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숲, 윤 “[호빗 3]가 나왔으니 요정어 대사집을 또 만들 거다”

2014.12.24
[반지의 제왕]과 [호빗] 시리즈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극 중 요정들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워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영어도, 프랑스어도 아닌 이 미지의 언어는 영화의 원작자이자 언어학자였던 존 로널드 로웰 톨킨(이하 톨킨)이 창조해낸 요정어다. 당연히 가상의 언어이지만, 톨킨의 작품을 애정하는 전 세계 독자들은 이것을 연구하고, 공유하며, 사용한다. 금숲과 윤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요정어 기초 학습지인 [가운데땅을 여행하는 한국인을 위한 높은요정어 안내서](이하 [요정어 안내서])를 만들었다. 요정어의 체계부터 모양과 원리, 발음까지 꼼꼼하게 알려주는 이 책은 유용한 교과서이자 본격적인 톨킨 월드로의 입구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그 마음을 동력 삼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 금숲과 윤, 두 사람을 만났다. 더 많은 요정어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언제든 트위터 계정 ‘@Eldarin_kr’을 두드려볼 것. 가능하면 “mara cenital(마-라 케니탈: 당신을 뵙게 되어 좋습니다)” 정도의 인사말과 함께 말이다.

[호빗: 다섯 군대 전투]는 봤나.
금숲
: 개봉 전 시사회에 지인이 당첨돼서 같이 보고 왔다. 전투신이 정말 좋더라. 그런데 영화에 나오는 요정어는 다 못 알아들었다. (웃음) 알아들은 건, 전편에 나왔던 갈라드리엘(케이트 블란쳇)의 대사, “만약 당신께 제 도움이 필요하게 되면, 제가 갈게요(아에 보에 일 레 엘리아쏜, 임 툴리아쏜)”가 이번에도 나오길래 그 정도?

영화 개봉과 맞물려 책 판매 부수가 급증하진 않았나. ‘와우북페스티벌’ 때는 해당 부스에서 이 책이 제일 많이 팔리는 것 같더라.
금숲
: 영화 개봉과는 큰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아무래도 전편이랑 이어지는 느낌이니까. ‘와우북페스티벌’ 때도 그 정도 반응이 있을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오늘 이거 다 팔고 갈 수 있을까?’ 싶었지. 사실 ‘다른 책을 몇 권 사시면 [요정어 안내서]를 덤으로 드립니다’ 이런 행사를 했는데 팔린 게 더 많았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요정어 안내서] 주세요” 이러는 분들이 많이 계셨다. 그리고 인터넷서점 알라딘에 이벤트용으로 500권을 납품했는데 그것도 금방 다 나갔다고 하더라.
: 하지만 내용에 대한 피드백은 딱히 없다. (웃음) 다들 이 책을 손에 쥔 것 자체로 그냥 기뻐하시는 것 같다. 구매 인증 아니면 글자를 따라 써서 올리시는 분들밖에 없었다.

그만큼 상당한 ‘레어템’인 건데, 이런 책을 만들게 된 계기는 뭔가.
금숲
: 내 경우엔 정말 긴 시간을 두고 요정어를 조금씩 공부해왔다. 재미로 한 일이기 때문에 엄청 집중해서 보진 않았지. 그런데 공부할 때마다 자료를 이것저것 늘어놓고 보려니 귀찮은 거다. 작은 노트에 정리를 하기 시작했는데, 가끔 이걸 본 사람들이 “다음에 만나면 이거 베껴 써도 되나요?”라고 물어왔다. 그때 ‘아, 이걸 책으로 만들어도 좋겠구나’ 싶었다.
: 나는 졸업전시를 계획하면서 인공어 중에서도 시각적으로 예쁜 걸 찾고 있었다. 보다 보니 요정어가 정말 예쁘더라. 마침 금숲 님이 관련 책을 내셨길래 연락을 드렸고, 개정판 작업을 함께 하게 됐다.

요정어가 시각적으로도 예쁘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 처음 봤을 때 ‘얘네도 모음은 점으로 찍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글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한글 입력 방식 중에 천지인도 점을 쓰지 않나. 점이 많을수록 예쁘다. 뭔가 반짝반짝한 느낌이랄까. [요정어 안내서]에서 소개하고 있는 문자는 ‘텡과르’라는 건데, 톨킨이 쓴 [실마릴리온]을 보면 이 문자를 만든 요정이 ‘실마릴’이란 보석을 만든 장인이기도 하다. 또 다른 요정어인 ‘신다린’의 경우엔 아예 별과 관련이 깊고. 그래서 엘프란 종족은 정말 보석이나 별처럼 반짝거리고 예쁜 것들을 좋아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책의 표지 디자인도 커팅된 보석을 모티브로 만든 거다.

