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희 야구전문기자 “나는 실수를 조금만 해도 여기서 못 살아남는다”

2014.11.28
좋거나, 혹은 싫거나. 박동희 기자에 대한 야구팬들의 평가에 중간은 없다. 누군가는 그의 긴 글이 야구계의 다양한 맥락을 짚어줘서 좋다고 말하지만, 누군가는 그의 글이 읽기엔 너무 길다고 불평한다. 누군가는 그의 문장이 건조하지 않아서 읽는 맛이 있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감성 팔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그가 1인 매체이기에 조직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후련한 기사를 써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에게 그는 대형 포털에 기생하는 한낱 블로거일 뿐이다. 과연 그는 양면적인 존재일까, 아니면 같은 대상에 대한 전혀 다른 시선들이 존재하는 걸까. 최근 롯데 자이언츠의 CCTV 사찰 전모와 프로야구 공인구 문제를 공론화하며 그 어느 때보다 논란의 중심에 선 그를 직접 만나보았다. 판단은 자유지만 어쨌든 대상에 대해 조금은 더 잘 알고 판단하는 게 옳을 테니까. 좋거나, 혹은 싫거나.

얼마 전 미국에 다녀온 걸로 안다. 어떤 일이었나.
박동희
: 월드시리즈를 보려고 다녀왔다. 내가 올해 메이저리그 해설을 좀 많이 했었는데, 사실 직접 경험하지 못하고 인터넷 자료를 보고 얘기하는 게 어색하고 앵무새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월드시리즈는 메이저리그에서도 가장 큰 무대 아닌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일본계 미국인 야구기자가 있는데 그분도 나에게 야구기자라면 꼭 직접 봐야 할 세 가지로 리틀 월드시리즈, WBC, 월드시리즈를 추천했었다. 나머지 두 가지는 본 상태라 이번에 드디어 남은 하나인 월드시리즈를 보고 왔다. 직접 보니 이게 왜 괜히 ‘월드’시리즈라 불리는 게 아닌지 알게 되었다. 게임의 규모, 스태프의 열정, 선수들의 경기력, 관중의 성숙도, 모두 정말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다. 그런 현장을 보고 여러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것 자체가 큰 행운이었던 것 같다. 나는 야구를 다루는 야구기자인데, 그런 내가 보기에 저 미국 야구는 금광이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금광. 물론 일본과 미국 매체에서는 이 금광을 거의 다 캤지만, 한국 기자 입장에서는 아직 많은 금이 남아 있다. 커다란 금광을 발견하고 온 기분이다.

야구기자로서 이제 메이저리그를 본격적으로 취재하겠다는 걸로 받아들여도 될까.
박동희
: 내년부터 메이저리그 취재를 하려고 한다. 한국 프로야구는 십 년 넘게 다뤘고, 일본도 해마다 가서 이제는 궁금한 게 있으면 구단에 전화해서 물어볼 정도는 된다. 하지만 미국에는 아직 네트워크가 없다. 내년에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네트워크도 구축하고 더 많이 배우려 한다.

앞서 금광이라고는 했지만 당장 금맥을 잡기는커녕 곡괭이로 갱도부터 뚫어야 할 텐데.
박동희
: 내가 처음 기자 생활을 한 게 서른 넘어서다. 그것도 사람들이 잘 아는 스포츠 일간지가 아닌, 주간지인 <스포츠 2.0>의 창간호 멤버였다. 내가 현장에 나갔을 때 구단 사람도 기자들도 내가 누군지 몰랐다. 그렇게 2년을 매체 기자로 일하다가 네이버와 계약을 맺고 1인 기자가 되었을 때도 나는 그리 유명한 존재가 아니었다. 이름은 들어봤지만 정확히 뭘 하는지는 모르는 그런 애였다. 잘 쓴다, 잘 못 쓴다, 이런저런 비평과 비판도 많이 받았다. 그렇게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중요한 건 나를 무수히 비난하던 사람들 상당수는 이 분야를 떠났지만 나는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거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미국 기자들 입장에서도 나는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 모를 놈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 의식하지 않고 나만의 스텝을 밟아서 저널리스트의 삶을 살면 된다고 본다. 흔히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하는데, 미국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원점에서부터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미국 취재를 하며 네이버 스포츠 칼럼 연재는 어떻게 진행할 것 같나.
박동희
: 아직 결정을 짓진 못했다. 기본적으로 네이버는 최고의 파트너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독자를 만날 수 있는 최고의 플랫폼이고 담당자들의 능력이나 의식의 성숙, 호흡, 이런 것 모두 최고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면 이 지면을 통해 독자들을 만나는 게 내 바람인데, 이건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말한 것처럼 최고의 플랫폼이고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 모를’ 사람이 지금의 위치에 온 건 네이버 연재의 힘이 컸는데, 당시 네이버는 대체 왜 본인에게 연재 제안을 한 것 같나.
박동희
: 지금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웃음) 나보다 뛰어난 분들도 많은데. 아마도 수많은 스트레이트 기사나 속보성 기사와는 달리, 독자가 ‘왜’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왜 그랬을까, 그 이면엔 뭐가 있을까, 이런 걸 제공해주고 싶었는데 그걸 보고 나에게 기회를 준 게 아닐까. 나는 지금까지 기사 쓰면서 한 번도 단독, 속보, 이런 타이틀을 단 적은 없다. 그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지금은 특종이 아무 의미 없다. 만약 내가 박동희 누드모델 선언, 뭐 이런 기사를 단독이란 타이틀을 달고 냈다고 보자. 그러면 5분 정도 지나 여기에 두세 줄 덧붙인 다른 매체 기사가 내 기사 위로 올라간다. 단독이나 특종이라고 했을 때 그 유효기간이 최소 하루는 되어야 하는데 세상이 변했다. 그렇다면 내 입장에서 중요한 건, 먼저 알게 된 걸 터뜨리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몰랐던 걸 알려주는 거다. 그 임무에 충실하려다 보니 기존의 야구 기사와는 스타일이 달라졌다.

