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둥 “[러브레터]를 통해 다 괜찮다는 위로를 받았어요”

2015.01.22
강기둥은 무대 위에서 화를 내거나, 잔망스럽게 떠들거나, 입을 닫는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면 저러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 얼핏 붕 떠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과 함께 그는 외로움과 불안함의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반전의 폭은 제법 크고, 그 깨지기 쉬운 연약한 마음은 연민 혹은 매력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동명의 영화를 뮤지컬로 만든 [러브레터]에서도 강기둥은 좋아하는 마음을 무뚝뚝하게 감춘 소년 후지이 이츠키 역으로 무대에 선다. 두 번째 ‘인터미션’에서 만날 이는 속을 알 수 없어 더 매력적인 제주 소년 강기둥이다.

극단 달나라 동백꽃에서 했던 작업들도, 외부에서 한 [히스토리 보이즈]나 [도둑맞은 책]도 모두 연극이잖아요. 캐스팅 소식 듣고 많이 놀랐어요. 내가 본 강기둥이 맞나 해서요.
강기둥
: 깜짝 놀랐죠? (웃음) (변)정주 연출님이랑 예전에 [우리들의 언어영역]이라고 작게 음악극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의 인연으로 작년에 [도둑맞은 책]을 했는데 어느 날 “뮤지컬 할 수 있겠냐?” 하시길래 “하면 좋죠!” 이랬죠. 주변에서도 많이 도와줘서 지금은 재밌는데 좀 어색한 지점도 없지 않아 있어요. 마이크를 통해서 목소리가 전달되는 게 처음에는 많이 어색했거든요. 솔직히 말도 안 되죠. 제가 보기에 2~3년 연극 하다가 턱 뮤지컬을 하는 게 바른 케이스는 아닌 것 같거든요. 주변에서도 제가 뮤지컬을 할 줄 몰랐으니까 “얼~ 뮤지컬 배우! 뮤배 아니야 뮤배!” 이러면서 놀림도 당하고. (웃음)

그래도 요즘엔 연극, 뮤지컬을 따지지 않고 다양하게 하는 배우들이 많으니까요. 영화 [러브레터]는 언제쯤 처음 봤어요?
강기둥
: 고등학교 때 처음 보고 그 이후로도 되게 좋아해서 자주 봤어요. 세게 팍 들어오는 게 아니라 스윽 들어오는 그 느낌이 좋아서 지금도 공연하다가 좋은 장면이 있으면 꼭 다시 보게 돼요. 여자 이츠키가 아파서 병원 가는 장면에서 할아버지랑 엄마가 나이랑 시간 가지고 싸우거든요. “병원까지 1시간이나 걸렸어요.” “아니야. 40분, 정확히는 38분이야.” “아버님 일흔다섯이세요.” “아니야, 일흔여섯이야.” 이런 거 보면 이와이 슈운지는 좀 변태 같기도 한데 (웃음) 그런 디테일함에서 감동 먹었던 것 같아요.

[러브레터]에서 소년 이츠키 역을 맡았잖아요. 창가에 언뜻언뜻 보이는 모습이 많은 사람에게 각인되어 있는 배역인데 부담스럽진 않았어요? (웃음)
강기둥
: 히히. 정주 형이 “그 소년 있지?”라고 하길래 “아, 학생 중 한 명이에요?”라고 했었어요. 자전거 타고 다니는 애라길래 “어… 되게 잘생기지 않았어요?”라 물었더니 “뭐, 난 잘 모르겠는데?” 그러더라고요. 그렇게 얘기한 거 보면 형도 저를 외모로 뽑진 않았을 거예요. 그건 제가 가질 수도 없는 거니까 (웃음) 전 소년의 마음을 알려고 많이 노력했죠.

