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가족, 당신이 살 수 있는 집

2015.01.05

문이 있다. 82만 5천 원부터 700만 원 사이, 스무 개의 숫자는 월급을 의미한다. 가령 월 230만 원을 받는 노동자 A가 문을 열고 들어서면 –21,516(만 원)이라는 숫자가 적힌 동그란 발판을 밟게 된다. 적자다. 벗어나기 위해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추진력은 부모의 재력에서 나온다. 첫걸음이 마이너스에서 시작된 것은 A의 좌표상 부모가 ‘무주택이고 연 소득 1천만 원 내외’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A가 밟게 되는 발판이 9,501(만 원)의 흑자로 돌아서게 되는 것은 ‘무주택이고 연 소득이 5천만 원 내외’인 부모를 만나면서부터다. 만약 A가 운이 좋다면 ‘여러 채의 주택을 소유한 연 소득 1억 원 내외의 부모’가 있는 좌표의 반대편 끝까지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즐거운 나의 집] 전의 일부인 ‘확률가족’은 디자인, 도시와 교통 인프라, 부동산 조사 연구 그룹으로 이루어진 시각 창작집단 옵티컬레이스의 전시다. 전시장 벽의 가로축에는 에코 세대(1979년~1992년생)인 자녀가 독립할 경우 월급으로 대출 가능한 최대 금액이, 세로축에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인 부모가 자녀에게 증여 가능한 최대 금액이 적혀 있다. 관람자들은 자신에게 해당하는 교차점을 찾아 서고, 발판에 적힌 독립자금 액수를 기준으로 서울에서 구할 수 있는 주거의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은평구 수색동의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20만 원인 단독/다가구 주택(53㎡)부터 서초구 반포동의 전세 10억 원짜리 래미안 퍼스티지 아파트(84㎡)까지, 예시의 폭은 넓지만 선택의 폭은 좁다. 베이비붐 세대 부모의 최소은퇴노후자금과 의료비는 약 3억 7882만 원, 충분히 부유한 부모를 만나지 못한 자녀는 돈이 아니라 빚을 물려받는다.

월 급여 250만 원, 대출 가능 금액이 2억 2056만 원인 자녀는 부모의 재력에 따라 래미안 퍼스티지에 살게 될 수도, 강동구 둔촌동의 다세대 연립(79㎡)이나 구로구 개봉동의 한진 아파트(59㎡) 전세를 구할 수도 있다. 무주택에 연 소득이 1천만 원 내외인 부모의 자녀라면 월 급여가 475만 원 이상이어야 독립자금이 마이너스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 반면 월 급여가 82만 5천 원인 자녀라도 ‘여러 채의 주택을 소유하고 연 소득 1억 원 내외’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면 독립 자금은 7억 9805만 원으로 뛰어오르고, 그는 강남구 도곡동 타워 팰리스 1차 아파트(84㎡)에 살 수 있다. 주거 수준을 결정하는 데 노동 소득의 영향력은 미미하다. 쾌적하고 안락한 주거 환경은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물려받는 것이다.

디자인 연구자 박해천 교수의 [아파트 게임](2013)에는 조그만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K씨가 등장한다. 베이비붐 세대인 그는 30년 사회생활의 대가로 “꽤 많은 대출금이 묶여 있는 용인의 50평대 아파트와 몇 푼 안 되는 퇴직금”을 손에 쥐고 전전긍긍하지만, 그의 자식뻘인 아르바이트생 P군의 미래는 더욱 캄캄하다. P군은 “학자금 대출로 매년 천만 원에 가까운 등록금을 지불하며 확보한 대학생이라는 시간을, 자신의 노동력까지 보태 5천 원이 약간 넘는 헐값의 시급을 받으며” K씨에게 되팔고 역시 베이비붐 세대에 속하는 빌딩 주인 O씨에게 매달 수십만 원의 고시원 비를 낸다. 머지않아 졸업을 하고 구자가 될 P군이 자신의 ‘아파트’를 가질 수 있을까. 부모가 물려주지 않는다면 어려울 것이다. 지난해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20대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는 103만 1천 명으로 전년도보다 5만 9천 명 증가했고, 20대 고용률은 사상 최저인 56.8%로 떨어졌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1월 “정규직은 계속 늘어나는데 월급이 계속 오르니 기업이 감당할 수가 없다.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로 기업이 겁이 나서 못 뽑는 상황”이라며 노동시장 개혁을 주장했다. 그는 베이비붐 세대의 첫해에 태어났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을 쓴 일본의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미래에 대해 큰 희망을 걸지 않기에 지금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토리 세대(득도 세대)’에 주목했다. 그는 노동 형태가 불안정한 젊은이들도 경제 고도성장기의 혜택을 받아 부유한 부모와 함께 살면 생활에 별다른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며 “빈곤은 미래의 문제이므로 잘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한국 청년 세대의 빈곤은 바로 지금의 삶을 짓누르고 미래를 침탈한다. 2015년 최저임금은 5,580원으로 결정됐지만 20대들의 가장 흔한 아르바이트 자리 중 하나인 편의점을 비롯해 최저임금 이하를 지급하는 업장이 태반인 가운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최고위원은 최근 대학생들과 만나는 행사에서 “아르바이트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했을 때 상대를 설득해 나쁜 마음을 바꾸게 만드는 것도 여러분 능력이고 인생의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처를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며 정신승리 할 수 있는 건, 그러한 일이 일어난 근본적 원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다음일 것이다. ‘확률가족’ 전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관람객은 ‘무주택이고 연 소득 3천만 원 내외인 부모’와 ‘주택을 1채 소유한 연 소득 1천만 원 내외의 부모’ 앞을 오랫동안 서성였다. 그는 -29,781(만 원)과 –32,345(만 원)로부터 벗어나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어디에 살 수 있을까. 우리는, 살 수 있을까.

글. 최지은
사진제공. 아르코 미술관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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