그러면서 장문의, 그것도 미문인 스포츠 기사라는 게 박동희 기사의 정체성이 되었다.
박동희
: 나는 각 문단마다 직유나 메타포를 넣으려 하는데, 기사도 결국엔 글이다. 구체적 상황을 묘사해줄 필요도 있고 그걸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 상상하며 풍성하게 재구성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기사는 아이스크림이 되어야 한다. 달콤해야 한다. 왜냐고? 읽혀야 하니까. 물론 내 방식이 야구 기사의 메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스포츠 종합지 기자들을 좋아하는데, 내가 하는 건 그들이 바쁘거나 때론 환경상의 제약 때문에 못 하는 걸 대신 하는 거에 가깝다. 그들이 지면에 다 담지 못하는 빵 부스러기를 잘 주워 모아서 내 방식으로 서비스하는 거지.

조금 민감한 얘기지만 그런 정체성 때문에 ‘박 블로거’라는 폄하의 별명도 생겼다.
박동희
: 나는 블로그를 기사 플랫폼으로 사용한 적이 없다. 기사 계약 조건 중 하나가 블로그를 활용해달라는 거고, 내 블로그를 찾아오는 많은 분들을 위해 블로그에도 기사를 옮겨놓는 것뿐이다. 오히려 나는 솔직히 블로그 저널리즘에 대해 부정적이다. 블로그나 SNS가 언론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 적도 있지만, 결국 블로그 저널리즘은 스포츠 신문 기자가 취재한 내용을 원 소스로 해서 비평하는 방식이다. 굉장히 훌륭한 관점과 문장을 갖춘 분들도 있지만 어쨌든 취재를 통한 소스 확보가 없다면 변별점을 갖기 어렵다. 지금처럼 누구나 기사를 쓸 수 있는 시대에 결국 살아남는 건 더 프로페셔널한 기자 아닐까. 그럼에도 나에게 그런 별명이 생긴 건 동료 기자나 혹은 독자들이 내 기사를 블로거가 쓴 것과 똑같다고 생각해서일지 모르겠는데, 슬프지만 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블로거라는 걸 인정한다기보다는 누군가에게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거지.

걸 본인이 생각하는 스포츠 저널리즘의 올바른 방향이라 생각해도 될까.
박동희
: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단 두 가지다. 전문성과 근성. 나에게 있어서 저널리즘은 일차적으로 글을 써서 먹고사는 문제다. 그게 해결된 이후에 대한민국 야구 발전도 생각하는 거지. 나는 독립투사가 아니다. 다만 내가 먹고살고 가족을 부양하려면 전문성과 근성을 가지고 좋은 기사를 쓸 수밖에 없는 거다. 하지만 이걸로 밥을 먹고 살 게 아닌 사람들에게 전문성과 근성을 요구할 필요는 없지.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면, 기자 윤리는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박동희
: 아주 현실적인 얘기인데, 나는 실수를 조금만 해도 여기서 못 살아남는다. 나를 끌어내리고 싶어 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 작은 실수라 해도 나에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나는 조직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1인 기자이기 때문에 나 혼자 모든 걸 책임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기사 하나를 써도 변호사 세 분에게 미리 보여드린다. 이번 롯데 자이언츠의 CCTV 사찰 관련 기사도 그분들에게 보여드리고 법적으로 과연 문제의 소지가 없을지, 이 자료가 신빙성이 있는 건지 다 검증을 구한다. 그렇게 안전장치를 마련한다. 그리고 구단 사람과 술을 마시고 촌지를 받는 게 누군가에겐 관행이 될 수 있지만 나에겐 부도덕과 부패가 될 수 있다. 내가 깨끗하고 도덕적으로 완벽해서가 아니라 꼬투리를 잡히면 지금 내가 서 있는 지점에서 떨어지기 때문에 안 하는 거다. 윤리의식이 높은 게 아니라 살기 위해 윤리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

