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톤 프로젝트x킬드런 “필살기가 있는 분들과 일하면 재밌다”

2014.12.17
에피톤 프로젝트는 그림이나 사진, 또는 여행의 풍경을 보며 음악에 대한 영감을 받곤 한다. 사람의 얼굴을 독특한 스타일로 그리는 작가 킬드런은 언제나 음악을 틀어놓고 작업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앨범 [사랑의 단상]에서 다른 뮤지션, 작가들과 함께 음악과 앨범 아트워크를 담당했다. 오는 25일에는 [사랑의 단상]을 주제로 대림미술관에서 에피톤 프로젝트, 한희정, 캐스커 등 참여 뮤지션들의 공연과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에피톤 프로젝트와 킬드런을 대림미술관에서 만나 음악과 미술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만나고, 한 공간에서 함께 결과물을 내놓게 된 이야기에 대해 들었다. 두 사람의 분야는 전혀 달랐지만, 바라는 것과 고민하는 것은 결국 똑같았다.
킬드런(왼쪽)과 에피톤 프로젝트.

에피톤 프로젝트는 소속사인 파스텔 뮤직의 프로젝트 앨범 [사랑의 단상]에 참여한 게 경력의 시작이기도 하다.
에피톤 프로젝트
: 원래 회사에서 이 앨범을 처음 낼 때 신인 뮤지션 등용문 같은 의미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를 비롯한 여러 뮤지션이 프로듀싱을 하고, 신인 뮤지션을 선정해서 같이 하는 방식으로 진행해 봤다. 어떤 곡은 내가 세션으로 참여하기도 하고, 그렇게 우리끼리 다 했어 같은 느낌으로. 만들면서 내가 데뷔한 지 벌써 이렇게 됐나 싶기도 하더라. 예전에는 회사에 가면 내가 얻어먹는 횟수가 많았는데 이제는 내가 결제하는 일이 많아지고. (웃음)

그 사이 앨범의 범위도 넓어져서 미술을 하는 킬드런도 참여하게 됐다.
킬드런
: 원래 파스텔 뮤직 분들하고 아는 사이기도 해서. 전에도 루시아의 앨범처럼 파스텔 뮤직 뮤지션들하고 같이 작업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15년 동안 밴드를 하기도 했다. 스래시 메탈.

그런데 작업하는 앨범은 [사랑의 단상]이고. (웃음)
킬드런
: 했던 음악하고 좋아하는 음악은 다르니까. (웃음) 그리고 에피톤 프로젝트와 관련해서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경험이 있다. 서른에 일본어 한마디도 못하면서 일본유학을 갔는데, 그때 신주쿠 공원에서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을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다. 봄날에 벚꽃 밑에서 그 음악을 듣는데… 그 때부터 인연이 있었던 거 같다. 그리고 내가 전에 했던 개인전 서브 타이틀이 [음악이 없었으면 무엇으로 그렸을까]다. 늘 음악을 들으면서 작업을 하고 작품의 90% 이상이 노래 제목이다.

[사랑의 단상]의 음악들은 어떻게 다가왔나.
킬드런
: 가사를 일부러 안 들으려고 했다. 리듬만 들었다. 가사를 들으면 내 걸 투영할 수 없을 거 같아서. 그래서 리듬만 들으면서 참 따뜻하고 좋은 음악들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사람이 각자의 사연들을 각자의 스타일로 만든다는 게 좋았고. 그래서 그림도 전체적으로 따뜻하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괴팍하기도 하고, 분노도 있다. 모든 사람이 사랑에 대한 기억이 애잔하지만은 않으니까. 굉장히 큰 그림을 세 개 그려서 세 가지가 각자로도, 묶어놔도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했다. 사람이 세 번의 연애를 하면 따로따로 한 것이기도 하지만 합치면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되는 것처럼.

타인의 사연으로 음악을 만든다는 건 어땠나.
에피톤 프로젝트
: 사연을 고르는 것 자체가 많이 힘들었다. 사연이 1000여 통이 넘었고, 다 읽어서 그 중 최종 후보로 몇 개를 추렸다. 결국 하나를 정해서 사연의 주인공과도 만났는데 이별하신 지 얼마 안 됐다고 하더라. 그렇게 느낌을 받고 사연 속의 중요한 키워드를 작품에 쓰려고 많이 노력했다. 기존의 작업 방식이 전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사연 속의 남자가 헤어진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는 시점으로 썼다. 편곡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조금 슬로우 록 스타일로 했고. 마지막에 오르간이 들어가는 데 그게 핵심이야! 라면서. (웃음) 같이 녹음한 팀이 록적인 요소가 있어서 제대로 밴드 사운드를 내보자고 했다. 그건 내 음악에서 못하는 거니까.

