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준에서 킵식스까지, 나만의 ‘토토가’ 리스트

2015.01.05
MBC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토토가’)에 나온 곡들은 1990년대 청춘의 일상을 지배했다. 자신을 로커라고 생각하던 반항아든, 비평가처럼 음악을 요리조리 따지던 학구파든, 그들은 신촌과 명동의 길거리에서, KFC 같은 패스트푸드점에서, 수학여행이나 MT의 장기자랑 시간에 이 노래들을 듣고 부르고 춤췄다. ‘토토가’는 위대한 음악이 아닌 일상의 추억을 만들어낸 음악들을 골라냈고, 방송을 본 그 시절의 청춘들은 자신만의 ‘토토가’ 리스트를 작성하며 시즌 2를 원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즈]에서도 몇 명의 필자들에게 ‘토토가’에서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그 시절의 음악들을 부탁해보았다.


베이비복스 ‘야야야’, 우리 모두는 간미연이었다
여중 시절 마지막 축제. 우리 반 참가곡은 베이비복스의 ‘야야야’였다. 어깨를 앙증맞게 흔들며 “모든 것이 달라질거야야야 어어”를 부를 기회를, 여중생들이 놓칠 리 없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가요 프로그램을 빠짐없이 보고 녹화해두는 나였다. 방송 첫 주말이 지나면 포인트 안무 정도는 눈을 감고도 췄다. 하지만 축제 대표로는 베이비복스를 뽑는 게 아니었다. 간미연을 뽑는 것이었다. 간미연처럼 볼에 옆머리를 착 붙이고 센터를 주구장창 지킬 수 없다면,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모두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간미연이 되기에 당시의 나는 너무나 거대했으며, 결정적으로 예쁘지 않았다. 양면테이프로 머리카락을 고정해봤자 유전처럼 솟아오르는 얼굴 기름에 잘 붙지도 않을 터였다. 슬프게도 나는 그 사실을 잘 아는 여중생이었다. 난 별명을 따라 ‘호박이 굴러들어 오는 학교’라는 구호를 달고 전교 학생회장 선거에 나갈 패기는 있었지만, 축제에서 못생긴 간미연이 될 자신은 없는 못난 소녀였다. 결국 축제에 나가기를 포기했다. 베이비복스가 뭔지도 잘 몰랐던 예쁜 친구가 간미연이 되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언제나 노래방에 가면 그 누구보다 먼저 마이크를 잡고 ‘야야야’를 불러재끼곤 했다.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른다면- “모든 것이 달라질거야야야” 나도 간미연이었다.
글. 윤이나(칼럼니스트)


유승준 ‘열정’, 닥치고 춤추고 싶을 때
군대를 다녀오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넥스트, 전람회가 모두 해체했다. 대신 TV를 지배하는 H.O.T.와 젝스키스 같은 아이돌 그룹은 예비역 남자가 좋아하기엔 정말 ‘10대들의 승리’였다. 젠장, 가요계가 망했어!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의 댄스음악에 열광했으면서도 H.O.T.와 젝스키스의 댄스음악에는 내심 반발하며 지내던 철없던 20대 초반. 그런데 유승준이 그 허세를 한 번에 무너뜨렸다. 그는 우아한 싱어송라이터도 아니었고, 반항적인 메시지를 던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유승준이 랩을 하고 춤추기 시작하면 그런 생각 따위 순식간에 없어졌다. 그가 단단한 근육질의 몸을 움직이면 아드레날린이 샘솟았고, 그 움직임 속에서 튀어나오는 ‘뽕끼’ 서린 후렴구는 이상할 정도로 가슴을 후련하게 해줬다. ‘열정’은 그중에서도 유승준이 세상에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무대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움직였고, 뮤직비디오에서는 권투 링 안에서 상대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리고 드디어 등장하는 “이 세상에!” 그 꽝! 치는 멜로디가 나올 때마다 괜히 허공에 주먹을 휘둘렀고, 좋아하는 음악으로는 1990년대 싱어송라이터의 음악을 말하면서도 집에서는 ‘열정’의 춤을 어설프게 따라 췄다. 지금도 ‘밤과 음악 사이’에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열정’은, 90년대 댄스 음악은 요즘도 듣는다. 닥치고 춤추고 싶을 때, “이 세상에!”를 외치면서.
글. 강명석([아이즈] 편집장)