감정을 드러내는 인물이 아니기도 하고, 여자 이츠키의 기억 속에서 구현되는 인물이기도 해서 소년 이츠키의 감정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게 쉽진 않았겠네요.
강기둥
: 그 고민을 많이 했죠. 얘한테 관심이 가는데 부끄러워서 숨기고 싶어 하는 아이를 어떻게 보여줘야 하나. 처음에는 되게 싸가지 없는 애인 줄 알았다가 나중에 봤을 때 ‘아, 그게 아니었구나’라는 걸 알게 해줘야 하니까요. 지금도 이러저러한 것들을 해보고 있는데, 현재까지는 ‘미숙함’이라고 생각해요. 고무줄 자르고 가는 걸로 관심을 드러내는 애들도 있지만, 얘는 멋있 (푸흡) ‘나에게 너는 관심 밖이야’ 같은 뉘앙스이면서도 장난은 치고 싶은 마음이니까요.

‘후지이 이츠키’라는 이름을 적은 도서카드를 보여주며 “후지이 이츠키 스트레이트 플러쉬” 하는 장면에서 그 장난기가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영화에서는 표정이 거의 없지만 기둥 씨의 이츠키는 그 장면에서만큼은 씨익 하고 웃으니까요.
강기둥
: 인물이 다르기도 하지만, 작가님이 이걸 쓰실 때 영화보다는 원작 책을 많이 보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영화에 없는 장면도 꽤 있고, 자전거 불빛으로 시험지 맞춰보는 장면에서는 뒤로 불빛들이 움직이거든요. 그런 장면들에서 영화로는 표현이 안 됐던 소년 이츠키의 풋풋한 모습이 더 그려졌죠.

장난치는 중학생이었어요?
강기둥
: 전 남중 나왔어요. 싸움 구경이나 다녔죠. (웃음) 만화 같은 거 그리는 걸 좋아해서 따라 그리기도 하고, 반 애들로 만화를 그리기도 했었어요. 근데 나중에는 저보다 더 잘 그리는 애가 있어서 그냥 걔 것을 봤죠. 관심받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장난치는 거 좋아하고, 노는 거 좋아하고. 쑥스러운 건 오히려 고등학교 때 심했죠.

왜요?
강기둥
: 남중 다니다가 안양예고를 갔으니까요. 그리고 그때 여드름이 있었거든요. (웃음) 거기는 남학생이 더 적단 말이에요. 여자가 너무 많아. 근데 예쁜 애들만 많아서 너무 신세계였어요. 누굴 좋아해 이런 것도 없고 다 예쁘니까 부끄러워서 말도 못 했어요. 근데 낙서하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숙제 잘 해 가면 선생님이 칭찬도 해주고 하다 보니까 여자애들이 와서 미술 숙제를 부탁하는 거예요. 날 갖고 논 거지. 갖고 논 거예요!

그래도 다 해줬나 보네요. (웃음)
강기둥
: 그럼요. 예쁘니까 부끄러워서 “싫어” 이런 말도 못 했어요.

제주도에서 태어나 자란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안양예고까지 갈 생각을 했어요?
강기둥
: 전국에서 연기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안양예고만 있는 줄 알았어요. (웃음) 중학교에서 50주년 축제를 크게 했는데 연극반에서 연극을 올린다고 하길래 대놓고 장난칠 수 있는 기회다! 라고 생각했죠. 한얼소극장에서 가족극단을 운영하는 이건동 교수님이 당시 초빙교수로 오셨었어요. 근데 중학생들한테 뭘 가르치겠어요. 재밌게 즉흥 연기나 하고 그랬는데 그래도 저희 이야기를 한다고 창작극을 만들어주셨거든요. 너무 재밌었어요.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경험을 해버렸죠. “바닷속으로 들어가서 물고기를 보세요” 했는데 진짜 물고기가 보였으니까. 그걸 내가 안 봤다고 할 수도 없고. 봤는데. 그런 거에서 좀 헤어나질 못해서 하고 싶다고 했더니 선생님은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힘드니까. 속으로 자기도 하면서 나보고는 하지 말라고 하냐! 그랬죠. (웃음)

