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이시영, 싸우는 캔디

2014.12.29

“그 희한한 애가 너니?” “전 평범한 앤데요?” 거짓말이다. tvN [일리 있는 사랑]의 김일리(이시영)는 세상에 다시없을 것 같은 여자다. 고등학교 시절 별명은 ‘안드로(메다)’, 좌충우돌 에너지가 넘쳐 여기저기 부딪히고 떨어지다 학교 뒷산에 올라 UFO를 기다리며 막춤을 추던 소녀는 자신을 지구에 남아 있고 싶게 만든 임시 교사 장희태(엄태웅)의 수호신을 자처하며 망치를 넣은 책가방을 든 채 그를 따라다닌다. 위기의 순간 희태를 대신해 차에 치인 일리는 후유증으로 과호흡 증후군까지 얻지만, 떠났던 그와 7년 후 재회하자마자 백마 탄 왕자님의 전매특허 대사와 함께 프러포즈한다. “내가 평생 지켜줄게.”

남편 희태에 따르면 “어디로 달릴지 모르는 폭주기관차”, 호기심 많고 오지랖 넓고 잘 웃는 여자, 보호받기보다 먼저 누군가를 지켜주려 하는 여자. 김일리는 이시영이 그동안 연기해온 로맨틱 코미디 속 캐릭터들의 총집합 같다. 그를 주목할 만한 신인 연기자로 끌어올렸던 KBS [부자의 탄생]의 재벌 2세 부태희는 사치스럽고 단순무식하지만 감정을 조금도 숨기지 못해 귀여운 악역이었고, 영화 [남자사용설명서]에서 ‘연애를 비디오로 배운’ 최보나는 자신을 드러내는 데 서툴러서 사랑스러운 인물이었다. 남녀가 티격태격하다 정드는 게 로맨틱 코미디의 법칙이라면, 이시영의 경우에는 몸싸움이 옵션으로 따라붙는다. KBS [난폭한 로맨스]에서 그가 연기한 유도선수 출신 경호원 유은재는 자신이 때려눕혔던 야구선수 박무열(이동욱)을 경호하게 된 후 그와의 체력 대결에서 지지 않으려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쉬지 않고 달린다. 이시영은 좋아하는 남자에게 ‘꼴통’이라 불리는 이 선머슴 같은 캐릭터의 짧게 자른 머리카락이 자고 일어나면 붕붕 뜨도록 일부러 코믹하게 스타일링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어떤 메이크업보다 얼굴에 붙인 반창고가 자연스러운 여배우가 되었다.


망가진다기보다 몸을 던진다는 게 맞을 것 같다. 몸만이 아니라 마음도 쏟아 넣는다. 캐릭터 이전에 이시영의 방식이다. 프라모델과 피규어를 공들여 수집하기로 유명한 그는 신인 시절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우리 결혼했어요’에 캐스팅되었을 때도 외부로 수집품들을 옮겨야 한다면 출연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 남들보다 늦게 연기를 시작해 막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던 이시영에게 인기 예능 출연은 파격적인 기회였지만 그 못지않게 소중한 것을 지켜야 했고, 결국 촬영은 세트가 아닌 그의 집에서 진행되었다. 배짱이라면 좀 거창하지만, 도무지 예상할 수 없던 일들을 외골수로 밀고 나가는 이시영의 엉뚱함은 사진 한 장에 반해 ‘멋진 페인트공’이 되기를 꿈꾸었고 결국 그 꿈을 이룬 일리의 근성과도 닮았다. 단막극 출연을 위해 복싱을 배우고, 작품이 무산된 뒤에도 운동을 계속해 태극마크까지 달았던 그는 링 위와 카메라 앞에서의 승부에 번갈아 뛰어들며 말했다. “복싱은 아무것도 없이 내 몸만 가지고, 링 위에서 오로지 혼자만 버텨야 하는 운동이에요. 연기도, 내가 가진 것 없고 맨몸이지만 열심히 하면 승패에 관계없이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어요.”(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 그러나 지난 10월, 어깨탈구로 전국체전 참가를 포기하면서 2년 동안 속해 있던 인천시청 복싱부를 떠나게 된 그는 길고 정중한 작별의 편지를 썼다.

다시 카메라 앞으로 돌아온 [일리 있는 사랑]에서도 이시영은 온몸으로 싸우고 사랑한다. KBS [꽃보다 남자]부터 이시영이 연기했던 다분히 만화적인 캐릭터들 중에서도 일리는 눈에 띄게 과잉된 에너지를 발산하는 동시에 아득한 괴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일리는 전신이 마비되어 눈꺼풀밖에 움직이지 못하는 시누이를 7년째 돌보면서도, 이 모든 게 네 탓이라는 시어머니의 타박을 들으면서도 울지 않는다. 아무도 모르게 술을 마시고 씩씩하게 웃어넘길 뿐이다. 울지 않음으로써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고통을 알지 못해서 밝은 것이 아니라 고통을 이겨낼 만큼 강한, 이시영이 지닌 생명력은 자칫 붕 떠 보일 수 있는 설정들을 뛰어넘어 일리의 삶과 그 무게를 구체화시킨다. 그리고 일리와 새로운 사랑에 빠진 남자 김준(이수혁)은 그를 두고 “살아 있는 건 이런 거구나, 그랬어요. 뜨겁고 간질간질하고 절박하고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라 말했다. 어쩌면 배우가 살아 있다는 것도 이런 것일 수 있겠다. 뜨겁고 절박하게, 가끔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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