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기둥들│① 강신일 “연극은 나와 너를 알아가는 과정”

2014.11.25
연극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이하 <왜 나는…>)의 후반부, 작‧연출가로 등장하는 김재엽이 한 곳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시인 김수영과 그의 일대기를 쭉 따라온 배우 강신일이 서있다. 한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시인은 자신의 삶과 시를 동일시하려 부단히 애썼고, 배우는 그 소용돌이를 무대 위에 적확하게 그려내기 위해 수없이 고민했다. 34년간 지금, 여기의 고민을 놓지 않았던 강신일이 아니었다면 이 연극은 완성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를 만나 연극이라는 장르의 존재 이유에 대해 물었다.


<왜 나는…>은 작가가 아무런 시놉시스도 없이 배우를 만나 설득하는 과정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언제 이 작품에 대해 알게 되셨나요.
강신일
: 김재엽이가 얘기하기 이전에 한재권 음악감독에게 얘기를 들었어요. 재엽이가 새 작품을 준비 중인데 형을 생각한다 였는지 혹은 자기가 재엽이한테 나를 추천했다고 한 건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얘기를 전달받았죠. 그리고 두 달 후 6월에 재엽이를 만났어요. 여전히 시놉시스도 없었고 그냥 머릿속에 생각만 있었던 상태였던 것 같은데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았어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는 상태인 셈인데 어떻게 승낙을 하신 건가요.
강신일
: 2001년에 <진술>이라는 모노드라마를 할 때 재엽이랑 각색 작업을 같이 했었어요. 그 친구에게는 아마 그게 첫 작업이었을 겁니다. 이후로 재엽이는 자기 작품을 꾸준히 써내면서 작업을 하고 있었고 그걸 매번 가서 보진 못해도 지켜보고 있었죠. 흐트러짐이 없고 생각이 많고 재치 있는 재능이 뛰어난 친구이기 때문에 이런 작업을 구상 중이라고 했을 때는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이 연배쯤 됐으면 그렇게 뭔가 꾸준히 작업을 해온 젊은 친구들의 작업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속생각도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갖게 되셨나요.
강신일
: 한 10년쯤 된 것 같습니다. 지금은 워낙 연극영화과도 많이 생기면서 졸업한 사람도 공부한 것으로 자기 길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10년 전에는 그게 덜했어요. 선생이 많이 필요했던 시기였고 나는 그런 걸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제안들이 들어왔죠. 주변 사람들한테 모니터를 해봤더니 한결같이 하는 얘기가 있었어요. 그 당시 20여 년 넘게 무대에서 살아온 경험이 그 자체로 아이들에게 교육이 될 거라고. 나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을 잘 못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피해 갈 길은 아니다 싶어서 수락했죠. 그 이후로 10년 동안 계속 학교를 나가고 있어요. 젊은 친구들과의 작업에 대한 생각은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마르고 닳도록>, < B언소 >, <거기>, <슬픈 연극> 등 극단 차이무와의 작업을 놓치지 않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까요.
강신일
: 굳이 차이무에만 국한을 둘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차이무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연우무대에 오랫동안 있었고, 거기서 파생된 극단들이 있습니다. 그 영향 안에서 자기들끼리 새로운 걸 하는 젊은 친구들이 있죠. 그 아이들이 어떤 자세로, 어떤 심성으로 하는지 다 아니까요.

<왜 나는…>은 김수영 시인의 일대기와 현재 연극을 올리는 과정이 맞물려 진행되는 연극입니다. 김수영 시인의 시는 익숙하셨나요.
강신일
: 김수영 시인은 청년 시절에 꽤나 좋아했었지만 다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 작업을 한다는 것이 사실 좀 반가웠어요. 유신 말년에 대학을 들어갔으니까 그 당시 김수영, 김지하, 문병란, 양성우 씨 등 풍자를 넘어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시들을 많이 읽었어요. 극 중에 등장하는 ‘육법전서와 혁명’이나 ‘가다오 나가다오’ 같은 건 그 시절에 읽을 때도 가슴이 뜨거웠죠.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부끄러운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것도 그것이지만, 그런 말들을 쏟아낼 수 있었던 이 사람의 자세나 정신 그런 게 더 보여요. 그 모습이 더 훌륭하다는 것도 알게 됐고.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여러 자극이 되고 교훈이 되는 분 같습니다. 