자자 ‘버스 안에서’, 잘 지내니 ‘미스 9-1번’
집 근처 남자 중학교에서 조금 먼 남녀공학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등교하는 버스 안에는 같은 학교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있었고, 같은 시간대 같은 노선을 반복해서 타는 만큼 그중 몇몇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남녀 합반도 아니고, 서클 활동도 하지 않던 내게 붐비는 통학 버스는 또래 여학생들과 가장 가까이 가장 오래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중 항상 나보다 먼저 타 있던 한 안경 낀 여학생은 내 마음속 ‘미스 9-1번(당시 통학하던 버스 노선)’이었다. 고2 때 나온 자자의 ‘버스 안에서’를 들으며 마치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건 그 때문이다. “나는 매일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그 앨 보곤 해”라는 첫 구절은 뇌가 아닌 심장을 직격했고, 나도 널 좋아하니 고백하라는 여성 보컬의 화답은 당시 내가 꿈꿀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판타지였다. 당시 유행하던 하우스 풍의 신나는 전주 역시 왠지 나도 ‘미스 9-1’과 잘될 것 같은 기분을 북돋아주었다. 물론 노래 속 화자가 직접 고백하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은 것처럼, 나 역시 무모한 모험을 벌이진 않았다. 그래도 가끔 내 십 대의 가장 설레던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버스 안에서’의 전주가 재생된다. 잘 지내니, ‘미스 9-1번’.
글. 위근우


킵식스 ‘나를 용서해’, 20년짜리 의리
킵식스를 기억하는 사람의 유형은 둘로 나뉜다. ‘악마의 연기’와 함께 양현석 흑역사의 양대 산맥으로 기억하는 사람, 그리고 그런 그룹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못 하는 사람. 슬프지만 그 누구도 노래나 무대로 킵식스를 기억하지 않는다. 더 슬픈 건 활동 당시 분위기도 지금과 그다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친구들은 이들이 어떤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지, 왜 그토록 나를 용서해달라고 하는지보다 이들이 타던 밴이 서태지와 아이들이 타던 것이 맞는지, 왜 춤추는 사람은 셋인데 그룹 이름에는 숫자 6이 들어가는지를 몇 배는 궁금해했다. 그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지난한 슬픔의 전설 속, 나는 당시도 지금도 이 노래를 꺼내 들을 때마다 늘 의아했다. 이토록 상큼하고 세련된 R&B 팝을 왜 아무도 사랑하지 않은 걸까. 여름과 청춘, 색소폰을 위한 찬가 듀스의 ‘여름 안에서’를 전설의 명곡으로 모시는, 솔리드를 시작으로 보이스까지 ‘오빠’로 모셨던 교포 우대 혹은 교포 중심적인 개인 취향 때문만은 아니다. 비록 새는 발음으로 전곡을 힘겹게 ‘하드캐리’ 하는 보컬 이새영의 덜 다듬어진 창법이 조금 거슬리고 그에 무임승차하는 나머지 멤버들은 조금 더 거슬리지만, 그 모든 방해를 기어코 이겨내는 햇살 같은 매력이 이 노래에는 있다. 올해에도 코끝에 여름 냄새가 스치는 날, 나는 버릇처럼 이 노래를 또다시 꺼내 들을 것이다. 양 사장님 입맛이야 쓰겠지만 어쩔 수 없다. 이건 내 20년의 의리다.
글. 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하이디 ‘진이’, 일말의 동지애를 느끼던 언니의 등장
심야 라디오에 사연 좀 쓴다 하는 조숙한 여학생의 귀에 트로트를 섞어 넣어 능청스럽게 흘러가는 하이디(HA. E. D)의 ‘진이’는 분명 썩 아름다운 노래는 아니었다. 하지만 명쾌한 비트와 명료한 가사는 듣는 즉시 뇌리에 남아버렸고, 소년처럼 짧은 머리를 한 아가씨가 저돌적으로 진이의 사랑을 갈구하는 무대의 과장된 기합은 이상하게도 눈길을 끌었다. 심지어 하이디가 가수 이덕진의 팬클럽 임원 출신이라서 오빠를 향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제목을 ‘진이’로 지었다는 소문을 들려주던 친구가 “I wanna be a Mr. Lee”라는 대목을 불러주며 ‘Mr. Lee=이씨=이덕진’이라는 삼단논법을 펼칠 무렵에는 어색한 문법을 향한 의심은 이미 남아 있지도 않았다. 늘 누군가의 팬이었던 청소년으로서 “이쒸가니 가니 가니 지나가기 전에”라고 힘주어 부르는 예쁘장한 언니에게서 일종의 비장함이나 일말의 동지애를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엉뚱하게나마 가수의 진정성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노래를 외우고 있다는 사실이 딱히 겸연쩍지도 않았다. 어른이 되도록 노래방에서 부르고 또 부르는 동안 ‘진이’가 누구인지, 하이디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노래 바깥의 일들은 대부분 희미해졌지만 이상하게도 여전히 흥겨움의 끝에는 애틋함이 남는다. 언니는 결국 이덕진 오빠를 만났을까.
글. 윤희성(객원기자)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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