올해 낸 앨범 [각자의 밤]부터 사운드가 많이 변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에피톤 프로젝트
: 항상 다양한 걸 해보려고 한다. 요새는 한창 복고적인 록에 꽂혀 있고. 내 본질은 변하지 않아도 표현하는 장르나 장치는 계속 변해야 하는 거 같다. 요새는 Mnet [쇼 미 더 머니]를 굉장히 재밌게 봤다. 하하. 내가 랩을 못해서 문젠데, 할 수만 있었으면 힙합을 했었을 것 같다. 그래서 발라든데도 드럼이 세지고. (웃음) [각자의 밤]에서 정말 리듬이 많이 부각됐다. 전 앨범들은 듣고 좋다는 느낌은 있었는데, 처음하고 끝이 똑같은 느낌이 있어서 리듬을 좀 더 쓰자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앨범에 ‘환상곡’이라는 곡이 있는데 그게 어떤 림을 보고 영감을 얻었던 곡이다. 파도가 코앞까지 오는 것 같은 그림인데, 그런 느낌을 표현하려면 리듬이 거칠어지고 변화도 많아지게 된다.

음악을 만들 때 순간의 느낌에서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에피톤 프로젝트
: 그런 걸 좀 좋아한다. 영화를 봐도 어떤 특징적인 장면 같은 게 기억에 남으면 그 이미지로 곡을 쓴다. 꼭 순간적인 스틸 컷에서 무언가를 느끼는 것 하고 비슷하다. 

킬드런의 작품.

반대로 킬드런은 음악을 들으면서 그림을 그리는데, 음악을 시각화할 때 필요한 건 뭔가.
킬드런
: 준비가 안 돼 있으면 안 한다. 밀도 있게 한 시즌을 집중하면 작업을 염두에 두지 않고 쉴 때가 있는데, 그때는 할 수 없다. 그리고 장르는 어떤 것이든 상관없는데 곡이 안 좋으면 할 수 없다. 사람을 감동하게 만드는 순간이 있는 곡들이 있는데, 반대로 타성에 젖은 음악들은 와 닿지 않는다. 가사를 안 듣는다고는 했지만 짙은의 노래처럼 가사가 정말 좋은 곡들은 거의 가사만 들리기도 하고.

지드래곤의 ‘그XX’ 뮤직비디오에 그림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 작업은 어떤 과정을 통해 하게 되나.
킬드런
: 내 그림이 영화나 뮤직비디오에 종종 쓰인다. 내 그림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도 지금 개봉을 기다리고 있기도 하고. ‘그XX’는 지드래곤의 인지도 때문에 더 알려진 거 같다. 사실 특별한 계기가 있는 건 아니었고, 작업하는데 연락이 와서 그림을 요청하기에 몇 개 보냈다. 그 중 네 점이 사용됐다.

외부에서 요청한 작업은 절충하는 것도 일이겠다.
킬드런
: 그쪽 의견을 받아들이는 척 하면서 안 받아들인다. (웃음) 몇 번 작업해 본 쪽에서는 알아서 해주라고 하는데, 안 그런 경우도 있고.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요청하는 쪽에서 “작가님 여기서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솜사탕을 먹는 느낌을 표현해주세요”나 “돌고래가 수면 위로 올라갈 때의 느낌을 좀 표현해주세요” 같은 요구를 하는 거다. (웃음)
에피톤 프로젝트: 음악도 그런 일이 있다. 다른 가수 작업을 하는데 클라이언트가 뒤에서 “아 여기서 스트링을 비단결처럼 할 수 있을까요?” 그러면 “아 예 비단… 부드러운 건데 해볼게요” 이렇게 말한다. 외부 작업은 분명히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춰야 할 때가 생기는데 요즘에는 나름의 요령이 생겼다. 설득의 문제이기도 하고. 그렇게 맞춰가다 보면 결과물이 괜찮을 때도 있다. 그러면 내 음반에 적용하기도 한다. 잘하시는 분들마다 자신의 노하우나 필살기가 있는데 그런 분들과 일하면 재밌다. 배우는 입장에서는 그런 게 다 내 것이 될 수 있으니까. [사랑의 단상]도 어느 정도는 절충을 했다. 아니었으면 힙합 했을 거 같다. (웃음)

원래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사람들인데, 점점 사람들과 많이 대화하면서 달라지는 부분이 있나.
에피톤 프로젝트
: 내가 6년 전에 처음 [사랑의 단상]에 참여했을 때만 해도 회사에서 돌아이 하나 들어왔다고 했다. (웃음) 사람도 안 만나고, 말하는 거 안 좋아하고. 음악이 내 친구고.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이 생기더라.
킬드런: 나는 정신병 있냐는 소리 들었다. (웃음)
에피톤 프로젝트: 지금은 인간 됐다. (웃음) 예전에는 음악으로 내 생각을 표현하면 됐다고 생각해서 가사 붙이는 것도 안 좋아했다. 그런데 소통도 하고 공연도 하고 페스티벌에도 서고 다른 뮤지션과 작업하다 보니까 생각이 넓어진 것 같다. 내 음악도 조금 더 다양해지고. 악기 같은 것도 더 다양하게 쓰게 되니까.

