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브래드 피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십

2014.11.24

언젠가부터 브래드 피트는 좌절에 익숙해진 표정을 짓는다. 몸값이 오른 선수를 붙잡지 못하는 프로야구 구단 단장(<머니볼>), 인류의 희망으로 보이던 박사가 죽는 걸 속절없이 봐야 하는 UN 조사원(<월드워 Z>), 운반 중인 마약을 통째로 잃어버린 마약 중개인(<카운슬러>), 부하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군인(<퓨리>).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 순위 1위 자리에 지정석을 놓고 살던 이 잘생긴 배우는 최근 개봉작 <퓨리>를 비롯한 유독 근래 5년여의 필모그래피에서 깊숙한 고민의 주름이 새겨진 얼굴을 보여준다. 물론 그의 나이 오십, 꽃 같은 외모로 <가을의 전설>의 트리스탄과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의 루이스를 연기한 지 20년이 지났다. 나이를 믿기 어려운 얼굴과 탄탄한 몸매에도 불구하고 그가 더는 스크린에서 섹시 폭탄을 연기하지 않는 건 아쉽되 놀라운 일은 아니다. 흥미로운 건, 그가 자신의 나이 먹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젊은 날의 섹시 스타가 나이를 먹으면서 비로소 넓고 풍부하고 진지하게 연기의 영역을 넓혀나간다는, 그런 빤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배우로서 저평가받는 걸 너무 잘 알았던 그는 최고의 섹시 스타였을 때도 강박적일 정도로 다양하고도 특이한 캐릭터에 욕심을 부렸다.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탄 <12 몽키즈>에선 과대망상에 빠진 정신병자를 연기했고, 데이빗 핀처와 함께 작업한 <파이트 클럽>에선 체제전복적인 선동가를, 가이 리치와의 <스내치>에선 사투리를 쓰는 집시 건달을 연기하는 등 비정상적이거나 괴팍한 캐릭터에 대한 그의 사랑은 꾸준히 이어졌다. 특히 영화적 의도와는 상관없이, 결과적으로는 시간을 거스르는 듯한 브래드 피트의 외모에 대한 알레고리가 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이후 그는 <번 애프터 리딩>이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처럼 노골적일 정도로 자신의 아름다움이 부각되지 않는 작품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가 이들 작품에서 자신의 방부제 외모를 가리기 위해 망가지길 무릅쓴다면, <머니볼> 이후의 그는 잘생긴 얼굴을 애써 감추기보단, 세월의 고단함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자신과 캐릭터의 나이 듦을 드러낸다. 과거의 그는 형사일 때도(<세븐>), 미친 범죄자일 때도(<칼리포니아>, <파이트 클럽>), 전사일 때도(<트로이>) 자신감이 넘쳤지만, <머니볼>의 빌리 빈은 자신의 ‘머니볼’ 이론이 현실에서 통할지에 대해 고민하며, <월드워 Z>의 UN 조사관 제리 레인은 좀비 바이러스에 대한 실마리를 찾지 못해 막막해한다. 영화 안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뜬금없이 등장해 노예 제도의 불합리함을 설파하는 <노예 12년>의 베스조차, 편지를 부쳐서 자신의 자유를 증명해달라는 솔로몬(치웨텔 에지오포)의 부탁에 난감해한다. 이들 인물은 상당히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세상 앞에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지 잘 알고 있다. 외형적으로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던 과거보다 오히려 이제야 브래드 피트는 인간 세상에 온전히 안착한 것으로 보인다.


<머니볼>, <월드워 Z>, <노예 12년>, 그리고 최근의 <퓨리>까지 그가 주연 겸 제작을 맡은 건 그래서 흥미로운 일이다. 제작자는 돈을 끌어오고 장소를 섭외하고 프로모션 계획까지 짜는 등 크고 작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해가야 한다. 신념은 필요하지만 연출가처럼 예술가적인 감성과 욕망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저울질하며 많은 경우 현실의 논리를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 엄정한 논리 안에서 그럼에도 원하는 작품의 윤곽을 만들어낸다. 요컨대 브래드 피트는 저 높은 곳에서 ‘어머니 지구, 우리는 하나’를 외치기보단 인간 세계의 자질구레한 문제들과 부딪히며 자신의 영역에서 만들 수 있는 최대치의 결과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수라도 같은 좀비의 습격 속에서도 엄정한 관찰을 통해 좀비 바이러스의 약점을 찾아내는 <월드워 Z>의 제리나 탱크 하나로 적의 대군과 맞서야 하는 상황에서 가능한 모든 전술로 전원 생존을 모색하는 <퓨리>의 돈 콜리어 하사처럼, 현실에 단단히 발붙인 이상주의자의 모습으로.

이제 어쩌면 꽃미남으로서의 브래드 피트는 더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퓨리>에서 여전히 튼튼한 상체 근육을 드러낼 때조차 그는 페로몬을 내뿜기보다는 그 몸에 새겨진 전쟁의 흔적들을 집중해서 보여준다. 그리스의 남신 같던 존재는 나이를 먹고 그렇게 인간계에 내려왔다. 추락은 아니다. 그는 수많은 좌절의 순간을 연기하지만, 오히려 역설적으로 어떤 좌절 앞에서도 결국 인간은 꿈을 놓지 않는 존재라는 걸 보여준다. 나이 때문에 아름다움을 포기한 게 아니라 지금 이 나이이기에 가능한 인간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과연 배우로서 이보다 멋지게 나이를 먹어가는 방식이 있을까. 우리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십을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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