생존 얘기를 하니 ‘타.어.강’ 얘기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예측이 틀렸을 때 기자에게 너무 리스크가 큰 방식의 글이었던 것 아닌가.
박동희
: 그 제목은 내가 단 게 아니지만 다시 돌아가라고 해도 ‘타.어.강’이란 제목을 달았을 거다. 사실 그 기사를 보면 불펜 문제를 비롯해 당시 KIA 타이거즈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이 많았다. 그럼에도 그 시점에 그런 예측 기사를 쓴 건 그런 예측을 할 만했기 때문이다. 나는 기자와 기상예보관이 비슷하다고 본다. 주어진 데이터와 변수들을 종합해서 예측을 하지만 틀릴 수도 있다. 맞추는 확률이 높을수록 좋겠지만, 환경이란 건 늘 변화한다. 누가 알았겠나. KIA 선수들이 그렇게 줄부상을 당할지. 미국의 경우 구단 취재가 한국보다 어렵기 때문에 유독 루머 기사가 많다. 하지만 그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기사를 읽고 그냥 이런 소문, 이런 예측이 있구나, 보고 끝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예상이 예언이 되어야 한다. 다 맞아야 한다. 그런 관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쓴 수많은 기사 중 다시 돌아가면 좀 고치고 싶은 기사가 있나.
박동희
: 하나 있다. 대한민국 야구 기록사에 대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취재원이었던 전문통계회사에서 자신들의 자료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개인 사이트들에 강력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그때 내가 기사에 중요 개인 통계 사이트로 인용한 ‘스탯티즈’라는 사이트가 문을 닫게 됐다. 누군가는 왜 사이트의 실명을 썼냐고 묻더라. ‘스탯티즈’를 언급한 건 내가 보증할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이었다. 직접 가서 보시라, 많이 이용하시라, 그런 의미였지만, 어쨌든 결과는 그렇게 됐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누군가는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만약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스탯티즈’ 운영자의 입장까지 충분히 담아내는 기사를 썼으면 싶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까. 누군가는 그러면 기사를 다시 써서 변명하라고도 했는데, 그렇게 되면 앞서의 기사는 기사가 아닌 내 소유물 같은 게 되어버린다. 하지만 기사가 내 손을 떠난 순간 그건 내 것이 아니다. 그걸 가지고 사람들이 비판을 하건 오해를 하건 내가 관여할 건 아니다.

기자는 기사만으로 말한다는 것인가.
박동희
: 기자는 기사로 승부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올해는 방송 프로그램, 토크쇼, 어느 한 곳도 안 나갔다. TV에 나오면 권위가 있어서 나온다고 생각하기보다 나댄다고 생각한다. 요즘 기사 악플이 줄어든 이유 중 하나라고 본다. (웃음)

그럼 기자라는 영역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는 없나.
박동희
: 있지. 나는 기사 쓰기 싫을 때가 너무너무 많다. 한 줄도 안 써질 때도 있고. 그러다가 어떤 좀 흥미로운 제안들이 온 게 있다. 방송 관련한 제의도 있었고. 하지만 지금 내가 기사에 집중하는 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게 뭔지 아나? 나는 집에 가면 TV 프로그램을 딱 한 채널만 본다. 야구가 아니라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 동물, 세계 2차 대전, 우주, 뭐 이런 것들을 보면서 아, 나도 저기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면 잘할까? 아닐 거다. 내가 지금 야구기자를 하는 건 그나마 내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잘할 수 있어서다. 그럼 이걸 열심히 하는 게 맞지.

야구에 대한 애정보다 잘하는 일을 한다는 게 지금 직업에서 더 중요한 일일까.
박동희
: 원래는 잘하는 일을 하는 게 더 중요했다. 그런데 지금은 야구에 대한 애정이 더 커졌다. 내가 요즘에 쓰는 기사들, 공인구 문제라거나 롯데의 CCTV 사찰, 또 돌아가신 최동원 감독님에 대한 글은 정말 공을 많이 들였다. 조금 대충 써도 됐겠지만, 내가 사랑하는 야구를 더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이번에 미국 간 것도 사비로 500만 원 정도 들여서 간 거다. 만약 그때 한국에서 방송하고 글 썼으면 오히려 500만 원을 벌었겠지. 나 같은 프리랜서 기자가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이 분야를 사랑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분야에서 성취하고 싶은 게 있나.
박동희
: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어떤 젊은 기자에게 “옛날에 말이야, 류현진이라는 선수가 있었는데, 걔 공 봤어? 못 봤으면 말을 하지 마” 이러면서 옛날 얘기를 해줄 수 있는 그런 기자가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좋은 친구로 남고 싶은 마음도 없고 존경받고 싶지도 않다. 그냥 여기서 오래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글. 위근우
사진. 이진혁(스튜디오 핑퐁)
교정. 김영진



목록

SPECIAL

image 장성규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