디자인이든, 내용이든 만드는 과정이 수월하지만은 않았을 텐데.
금숲
: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하는 게 큰 과제였다. 한국 사람은 보통 영어나 중국어, 일본어 정도를 제2외국어로 하지 않나. 다른 나라 언어를 많이 모르기 때문에 다양한 문법에 대한 감각이 아주 발달한 편은 아니다. 그런데 요정어는 우리에게 그나마 익숙한 영어와 전혀 비슷하지 않다. 심지어 문자 하나가 세 개의 소리를 담고 있는 경우도 있다. 고대 이집트 문자와 유사한 부분이다. 그래서 설명하기 까다로울 수밖에 없지만, 최대한 한국 사람들에게 최적화된 버전으로 만들었다. 요정어 발음을 한글로 다 표기해준 거다. 비록 실제 요정어 발음과 백 퍼센트 조응하게 쓸 수는 없지만.

발음은 영화를 보면서 정리했나.
금숲
: 일단 영화를 DVD로 계속 보면서 따라 했다. 그리고 외국 사람들이 쓴 책을 읽으면서 어떤 게 정확한 발음인지 연구한 다음에 반영했다. 배우들도 요정어를 완벽하게 하는 건 아니니까. 사실 발음뿐 아니라 전반적인 언어 체계를 정리하기 위해서 자료 조사를 많이 했다. 특히 데이빗 살로라고, [반지의 제왕]부터 [호빗]까지의 모든 대사를 다른 언어로 만드신 분이 있다. 그분의 자료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생각보다 체계적이고 진지한 접근이다. 원래 두 사람 모두 톨킨의 작품을 좋아했던 건가.
: 나는 영화부터 본 케이스다. 판타지 영화라고 하면 아기자기한 무드일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반지의 제왕]을 처음 보고는 깜짝 놀랐다. 무슨 역사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아서.
금숲: 나는 1998년에 책을 처음 읽었다. 그땐 제목이 [반지 전쟁]이었지. 故 신해철 씨를 좋아했었는데, 그분이 한 인터뷰에서 이 책을 좋아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래서 대학생 때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어, 이상하다? 술술 넘어가네?’ 하다가 다음 날 강의를 빼먹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가 무서운 순간이었던 것 같다. (웃음) [반지의 제왕]이 영화화될 즈음엔 매일 해외 뉴스를 퍼 와서 번역한 다음 온라인에 올리기도 했다. 매우 귀찮았지만 오직 ‘덕심’ 하나로.

뭐가 그렇게 매력적이었을까.
금숲
: 쉽게 결론을 내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어떤 작품이든 ‘그래서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 않기 때문에 여운이 계속 간다. 독자 입장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했는지 계속 파고들어서 알고 싶은 거다.
: 내 생각에 톨킨은 로맨티스트 같다. 간달프가 호빗에게 하는 이야기들을 보면, 평범한 사람들의 힘과 용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계속 격려해준다. 사실은 평범한 것들이 가장 대단한 거야, 라는 식으로 말해주니까 현실에서 경쟁 때문에 치였던 마음을 힐링받는 느낌이 든다.
금숲: 어떤 작품들은 ‘너는 이것 한 가지를 더 해야 돼!’라고 부추긴다. 하지만 톨킨의 작품들은 ‘네가 여기까지 할 수 있으면 이게 너의 역할이고 더 하지 않아도 돼. 돌아가도 괜찮아. 자신을 더 희생하지 마’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 좋아하던 세계에 [요정어 안내서]로 뭔가를 하나 더했다는 뿌듯함도 있겠다.
: 주변에서 “이걸 왜 만들어?”라는 말을 진짜 많이 했다. 부모님, 교수님 모두. [요정어 안내서]로 졸업전시를 하겠다고 기획안을 보여드렸는데, 교수님께서 존재하지도 않는 말에 대한 학습서에 왜 자본을 투자해야 하는가, 살 필요가 있나, 라는 질문을 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이상하더라. 이유? 그냥 갖고 싶으니까 가지는 거고, 보고 싶으니까 보는 책이지. 취미고, 좋아하는 거니까. 그것 말고 또 이유가 있어야 하나? 교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듣고 오히려 이 책을 꼭 만들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만드는 입장에서는 이런 작업의 의미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보게 되지 않나.
금숲
: 지금까지 인공어를 만들어서 소통하려는 시도는 많이 있었다. 에스페란토어도 마찬가지지만, 지금은 아무도 쓰지 않는다. 그런데 요정어는 살아남았다. 전 세계 사람들이 톨킨의 책을 통해서 이 언어를 배우고 사용한다. 이건 분명히 살아 있는 언어인 거다. 게다가 톨킨 한 사람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단어 수가 부족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단어를 만든다. 그런 점에서 이 작업에도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책 내길 정말 잘했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언제인가.
금숲
: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줄 때. 초판을 찍은 게 2013년이었는데 200권이 다 나갔다. 50권 정도 팔리려나, 했거든. 정말 놀랐다. 아니, 사람들이 이렇게 쓸모없어 보이는 걸 돈 주고 사다니. (웃음) 얼마 전에는 한 일본분이 트위터 계정으로 물어왔다. 혹시 일본어판이나 영어판은 없냐고. 세계 어디에도 이렇게 교과서처럼 만든 건 없기 때문에, 외국어로도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하더라.