집에서는 반대 안 했어요?
강기둥
: 반대하셨는데 엄마는 제가 한 번 하고 싶어 하면 꼭 해야 된다는 걸 아니까 떨어지면 공부만 하기로 약속하고 시험을 보게 해주셨어요. 시험을 보러 갔는데 제 앞에 있는 애가 너무 잘생긴 데다 특기로 탭댄스를 추는 거예요. 난 탭댄스 할 줄도 모르는데! 그거 보고 기죽어서 계속 떨어졌다고 울고 그랬어요. 엄마도 승질나서 왜 약속 안 지키냐고 그러고. 근데 붙어버렸죠. (웃음)

뭐 때문에 붙은 것 같아요?
강기둥
: 인터넷으로 찾아봤더니 ‘특기 잘할 거 아니면 준비하지 마라’고 쓰여 있어서 준비를 안 했거든요. 근데 잘생긴 고3 형이 특기 뭐 준비했냐고 물어서 아무것도 안 했다고 했더니 (정색하고) “여러분들, 특기 준비하셔야 합니다” 이러는 거예요. 순간 내가 얘네들보다 잘하는 게 뭘까 생각해서… 제주도 민요 했어요. 그것 때문에 붙은 거 같아요. ‘오돌또기’라고 약간 아리랑 같은, 일할 때 부르는 그런 느낌이거든요. (노래 부르며) “오돌또기 저기 춘향 나온다” 이런 거. 아주 굿 초이스였어!

남녀공학에 혼자 하는 서울 생활에, 여러모로 모든 게 새로운 경험이었겠네요.
강기둥
: 한창 예민할 때잖아요. 5시에 학교 끝나면 갈 데가 없는 거예요. 서울이 처음이니까 길도 잘 몰라서 어딜 가기도 힘들고. 이모 집에서 살았는데 그 집에도 다 딸들밖에 없었어. 같이 놀 사람이 아무도 없었죠. 과제를 성심성의껏 다 해도 7시, 8시밖에 안 돼요. 그냥 잤어요. 근데 잠이 와요? 안 오지. 그때 잤으면 키라도 컸을 텐데. (웃음) 불을 다 꺼도 깜깜하지도 않아. 그게 더 짜증 나! 이불 속에서 막 울고 계속 생각만 하는 거예요. 너무 많이 외로워서 다시 내려가겠다고도 했는데 제주도 친구들이 거기까지 갔으면 뭐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한 학기 지나고 나니까 다 친해졌죠. (웃음)

사인할 때마다 ‘기둥 할 때 강기둥’이라고 쓰던데, 이름은 누가 지어주신 거예요?
강기둥
: 어머니가 지어주셨어요. 원래는 주로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는데 어머니가 아들 이름은 기둥으로 하고 싶다고 해서 이렇게 됐죠. 강씨 집안의 기둥이 되어라 뭐 그런 거였겠죠. 근데 뭐 지금은 제주도를 떠나 있으니까. 학교에서는 가나다순으로 번호를 매기니까 늘 1번이었거든요. 유치원 때 강건우라는 애가 있어서 그때 딱 한 번 2번을 했네요. 건우 잘 지내나. (웃음) 어렸을 때는 이름을 바꾸고 싶어 했어요. 원기둥, 삼각기둥 나올 때마다 놀림받았으니까요.

1월 초에 [러브레터]를 봤는데, 혹시 가족이 왔었나요? 커튼콜 때 누군가를 보고 손을 흔들더라고요.
강기둥
: 아, 그날 제주도에서 외삼촌이 가족들 다 데리고 오셨었어요. 저희 어머니가 반대를 하셨었는데 저 연극 할 때마다 계속 보시더니 이제는 무대를 좋아하시게 됐어요. 엄마는 아들이 무대 위에서 이런 걸 하고 있다고 친척들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못 보여주니까 아쉬우셨나 봐요. 지난번 [로풍찬 유랑극단] 공연할 때 비행기 다 태워서 친척들을 데리고 온 거예요. 가족단관을 30명을 했어. (웃음)

아무래도 그 가족단관 날 제가 [로풍찬 유랑극단]을 봤나 봐요. 제 주변으로 관객들이 서로 안부를 묻고 있었거든요. (웃음)
강기둥
: 가족 같은 분이셨구나. (웃음) 아유, 근데 지금 이게 지지인지 연민인지를 모르겠어요. 흐흐.