1985년 연우무대에서 데뷔한 이래 <칠수와 만수>, <4월 9일>, <날 보러 와요> 등 시대정신을 담은 창작 연극 작업을 주로 해오셨습니다.
강신일
: 제가 연극을 하는 이유도 분명히 그런 겁니다. 사실 이 세상을 바꾸려면 정치를 해야죠. 근데 그럴 능력은 없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의 반대편에 서서 그들과 싸우는 것도 내가 할 몫은 아니고 그럴 능력도 안 되죠. 우리에게 훌륭한 선생이 있어서 시대의 어떤 정신이나 삶의 철학 같은 것들을 가르치고 모범을 보이는 그런 사회가 되면 참 좋겠지만 그럴 수도 없고, 대통령이나 정치 지도자들 역시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없으니 기대할 건 아무것도 없어요.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암울한데 그런 정신적인 방향성, 도덕성 같은 것을 지탱하고 제시해야 하는 분야가 난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연극을 시작했고, 아무 작품이나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가능하면 우리 시대에 우리가 고민하고 있고, 고민해야 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을 짚어가면서 연극을 하면 더없이 좋겠다고 생각해요.

80년대에는 그런 작업을 하기 더 어려운 시대가 아니었나요.
강신일
: 그때는 공연윤리위원회라는 게 있어서 대본 사전 심의도 하고 그랬지만 그래도 하나도 두렵거나 걱정되지 않았어요. 그때는 젊어서 그랬나? (웃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권을 유린하고. 나쁜 태도고 나쁜 일이죠. 근데 교묘한 지금에 비교하면 그때는 정말 순박했어요. 오히려 더 큰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자기검열을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가장 무섭죠. 사람들의 사고가 열려야 되고 이런 식의 이야기가 있어야 합니다. 대통령? 얼마든지 풍자할 수 있어야 해요. 우리가 봉건시대를 사는 것도 아닌데. 이 사회에 문제가 있는 거죠. 김수영 시인이 시는 온몸으로 쓰는 것과 다름없다고 하는데, 내가 연극을 하는 것 역시 감히 시인의 표현을 빌자면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이고 어느 정도 그렇게 해왔던 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극중 “배우는 가면을 쓰는 게 아니라 벗는 것”이라는 대사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신일
: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교과서적으로 연기는 어때야 한다고 정의 내릴 수 없어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기 머릿속에서 상상되는 것들을 다 풀어내면 그것이 연극이고, 그걸 사람이 행동으로 옮기면 그게 연기라고 생각합니다. 연우 시절부터 평소 모두가 알아듣고 서로 통용되고 지극히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말을 써왔으니 그건 가면을 쓰면 안 되는 일이었어요. 어차피 연기라는 건 본인 자체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를 벗어날 수 없어요. 여러 캐릭터를 연기하고 실생활과 캐릭터의 모습이 다르다 해도 어차피 강신일이라는 한 사람의 몸에서 다 나오는 거니까 이 캐릭터 안에도 강신일의 모습이 있을 거라는 말이죠. 어떤 법규나 틀이 있기 전 이미 인간은 순수 그 자체의 자연이고, 그 본모습을 찾아가는 게 나에게 있어서는 연기인 셈입니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서 나라는 존재를 확연히 규정짓고 사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찾아가는 겁니다. 점점 확장해나간다고 생각하면 돼요. 그래서 이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지만 결국은 너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죠.

