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의 신의정, 용기의 다른 이름

2014.11.27
“무슨 복이 있는지 지금까지 다 키스신이 있었는데, 남자가 먼저 한 적이 없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모두 그랬다. 신의정이 맡은 여자들은 늘 무언가를 박차고 나온다. 겹겹이 쌓인 수녀원(<돈 주앙>)과 궁(<궁>)은 물론이다. 긴 머리를 싹둑 자르고 경성시대 모단걸(<콩칠팔 새삼륙>)이 되거나 농락당하기만 하던 클럽을 벗어나 새 인생(<지킬 앤 하이드>)을 꿈꾸기도 한다. 연극 <뜨거운 여름>의 고등학생 채경과 사랑도 마찬가지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유학을 가고, 부모님의 반대를 피해 대학생 오빠와 해변을 뛴다. 그러니 신의정의 다른 이름을 ‘용기’라 해도 좋겠다.

1. 배우입니까?
Yes.
2007년 <렌트>로 데뷔해 <돈 주앙>, <카페인>, <페임>, <콩칠팔 새삼륙>, <지킬 앤 하이드> 등을 했고 지금은 연극 <뜨거운 여름>에서 채경/사랑 역을 맡았다.

2. 연극은 처음입니까?
Yes.
워낙 노래를 좋아했기 때문에 뮤지컬배우가 꿈이었지만, 막상 해보니 연기가 더 필요하다는 걸 두 번째 작품에서 바로 깨달았다. 연기 잘하는 사람이랑 한 달만 합숙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까. (웃음) 1년 전 결혼을 하게 되면서 기회를 좀 놓치고 조바심이 나기도 했었는데, 오히려 그 이후에 공연이 더 좋아졌고 연극이 정말 하고 싶어졌다. 다른 공연을 같이 한 (김)지현 언니랑 정연 언니한테 그렇게 연극 얘기를 많이 했다. 하게 해달라고. 그런데 어느 날 <뜨거운 여름>에 같이 출연하는 (유)연 언니한테서 “오디션 한번 볼래?”라는 얘기를 듣고 그냥 뭐라도 하겠다고 덤볐다. (웃음)

3. 자신이 있었습니까?
No.
워낙 간다 작품을 좋아해서 오디션을 보겠다고 했지만, 역할이 고등학생이라는 걸 알았으면 안 봤을지도 모른다. 노래하는 고등학생? 첫사랑? 어떻게 해! 내가 생각하는 내 이미지는 약간 성숙인데 원하는 역할이 전혀 달라서 완전 당황스러웠다. 현장에 갔더니 예쁘고 어린 친구들이 통기타 들고 있고. ‘사랑과 우정 사이’랑 ‘너의 마음을 내게 준다면’이 극에 등장한다고 준비하라 했는데 또 그 세대는 아니라 노래도 잘 모르겠고. 연출님은 연기는 시키지도 않고 딴 얘기만 계속 하고. 나오면서 분명히 안 되겠구나 싶었다. 근데 집에 오고 30분 후쯤 합격 소식을 들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진짜!! 감사합니다!!” 막 이랬다. (웃음)

4. 초심을 찾았습니까?
Yes.
마치 학생 때, 데뷔했을 때 같았다. 아직도 내가 이럴 수 있구나 싶어서 정말 떨렸다. 흥은 많은데 밖에서는 하지 못하는 수줍음 많은 어린애였다. 2살 터울 언니는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운동도, 미술도 잘했고 항상 임원도 하고 못하는 게 없었다. 난 언니랑 반대 스타일인데 언니랑 얼굴도 비슷하다 보니 언니는 항상 경쟁 상대였고, 그래서 내가 잘하는 걸 늘 감춰왔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노래방 다니면서 알았다. 내가 노래를 좋아하고 잘한다는 걸. 잘하는 게 하나 생기니까 외모도, 표정도, 말투도, 친구들도 다 변했다. 그걸 오래간만에 다시 느끼게 됐지.

