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개와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2014.11.20
어찌나 시크한지 먹을 것으로 개희롱 당할 때도 아련할 뿐. 여러모로 내 만화에 등장하는 파블로프를 닮았다.

개를 입양했다. 실키테리어 혼종이라 추측된다. 나이는 2살에서 3살 정도라고 한다. 그의 배경이 모두 추측인 이유는 그가 유기견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름은 직접 지어줄 수 있으니,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이름을 따서 달리라고 부르기로 했다.

어린 시절 키우던 개가 개장수에게 잡혀간 이후로 (발정 나서 옆집 개와 도망갔다는 설도 있지만) 개를 키워본 적이 없다. 만화가들은 대다수가 개보다 고양이를 선호한다. 아마도 개는 적극적으로 놀아줘야 하지만 고양이는 마감을 방해하지 않고,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살아가는 양상이 많아서 그런가보다. 그러다 보니 나도 어느 정도 고양이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고, 언젠가 동거를 하게 된다면 룸메이트는 개보다는 고양이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만남과 동거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게 결정되는 건 아니다.

내 아내는 개를 사랑한다. 개라는 동물이 갖고 있는 내재적 순수성, 천진난만함에 반한 것도 있겠거니와 기본적으로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 그 중에서도 유기견에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연애 기간 동안에도 그녀는 유기견 센터 한 곳을 정해두고 지속적으로 봉사활동과 후원을 하고 있었다. 나는 마감 때문에 한 번밖에 봉사활동을 함께 하지 못했지만 그 한 번의 경험 덕분에 나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고된 봉사활동 끝에 지쳐서 앉아 있는데 곧 내 주변으로 온갖 종류의 개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평소 인간보다는 동물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개들 사이에서도 나는 만만했던 모양이다. 온갖 종류의 개들에 둘러싸여 앉아 있는데 생각보다 행복했다. 평상시 아내는 늘 결혼하면 개를 입양하자고 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깊게 생각해 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그러자고 답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날 돌아오는 길에 진지하게 생각했다. 개와 같이 살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그리고 나서 아내는 이내 한 마리를 정했다. 봉사하러 들어가면 미친 듯이 돌진해 오는 다른 개들과 달리 늘 구석에서 쭈구리가 되어 혼자 꼬리를 말고 앉아있는 아주 작은 녀석이었다. 트라우마 때문인지 겁이 굉장히 많고 소심했다. 왜 이녀석이냐고 했더니 자신과 닮아서, 라고 대답하길래 그냥 알겠다고 했다. 혈액형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해 보니 확실히 둘 다 트리플 A형에 A 하나를 더한, 쿼트로 A형 같은 느낌이다.

한동안 인터넷과 SNS상에서 <당신은 개를 기르면 안 된다>는 다큐멘터리가 자주 언급되었었다. 찾아보니 같은 제목의 책도 있었다. 주인이 외출한 사이에 개가 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를 촬영해서 화제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리해 보자면,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과 무지가 어떤 식으로 견권(?)을 침해하는지에 대한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주변을 보면 혼자 살기 시작한 지인이 외로움 때문에 덜컥 동물을 입양하고 이내 후회하거나 힘겨워 하는 것을 많이 봤다. 하지만 내 아내는 철저했다. 함께 입양을 위한 공부와 준비를 시작했다. 정보를 모으고 필요한 물건을 하나씩 마련했다. 개와 동거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은 생각보다 방대했다. 오랜만에 발달심리학 전공서적도 열어봤다.

개를 키우는 것이 육아와 같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았는데 공부하다 보니 아주 많은 부분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근본적으로 하나의 같은 개념을 공유하는 것 아닌가. 나 아닌 새로운 멤버를 가족이라는 관계로 들여 한 쪽이 죽을 때까지 함께 지낸다. 가족의 개념이 반드시 혈연으로만 규정되는 건 아니니까. 그 과정에서 무조건적 보호자와 무조건적 피보호자의 역할도 부분적으로 발생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들을 해결하고 서로간의 의사결정 과정을 연습하는 것. 이렇게 쓰고 보니 정말 비슷하군.

그렇다고 해서 어떤 분들처럼 달리라는 개를 내 자식처럼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나와 내 아내를 ‘아빠, 엄마’로 규정하고 싶지도 않고 그를 내 새끼로 규정하려고 하지도 않고 있다. 사실 같이 사는 동물들과 그런 관계를 형성하는 분들에게 딱히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반대로 그런 사람들에게 유난 떤다고 욕하는 비 반려인들에게도 불만은 없다. 그렇다고 인간과 동물은 엄연히 다르다며 종간의 경계선을 확실하게 긋고 싶은 것 역시 아니다. 그럼 뭘까. 나와 이 녀석의 관계는 어떻게 규정되는 걸까.

생각해 보니 나는 인간과 인간사이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과 동물 사이에서도 ‘동반’이라는 개념을 적용하는 것 같다. 다른 존재들끼리 만나서 부대끼며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관심과 관찰, 이해와 예의.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관계가 꼭 혈연관계, 부모자식 관계로 명명될 필요는 없으니까. 나는 한 종의 정신적 수준은 자신과 다른 존재에 대한 배려와 존중, 넓은 의미의 동행을 위한 생명체 간의 넓은 관심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성숙한 종족은 분명, 다른 종족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환경운동이건, 동물 권익 보호건 간에 그런 개념에서 시작하려고 한다. 여성주의나 소수자에 대한 입장 역시 이 지점에서 출발하면 여러모로 안전하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굳이 달리라는 개를 피보호견, 나를 금치산견 보호자로 칭하고 있다. 쓰고 보니 이것을 두고 또 유난 떤다며 욕할 사람이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이종범
<닥터 프로스트> 작가로 일 벌이길 좋아하는 참치형 만화가.
덕력과 잉여력의 위대함을 신봉하지만 정작 본인은 마감 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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