스스로에겐 어떤 즐거움이 있을까.
금숲
: 나한테는 요정어가 세계 언어의 통로처럼 느껴진다. 보다 보니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 핀란드어 등이랑 비슷해서 자꾸 다른 나라의 언어에도 관심이 가더라. 그 덕분에 고대 그리스어를 조금 들여다봤는데, 언어학자인 톨킨이 언어로 ‘덕질’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언어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부분만 쏙쏙 골라 모은 다음 요정어를 만들어놓은 거다. 마치 머리카락은 황금색, 눈동자는 푸른색, 하며 미소녀를 그리듯이.
: 나는 인공어라는 것 자체에 관심이 생겼다. 이 책을 내면서 비밀암호 같은 문자들을 많이 알아봤는데, 영국드라마 [닥터후]에 갈리프레이어라는 외계 문자가 나온다. 동심원처럼 생겼는데 너무너무 예쁘다. 금숲 님처럼 누군가는 이 문자를 연구하고 있지 않을까? 갈리프레이어도 책으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두 사람이 또 도전해보는 건 어떤가.
금숲
: 갈리프레이어는 애초에 자료가 별로 없다고 들었다. 그건 [닥터후] 내에서 여러 가지 단서를 던져주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하고. 나는 기회가 된다면 문법을 더 보강해서 [요정어 안내서]를 또 내야지. [호빗: 다섯 군대 전투]가 개봉했으니 기존에 냈던 대사집도 다음 권을 만들어야 한다. 언제 나올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 왜 요정어만 만드냐, 드워프어나 오크어는 없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더라.
금숲: 할 수는 있겠지만 더 급한 게 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 그 두 언어는 자료가 별로 없어서 막상 만들기 시작하면 오히려 금방 나올 수도 있다. (웃음)

마지막으로 부질없는 질문이지만, 요정과 마주친다면 제일 먼저 무슨 말을 건네고 싶나. (웃음)
: 나마-리에? (=안녕히 가세요)
금숲: 만나자마자 얼른 가라는 거야?
: 앗, 외국 사람이다! 나한테 말 걸지 마세요, 그런 거다.
금숲: 솔직히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손을 딱 잡고 “우리 집으로 가자, 내가 서울 구경 시켜줄게” 해야지. 요정어로 이 말을 연습해놔야겠다.
: 두 번째 개정판에 넣는 건 어떨까?
금숲: 좋은 생각이다. 원래 제목이 [가운데땅을 여행하는 한국인을 위한 높은요정어 안내서]니까, 이번에는 [한국에서 가운데땅 요정을 만난 사람들을 위한 높은요정어 안내서]를 만들면 될 것 같다. 관광 안내 가이드인 거지. 요정들에게 서울 구경을 시켜주고, 여러분은 보답으로 보석을 달라고 하면 됩니다. 이 정도는 몇 그램짜리 보석이면 됩니다, 보석은 이렇게 요구하면 됩니다, 등등을 알려줘야 할 것 같다. (웃음)

글. 황효진
사진. 이진혁(KoiWorks)
교정. 김영진
장소협조. SF&판타지 도서관



목록

SPECIAL

image 스탠드업 코미디

MAGAZINE

  • imageVol.171
  • imageVol.170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