5. 집중력이 좋은 편입니까?
Yes.
하나에 꽂히면 확 가는 게 심하다. 옛날엔 소리가 지금보다 훨씬 두껍고 기름지고 통이 좋았다. 노래만 생각하면서 왔다가 연기가 훨씬 좋아지기 시작하면서 노래 잘한다는 말이 어느 순간 듣기 싫어졌다. 미친 거지. (웃음)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 보니 그렇게 하고 싶어 했던 <지킬 앤 하이드>를 하게 됐을 때는 겁이 덜컥 났다. 노래를 오랫동안 버려두고 있었으니까. 레슨을 다시 시작했고, 그렇게 노래에 다시 꽂혀서 <스팸어랏>에서 노래만 또 미친 듯이 했는데 지금은 또 그 노래 다 까먹었어. (웃음)

6. 도움을 받은 이가 있습니까?
Yes.
(양)준모 오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폭포수 앞에서 득음하듯이 노래했다. 진짜. 은인이다. 속으로 들어가서 혼자 하는 스타일인데 너무 급하면 밖까지 이야기가 나오게 되더라. 고음이 안 돼서 지나가는 사람들 붙잡고 빨리 알려달라고 할 정도였는데도 준모 오빠만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다. 그러다 일주일 전쯤 갑자기 불러서 가르쳐줬는데 한 번에 바뀌었다. 오빠가 “되잖아” 이러는데 (웃음) 간당간당하게 진짜 노래가 되는 거다.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쳐줄 정도였다. 당시 <지킬 앤 하이드>가 4개월 동안 지방 공연을 했는데 그 기간 내내 오빠가 공연 모니터, 레슨을 다 해줬다. 4개월 후 서울로 왔을 때는 한 번도 힘들지 않았다. 한 길밖에 못 쓰는 애였는데 덕분에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됐고 두성, 진성, 흉성, 가스펠 다 나오는 <스팸어랏>을 할 수 있었다.

7. 욕심이 많습니까?
Yes.
자존심이 세다. 의욕은 많은데 대신 급하다. 차분히 더 열심히 하면 될 걸 그러지도 않으면서 욕심만 많다. (웃음) 지금 이 작품도 워낙 배우들이 다역을 해야 해서 나보다 더 바쁜데 막 치고 나가고 혼자 난리를 친다. 이젠 보다 못해 스태프들이 도와주는데 막상 그러고 나가면 너무 오랫동안 혼자 기다리고 있고. 뮤지컬 할 때도 그랬다. 뭐든지 빨리 준비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럴 때 사람의 본성이 보이는 거지.

사진제공. 스토리P

8. 현재 잘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Yes.
‘드래곤 플라이’ 날갯짓 이런 게 힘들다. (웃음) 움직임을 잘하는 배우가 아니었고 <페임>도 어떻게 어떻게 해서 춤은 좀 는 부분이 있다. 근데 움직임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어서 거기서 부딪혔다. 잘해내고 싶은데 아직도 좀 부끄럽다. 게다가 (진)선규 오빠가 워낙 몸을 잘 쓰니까. 언젠가 잘하겠지라는 생각으로 하고 있는 거다. (웃음)

9. 목표가 뚜렷한 편입니까?
Yes.
목표를 갖고 작품 선택을 하긴 하는 것 같다. 무언가를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재미를 느낀다. ‘코미디를 해보고 싶어’라고 생각했을 때 <스팸어랏>을 했고, 이번에는 ‘진짜 하고 싶은 걸 하자’라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을 하게 됐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지금은 이게 행복의 전부로 느껴질 정도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감성적으로 빠지는 걸 극도로 꺼리는 편이다. 너무 오그라들어서 더 와일드하게 행동하는데, 이 팀은 매일매일 “사랑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를 말로 표현한다. 그러다 보니 배우들 자체가 재밌어하는 게 무대에서 보이고 그것만으로도 공연을 다 살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건 정말 최고의 칭찬 아닌가. 뜨거운 열정에 대해 얘기하는 작품인데 서로가 또 그렇지 않으면 거짓말하는 거니까.

