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BT Voice, [여섯 빛깔 무지개]

2014.12.23

질문은 이야기의 문을 연다. “어려서 ‘내가 남과 다르구나’, 혹은 ‘내가 게이구나’라고 자각한 때는 언제인가요?”, “처음으로 ‘나는 여자인데 왜 남자의 몸으로 태어났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된 건 몇 살 때쯤이었나요?”, “HIV ‘positive(양성)’입니까, ‘negative(음성)’입니까?” 팟캐스트 [여섯 빛깔 무지개 – 한국에서 LGBT로 산다는 것](이하 [여섯 빛깔 무지개])의 시작이다.

지난 6월부터 방송되고 있는 [여섯 빛깔 무지개]는 사회 각계의 LGBTQ(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 퀴어)들이 출연해 자신의 삶과 다양한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다. 흥미롭게도 이 팟캐스트는 전국 17개 지역재단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을 지원받아 진행하는 ‘2014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 사업’의 일환이며, 이 중 유일한 성소수자 관련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지난해 말, 문화다양성 증진을 위한 사업 가운데 성소수자 영역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친 인천문화재단 기획사업팀 정지은 과장이 동성애자 운동가로 활발히 활동했던 임근준 미술·디자인 평론가를 무작정 찾아간 데서부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강의 형식은 접근성이 떨어지고, 일반적인 ‘교육’의 형태도 애매했다. 고심 끝에 접근성이 높고 그동안 비어 있던 채널인 팟캐스트가 선택되었다.

임근준 평론가, 16화 출연자 원종필, 차세빈(왼쪽부터)

‘커밍아웃을 한 인물로, 자신의 전문 영역이 있으며 가능하면 문화예술 분야에 관련된’ 출연자를 섭외하는 것은 간단치 않았다. 다양한 성적 지향과 스토리를 지닌 인물들을 골고루 초대하려 했지만, 온라인에서는 활발히 활동하더라도 출연 요청을 거절하거나 아예 응답하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녹음까지 마친 뒤 ‘없던 일로 하고 싶다’는 게스트를 설득해 겨우 방송을 내보내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그러나 F2M 트랜스젠더, 바이섹슈얼 레즈비언을 비롯해 드랙 아티스트, 언론인, 뇌신경과학자 등 성적 지향으로나 직업적으로나 다채로운 면면을 지닌 출연자들의 이야기는 일종의 생애사 연구인 동시에 한국 성소수자 문화와 인권운동에 대한 의미 있는 기록이다. 그래서 [여섯 빛깔 무지개]에서는 커밍아웃 전략 및 트랜지션(트랜스젠더나 성전환자가 호르몬 요법이나 성전환 수술 등을 통해 성 역할을 반대 성으로 바꾸는 과정)에 대한 조언 등 경험에서 비롯된 내용 외에도 동성혼 법제화, 최근 있었던 서울시청 점거 농성 등 현안에 대한 논의들이 활발하게 오간다. “90년대 후반 등장한 ‘팬픽 이반’은 단지 아이돌 팬들을 중심으로 생겨난 또래 문화만이 아니라 청소년 레즈비언 문화에 대한 통칭”(예조)이라는 분석을 비롯해, 동성혼 법제화 이슈뿐 아니라 이성애자들을 포괄하는 생활동반자법의 국제적 흐름에 대한 보고(장서연)나 80년대 미국 사회의 에이즈 대위기 이후 치료법의 발달과 함께 게이 커뮤니티의 문화가 어떻게 변해갔는지(제이슨 박)에 대한 고찰 등은 그 자체로 풍부한 교양 교재다. 개인과 집단, 과거와 현재, 한국과 세계를 넘나드는 대화를 매끄럽게 이끌고 생소한 용어 및 역사적 사실을 설명함으로써 맥락을 정리하는 것은 진행자인 임근준 평론가의 몫이다.

그런데 이처럼 각자 ‘다른’ 경험과 삶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섯 빛깔 무지개]에서 모든 출연자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는 순간이 있다. “자신과 같은 성소수자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이다. 정지은 과장은 “비공식적으로 알음알음 유통되는 정보만이 아니라 한 세대를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경험이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공유되고, 그들이 다음 세대에게 ‘나는 이렇게 살았지만 너희는 이렇게 살아보는 것도 좋겠다’ 이야기해주는 것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어린이들의 성장과, 청소년기에 부딪힐 수 있는 문제들을 이야기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계속해서 논의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리고 “(성전환 수술을 받아서) 여자가 되는 게 꿈이 되면 안 된다. 여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차세빈), “청소년기에 자신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같이 준비해야 한다”(진호) 등은 비슷한 고민을 했던 이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찾은 답이기에 뻔하게 들리지 않는다.

[여섯 빛깔 무지개]는 23일 만화가 이우인이 출연하는 20회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다. 현재까지 누적 다운로드 수는 6만 5천 건가량, 무수한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어쩌면 아주 적을 수도 있는 숫자다. 하지만 최근 [여섯 빛깔 무지개]에 출연한 활동가 호림(동성애자인권연대 HIV/AIDS 인권팀장)은 바이섹슈얼 코미디언 마거릿 조의 말을 인용했다. 그는 미국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10대 성소수자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성인 LGBT 및 그들을 지지하는 이성애자들의 격려 발언으로 진행된 ‘It Gets Better’ 프로젝트에서 “우리는 당신들이 필요하고, 당신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일을 하고 있으며, 우리는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호림은 “단지 청소년만이 아니라 앞으로 나올 새로운 사람들을 기다리기 위해 운동을 하고 있다. 여러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나올 새로운 사람들, 다음 세대에게 [여섯 빛깔 무지개]는 어떤 의미였을까. “초보 게이에겐 어둠 속의 등대 같은 경험이었다”는 한 청취자의 댓글은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글. 최지은
사진제공. 인천문화재단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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