그 결과물이 관객에게도 잘 전달되고 있다고 믿고 계시나요.
강신일
: 관객들은 이미 공연을 보면 다 알아요.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으로 더 많이 느끼고 알아가죠. 그래서 우리는 특별히 무언가를 관객에게 요구하지 않아요. 그런 과정들을 통해 분쟁은 많이 줄어들 겁니다. 입지는 없어야 하는 게 맞고, 벽은 허물어야 하고, 분쟁은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서 막혀있고 닫혀있는 것에 대해 자꾸 얘기를 해야 되는 거죠.

김수영 시인이 시로 투쟁하듯, 선생님께서는 연극으로 투쟁하는 느낌이 드네요. (웃음)
강신일
: 연우 시절은 제 연극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어요. 순간이 아니라 그 자체 통으로 기억될 만큼. 그때도 경제성장을 부르짖고 무한 경쟁을 요구하던 사회였는데 난 자신이 없었어요. 기껏 할 줄 아는 게 연극이었는데, 이 작업을 통해 아주 작게라도 어느 한 사람이 어떤 깨달음을 얻거나 마음의 구원을 얻는다면 이것만큼 훌륭한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매 순간 아주 즐겁게 일을 했죠. 하지만 시인과 나를 같이 얘기하는 건 부끄러운 일입니다.

왜 그런 이야기들이 불편하게 느껴지시나요.
강신일
: 작품 안에서 연우 시절의 연극들이 소개 되면서 내 34년 연극 인생이 그려지죠. 재엽이가 작품을 꾸려 가는데 있어서 그 시절이 필요했으니까 찾아서 넣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민망합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배우 강신일을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는 스스도 자랑스러워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나는 부족하고 모자라니까요. 나름대로 애쓰면서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는 있지만 감히 내가 김수영이라는 시인과 시대를 초월해 만나고 대등하게 말할 수 있는 존재일까를 생각해보면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김수영 시인은 굉장히 용기 있는 분이고 그런 용기는 스스로가 투명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거니까요.

어떤 점이 그렇게 부끄러우신가요. (웃음)
강신일
: 여전히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고 있는 것 같죠. (웃음) 분개만 하고 있고 행동에는 미약한.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란 연극 작업을 통해 힘이 되게끔 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렇게 위안을 하는 거죠.

하지만 그런 작업을 하는 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의 존재가 더욱 필요한 것 아닐까요.
강신일
: TV, 영화 작업을 같이 하다 보니 1년에 연극을 많이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일단 나에게 제안이 들어오는 건 기본적으로 다 하고 싶어요. 나를 찾는 사람들이 심사숙고했을 테니까요. 그래서 허투루 쓰인 작품이 들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래서 그런 고민을 하는 친구들에게 힘을 주고 싶은 거고요.

갈수록 모든 것에서 양극화되는 2014년에도 연극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강신일
: 여전히 연극 작업을 한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제작비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지만 입장 수익은 그대로 정체되거나 반비례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면 꾸준한 작업을 하기 위해, 운영을 위해 상업적 마인드와 타협해서 하는 작업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어요. 예전처럼 공통의 목표나 정신 지향점을 갖고 가는 집단이 많이 사라졌죠. 프로듀서들이 기획하고 제작하는 현실이 많아졌습니다. 때로 좋은 작품들도 있지만, 좀 더 시대에 대한 고민이나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이 담겨있는 연극들이 한쪽에서는 꾸준히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모든 연극이 다 그래야 하는 건 아닙니다. 연극은 재밌어야 하고, 편안해야 하고, 즐거워야 하는 게 기본입니다. 그런 것들이 당연히 필요하지만 정신을 지키고 시대의 고민을 같이 나눠주는 한 축이 있어야 해요. 그런데 이런 작업을 하는 젊은 친구들이 늘 외진 데서 하고 있어서 가슴이 좀 쓰립니다. 국립극단이나 명동예술극장, 서울문화재단 등지에서 좋은 작품을 개발하고 꾸준히 관객을 유치하면서 훌륭한 성과들을 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문화예술 쏠림 현상도 있거든요. 어두컴컴한 곳에서 뭔가를 열심히 고민하고 만들어내는 친구들을 위한 작업도 필요하고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글. 장경진
사진. 이진혁(스튜디오 핑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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