표현법은 모두 다르지만, 이츠키나 [로풍찬 유랑극단]의 하림, [왕의 의자]의 왕은 모두 진짜 속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면에서 닮았네요.
강기둥
: 사람이 100%의 마음을 드러내고 살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온전히 보여주면 부담스러울 거고, 그럼 서로가 다치겠죠. 그래서 캐릭터들도 그런 시선에서 많이 봤던 것 같아요. 처음 본 연극이 [휴먼코미디]였어요. 어떤 장면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배우가 숨을 한 번 후 하고 뱉었는데 그 순간 모든 관객이 거기에 빠져드는 거예요. 저한테는 그게 현실에순간을 영원으로 바꾼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렇게 하려면 인간에 대한 이해를 잘 해야 하죠. 이면에 더 관심을 갖는 것도 같이 공유하고 품을 수 있는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해서예요.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츠키 가사를 보면 “피어나지 않은 벚꽃”, “비를 머금은 구름” 같은 게 있어요. 이츠키는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것을 보거나 찰나의 순간을 느끼죠. 이면의 것을 좋아한다는 느낌이 저와 닮았어요.

그렇다면 강기둥도 많이 감추는 편인가요?
강기둥
: 솔직히 말하면 오늘 오면서도 되게 많이 떨렸거든요. 저 사실 낯가림이 되게 심해요. 사람들에게 밉보이는 걸 싫어했고, 고등학교 때는 혼자 있었으니 다칠까 봐 걱정도 많았던 것 같고. 그래도 요즘은 나라는 사람이 그렇게 나쁜 맘 먹고 사는 사람 아니니까 (웃음) 더 얘기해도 괜찮다고 주문을 거는 편이에요. 생각이 많아요. 극단을 처음 들어갈 때도 그랬어요. 저랑 장인섭이라고 [달나라 연속극] 초대 오은창을 한 친구에게 제의가 들어왔는데, 그 친구는 들어가고 싶어 했고 저는 좀 걱정이 많았거든요. 걔랑 저랑 달라서 서로를 부러워했죠. 걔는 연애 되게 많이 하는 스타일이고, 저는 한 번 하면 되게 오래 하는 스타일이고. 고민 끝에 들어갔는데 저는 남고 그 친구는 이제 없네요. (웃음) 그 친구는 영화 쪽에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극단 작업들에 비해, 좀 더 개인을 들여다보는 [러브레터]를 했는데요. 이 작품은 어떻게 기억될 것 같나요?
강기둥
: 극단 작품들은 인물을 표현하면서도 개인이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계속 생각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어요. 정말 좋은 연극이고, 연극이 꼭 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러브레터]는 그런 지점은 크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위로를 좀 더 받았어요. 어떤 기억에 대해 그걸 잊지 못해 현실을 잘 살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그걸 안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어요. 히로코와 이츠키를 통해 그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기억이라는 것은 지운다고 해서 지워지는 것도 아니고 받아들인다고 해도 괜찮게 살 수 있다는 걸 확인한 것 같아요. 인생 살아가는 게 다 그런 거니까. 대학교 초반에 제주도 친구랑 놀러 갔다가 친구가 사고로 죽었어요. 예전에는 그때 장면만 떠올려도 몸서리치고 그랬는데, 지금은 생각해보면 그냥 아련해요. 걔도 잘 지내고 있겠죠. (웃음)

글. 장경진
사진. 이진혁(KoiWorks)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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