10. 감정 표현에 서툰 편입니까?
Yes.
방식이 다른 것 같다. 나는 좋으면 더 갈구거나 짓궂게 장난을 치는 편이다.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 건지 아니면 내가 워낙 감정적인 스타일이라 피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막공 때도 울지 않고, 심지어 결혼식 때도 사람들이 너무 공연하는 거 같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웃음) 평소에 느끼면서 살자는 주의라 그런 것 같기도 하다.

11. 현실적입니까?
Yes.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다 해결하고 힘든 얘기는 정말 요만큼도 안 꺼내서 문제일 정도다. 친구들 상담을 많이 해주는 편인데 왜 그런가 생각해보면 내가 항상 중간에서 얘기를 해줘서인 것 같다. 그게 안 좋은 부분도 많지. 너무 이성적이고 차가워서. 하지만 그게 또 나니까. 영화를 봐도 판타지, 로봇, 맨 시리즈 이런 건 아예 안 본다. 너무 현실적이라 그런지 그 안에 훅 빠져들지를 못한다. (웃음)

12. 강박적인 편입니까?
No.
주변이 정신없을지언정 밝은 게 좋다. 어두운 기운을 전파시키는 게 나한테는 더 불편하다. 워낙 밝은 성격이지만, 한동안은 내가 강박적으로 활발한 척하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실제로 기분이 안 좋을 때도 밝은 척하고 다닌 적도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내가 잘하는 모습이 이거니까 이걸 꺼내려고 하는 거겠지, 라고 생각하려 한다. 근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그렇지 않나.

13. 스스로와 이미지 사이의 괴리가 있습니까?
Yes.
뮤지컬은 보통 음성을 보고 이미지를 만든다. 내 목소리가 워낙 허스키하고 낮아서 강한 걸 생각하고, 어릴 때는 워낙 세 보인다는 얘기를 많이 듣기도 했었다. <위대한 캣츠비> 할 때는 서른 넘은 줄 알았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는데 그때가 스물둘이었다. (웃음)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난 아예 강한 것도, 그렇다고 너무 사랑스러운 걸 한 것도 아니라서 뭘 해야 되는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소리도 그때그때 바꿔야 해서 한편으로는 나만의 뚜렷한 이미지를 갖고 싶었다. 그런데 그동안 했던 열 개가 넘는 작품을 보니 캐릭터는 달라도 모두가 능동적인 여자들이었다.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사람들이 밝은 게 훨씬 어울리는 얘기를 많이 해줬고 벽이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아마 옛날이었으면 채경이 역할도 ‘예쁜 척하는 거 아니야?’ 하면서 안 했을 거다. 똑같이 왈가닥이었던 부분이 있지만 조금씩 깎이면서 매만져 가는 단계고, 연 언니가 그걸 참 많이 도와준다.

14. 꿈꾸는 미래가 있습니까?
Yes.
기존의 연출님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캐릭터의 이미지에 맞게 디렉션을 줬다면, (민)준호 연출님은 상대방을 보고 거짓말하지 않게끔만 해주면 어느 순간 캐릭터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런 식의 디렉션이 너무 신기했고 그것에 대한 훈련을 정말 많이 받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간다 부작용 있는 거 알아?”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선규 오빠가 다른 데 가서는 못하나? 절대 아니다. 다음 작품은 뮤지컬인데 이 경험을 통해서 적용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은 있다. 하지만 내가 잘하면 되니까. 결국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

15. 마지막으로, 당신은 누구십니까?
신의정.
1985년. 밝고 단단한, 건강한 여자.

글. 장경진
사진. 이진혁(스튜디오 핑퐁)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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