지만 여자는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실존 인물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 영화 [와일드]는 삶의 모서리에서 무작정 도보여행에 도전한 셰릴 스트레이드의 석 달여 간에 대한 소상한 기록이자 묵묵한 관찰이다. 엄마의 죽음 이후 마약과 외도에 빠져버린 그녀는 결국 이혼에 이르게 되고, 너무나 망가져 버린 자신의 삶을 걱정하는 친구 앞에서 충동적으로 미국 서부를 종단하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당연하게도 변변한 준비 없이 시작한 여행은 고단하고, 외로우며,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영화는 관객들에게 그녀가 살아남을지, 도전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 궁금해하거나 긴장하라고 부추기지 않는다. 처음부터 관객은 셰릴이 여행의 끝에서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음을 직감할 수 있으며, 영화가 하는 일은 관객이 그녀와 함께 그 순간을 맞이할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하는 것뿐이다.

셰릴과 같이 엄청난 삶의 굴곡을 지나지 않더라도, 지난 잘못을 청산하고 바람직한 모습을 되찾겠다는 다짐은 누구나의 일기장에 쓰여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그 흔해 빠진 다짐이 진심으로 삶을 변화시키기까지 얼마나 지난한 실패와 오류의 역사가 필요한지, 그 역시 알고 있다. 어쩌면 전형적인 이야기임에도 [와일드]가 진부해 보이지 않는 것은 영화가 보여주는 여정이 주인공의 경험인 동시에 실패의 과정에 대한 효과적인 은유이기 때문일 것이다. 멀리서 볼 때 웅장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그 길을 통과하는 사람에게는 온통 고난의 환경이다. 짊어진 배낭은 어깨와 허리에 지워질까 싶은 상처를 남기고, 다 읽은 책장을 태워버리는 과감한 결단이 없이는 그 무게를 내내 견디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굳은살이 생기듯 여행자는 어느새 험한 자리를, 거친 음식을, 추위와 어둠을 받아들이고 익숙해진다.


결국 슬픔은 증발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익숙해지는 것으로 극복되는 것이다. 지난 연말 시상식에 참석한 박영규는 노래를 부르며 “빛나는 배우가 되면 하늘에 있는 아들에게 내가 더 잘 보일 것”이라는 수상 소감을 남겼다. 그리고 며칠 뒤 연예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광기는 세상을 떠난 아들의 생전 모습을 합성해 완성한 가족사진을 리포터에게 보여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흔적은 사라지지 않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남겨진 흉터를 내보이기까지는 무수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 역시 꼭 일 년 전 엄마를 잃었다. 마약에 빠지거나 이혼으로 치닫지는 않았지만 일상은 급속도로 무너졌고, 감정에 휘둘리기 시작하자 마약이나 이혼은 엄두도 낼 수 없을 정도의 무기력과 우울감이 엄습했다. 한 발자국이라도 그 지옥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내가 슬픔에서 도망치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부터였다. 엄마의 안부에 대해 “죽었다”는 표현을 쓰지도 못할 정도로 현실을 외면하는 내내 내가 시달린 것은 원망과 분노, 거대한 죄책감이었고 슬픔과 그리움은 수많은 고통을 겪은 뒤에나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말하자면 떠난 사람에게 이입되어 있었던 감정의 주체를 나로 되찾는 일이란 각자의 몫이라서 그 방법과 시간에 대해서는 누구도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다.

여행은 빠른 속도로 감정들을 복습하게 만들고, 끝내 여행자가 자신의 슬픔을 직면하게 만든다. 그리고 셰릴의 슬픔은 스스로 차고 넘치며 제 크기를 찾아간다. 몸집보다 큰 배낭을 메고 일어서기조차 어려웠던 그녀는, 여행의 말미에서는 제법 가뿐하게 가방을 감당해낼 뿐 아니라, 배낭에서 해방되는 대신 짐과 자신의 균형을 찾는 것에서 구원을 발견한다. 무리하게 용서하거나, 치유와 참회를 확인하는 것만이 회생의 징조는 아니다. 여행을 통해 마침내 셰릴이 토해낸 말은 “엄마가 보고 싶다”는 지극히 평범한 감정이었다. 슬퍼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배낭을 나눠 들자는 호의나 빨리 배낭을 벗어버리라는 격려가 아니라 그저 방해받지 않고 어깨가 짓눌린 채 묵묵히 걸을 시간이다. 그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모두가 누군가의 노래, 누군가의 사진과 여행담처럼 빛나는 흉터를 지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슬픔 다음을 더듬어보기 위해서는 슬퍼하는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야성적이며 자연스러운 삶의 규칙은 아닐까.

글. 윤희성(객원기자)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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