그래서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에도 나가고. (웃음)
킬드런
: 본방사수했다. (웃음)
에피톤 프로젝트: 내가 기존에 안 했던 것들이고, 내년에는 내가 글래스톤베리에 가볼까란 생각도 한다. 음악에 미쳐서 좋아하는 사람들의 현장을 보고 싶더라. 좀 더 넓은 공간으로 나가보고 싶다. 계속해서 걸어 나가려면 더 많이 듣는 방법이 좋으니까.

어떤 공간이 좋나.
에피톤 프로젝트
: 요즘에는 홀에 많이 꽂혀있다. 유명한 페스티벌은 아닌 거 같고 실내악이 가능한 홀. 이런 공간에서 내 음악을 잘 들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 [각자의 밤]에서 일관된 공간을 설정한 건가. 앨범을 들어보면 같은 공간에서 곡마다 보컬리스트들이 바뀌는 콘서트 같았다.
에피톤 프로젝트
: 이번에는 실내악 같은 분위기를 원했다. 클래식 공연에서 악장만 바뀌면서 계속 연주를 하는 것 같은. 콘서트홀 같은 공간에서 일정하게 음악이 계속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각자의 밤]이니까 노래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계속 바뀌지만, 공간은 의도적으로 바뀌지 않도록 했다.

기계로 가득 찬 스튜디오 작업에서 그런 가상의 공간을 상상하는 게 쉽지는 않을 거 같다. 여행이나 영상에서 본 영감을 유지하는 것도 그렇고.
에피톤 프로젝트
: 내 작업실은 항상 작다. 지금도 실평수가 한 9평정도 나올 거다. 크고 넓은 공간을 선호하지 않는다. 래서 내 음악이 우울한가? (웃음) 작업할 때는 컴퓨터에 바탕 화면을 띄운다든가 하는 식으로 최대한 상상과 기억을 끌어내려고 한다. 여행한 곳의 사진을 인쇄해서 크게 붙여놓기도 하고. 류이치 사카모토는 자기 그랜드 피아노 두 대 비행기로 싣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고는 하던데, 그래 뭐 하다보면… 하고 생각은 한다. (웃음)

특별히 원하는 공간이 있나.
에피톤 프로젝트
: 원 없이 소리를 키워서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 작업실에서는 저녁 9시 이후에는 그게 불가능하니까. 음악을 크게 트는 데서 오는 해방감이 있다. 음악 만드는 데는 공간이 제일 중요하다. 소리를 잡아내는 것의 끝에는 공간 문제가 있고.
킬드런: 나는 천장이 없는 곳이 좋다. 길에서 그림을 많이 그리는데, 천장이 뚫리고 하늘을 볼 수 있어서다. 우울하게 그릴 때는 천장이 낮고 밀폐된 곳이고. 그럴 때 그리는 그림들은 색깔도 달라진다. 작업실로는 옥탑을 좋아한다. 지금 작업실은 1층인데, 옥탑에 펜스를 쳐서 거기서 작업하고 싶다. 하늘과 맞닿아 있는 걸 되게 좋아하고, 높은 데서 내려다보며 음악 크게 틀어도 뭐라고 안 하는 느낌이 좋을 거 같다. 지금은 음악을 너무 크게 틀면 집주인이 내려오시더라. (웃음)
에피톤 프로젝트: 난 예전에 작업실이 지하였는데 빨리 여기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빛을 못 받으니까. (웃음) 지금은 4층이 작업실이라 빛도 받고 환기도 하고 있다.
킬드런: 그래서 공동 작업실이 하나 더 있긴 하다. 여러 명이 깎고 분진 날리고 하는 그런 작업을 하는 곳인데, 거기서 일하고 나서 술 마시면 폐가 아프다. (웃음)

그런 작업실에서 나와서 음악도 들려주고 그림도 보여주는 프로젝트를 하게 됐다. 그 공간에 함께 있을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나.
에피톤 프로젝트
: 25일에는 공연도 함께하는데, 이런 공간에서 공연하는 건 처음이다. 재밌을 거 같다. 오시는 분들도 좋은 추억 만드셨으면 좋겠고.
드런: 자연스럽게 애쓰지 않고 내 사랑의 기억들을 풀어냈다. 스치듯 바라봐주시면 감사하겠다.

글. 강명석
사진. 이진혁(스튜디오 핑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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