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나 페이와 에이미 폴러는 왜 빌 코스비를 조롱했을까

2015.01.19

지난 11일 진행된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앞두고 대중의 호기심을 모은 것은 수상 내역만은 아니었다. 3년째 공동으로 진행을 맡은 티나 페이와 에이미 폴러는 참석자들을 짓궂게 놀리는 오프닝 모놀로그로 호평을 받아왔는데, 올해 언론은 시상식 전부터 티나 페이에게 참석하지도 않을 빌 코스비에 관한 농담을 준비했는지 질문할 정도로 큰 관심을 표해왔다. 코미디 업계의 거물인 빌 코스비는 최근 15명의 여성들을 30년 전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바 있으며, 10년간 지속되어온 이러한 의혹에 대해 티나 페이가 꾸준히 언급을 시도해온 까닭이었다. 그리고 티나 페이와 에이미 폴러는 영화 [숲속으로]를 언급하며 “잠자는 공주는 아마 빌 코스비와 커피나 한잔 하는 줄 알았을 것”이라는 멘트로 피해자에게 몰래 약물을 먹였다는 빌 코스비의 범죄 수법을 빗대었다.

성범죄가 농담의 영역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날 티나 페이와 에이미 폴러가 노골적으로 빌 코스비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단지 자극적인 소재를 편의로 사용한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최근 빌 코스비는 방송과 투어가 연이어 취소되는 위기 끝에 캐나다에서 공연을 펼쳤으며, 이 자리에서 “내 옆에서는 마실 것을 조심해라”는 말을 통해 자신의 사건을 농담의 소재로 삼았다. 가해 용의자가 혐의를 웃음으로 치환하는 것은 기만적이며 폭력적인 행동이다. 그럼에도 큰 권력을 가진 남성을 나서서 비난하는 사람은 드물었고, 실제로 티나 페이와 에이미 폴러의 농담에 대해서도 객석은 대부분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을 드러냈다. 두 사람의 농담은 동종 업계의 거대한 힘에 대한 도전이었으며, 피해 여성들의 편에 서주지 않는 많은 사람들을 향한 도발이다. 그리고 이들이 이러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저변에는 미국 연예계에서도 유난히 남성 중심적인 분위기로 유명한 코미디 업계에서 여성의 입지를 넓히려 애쓴 두 사람의 역사가 있었다. 성공했기에 맞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공하기까지 어려움을 겪었기에 약자의 입장을 대변할 자격을 얻는 것이다.

다양성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현대 미국의 연예계에서도 이성애자 남성은 여전히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이것은 너무 오래된 나머지 희미해지기까지 하는 사실이다. 최근 러셀 크로우는 인터뷰에서 “할리우드의 여배우들이 40대에도 21살 순진한 아가씨의 배역을 원한다”는 내용의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팜케 얀센은 여배우의 선택지가 차츰 넓어지고 있다고 전망을 밝히면서도 “그가 여자였던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제시카 차스테인은 나이 든 여배우를 위한 좋은 배역이 충분치 않다며 러셀 크로우의 인터뷰에 대해 “멍청한 발언”이라고 대응했다. 메릴 스트립처럼 나이를 받아들이며 훌륭한 배우가 되라는 러셀 크로우의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악의적인 조언은 아니다. 그러나 좋은 연기를 펼치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배역이 존재해야 하며, 공평한 기회를 얻지 못하는 여배우들에게 현상의 순서를 간과한 러셀 크로우의 발언은 오히려 할리우드에 만연한 성차별을 상기시키는 얄팍한 참견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 좁혀진 불평등의 격차에 여성들은 쉽게 안도한다. 온순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위해 스타들은 페미니스트가 되기를 꺼리며 남성과 싸울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비욘세가 공연 무대의 배경으로 ‘FEMINIST’라는 단어를 펼쳐놓고 UN여성 친선대사를 맡은 엠마 왓슨이 양성평등 연설문을 낭독했지만, 누군가는 페미니즘을 여성 연예인들이 손쉽게 취하는 독특한 포즈로 치부해버린다. 스스로 페미니스트임을 자청한 조셉 고든 래빗은 “여성과 남성 구분 없이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으며,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것이 페미니즘”이라고 견해를 밝혔으나, 그가 유능한 사업가이자 과학자인 여자친구와의 결혼을 발표하자 [뉴욕 매거진]은 그를 ‘트로피 보이’라고 지칭했다. 각자의 상황에서 해석되는 페미니즘은 입장을 통합하지 못하고 그 사이에서 여성은 줄곧 남성의 대립항으로 존재한다.

티나 페이의 가장 큰 경력은 소녀들에게 자기 자신이 될 것을 격려하는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의 각본을 쓴 일이다. 동시에 그녀의 가장 유명한 코미디는 여성 정치인 사라 페일린을 지독하게 풍자한 것이다. 여성을 응원하면서 동시에 여성을 공격하는 그녀는 페미니스트인가, 아닌가. 결국 티나 페이와 에이미 폴러가 지지하는 것은 여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생득적 이유로 차별받는 사회의 약자들이며, 이것은 이들이 페미니스트로서의 입장을 계속해서 고수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의 농담이 빌 코스비의 과거를 단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세상의 여성들에게 부당하게 빌 코스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그의 권위를 비웃을 수 있음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계단을 올라선 셈이다.

글. 윤희성(객원기자)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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