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스터디즈>, 도시 읽기의 즐거움

2014.11.21

무인도에 한 권의 책을 가져갈 수 있다면 이 도시를 가져가고 싶다. 난센스이지만 그만큼 도시란 텍스트야말로 수많은 해독이 가능하다는 뜻의 헌사다. 한 눈에 다 담기지 않는 기이한 장면이 속출하고, 지금까지 쌓여 온 데다 매순간 새로 쓰이며, 물리와 이념이 동시에 개입한다. 이러한 도시는 기존의 분석틀을 낡거나 불충분한 것으로 만들지만, 동시에 그 모든 것을 모으는 ‘공유지’도 될 수 있다. “이질적인 사유의 줄기들이 모여들어 함께 뛰놀 수 있는 예외적인 ‘공공영역’ … 20세기 후반 들어 바로 그와 같은 공유지로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 도시학이다.” (김수환 <책에 따라 살기>)

오랫동안 그런 적극적 읽기의 대상이 되어 모든 종류의 주석이 두텁게 달려 있는 도시 중 하나가 도쿄이며, <도쿄 스터디즈>는 그 일면을 충분히 체험하게 해 주는 책이다. 다양한 정체성과 연구 분야를 가진 23명의 시선이 교차하는 이 책의 장르로는 연구논문도 에세이도 저널리즘도 어울리지 않는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도쿄‘론’의 지형을 탐색하는 가이드북이라고 할까. 도쿄는 어떻게 이야기되었고, 실행되었으며, 다른 미디어와 접합해 왔는가를 윤곽의 부감에서 특정 스폿의 산책으로, 중심에서 배후지로, 이 미디어에서 저 미디어로 옮겨가며 마치 실제 지리를 훑듯 보여준다. 다소 불친절하고 산만하지만 그것은 도시를 읽는 행위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감각이기도 하다. 당장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할 수 없는 도시를 걷는 것처럼 서지학적 모험들로 가득한 것도 매력이다.

이 책은 일본 문화사의 부연으로 읽어도 좋고, 각자의 관광 경험을 확장하는 ‘트리비아’의 집적으로도 풍성하다. 고도성장기 중산층 가족을 수용했던 거대 교외 주택지의 실패, 거기서 비어져 나온 인간형과 교외 문학을 한국의 ‘신도시 아파트 정치학’과 비교해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운 풍경은 도시의 개발·구성 원리와 현실을 설명해내기 위한 주된 담론의 지형이 서로 순환하며 그림자처럼 닮아가는 장면이다. 예를 들어 커다란 도로와 거대 건축물이 도쿄의 골조를 바꿔 가며 정치적 쟁투의 태세를 갖출 때에야말로 <도시의 논리> 같은 책이 학생운동의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고, ‘정치의 계절’이 끝났다며 포스트모던론, 소비사회론이 융성하던 낙관의 80년대 그 ‘현대사상’들은 카탈로그적인 도시개발의 수법을 지탱하는 이데올로기로서도 기능했다.

또한 비평성을 토대로 대항문화적 에너지를 뿜어냈던 도시 정보지들이 몰락을 맞이한 것은 교외의 국도변에 번식했던 “저렴한 양판점”(예를 들어 유니클로!)이 화려했던 시부야를 잠식해 온 흐름과 일치한다. 여기서는 90년대 문화잡지들이 쇠퇴한 뒤 홍대의 점포들과 그곳에 모이는 사람들이 변모한 상황이 겹쳐 보인다. 한편 책이 쓰인 2004년 최신의 도시 구성 논리로 탄생한 롯본기 힐즈와 오다이바는 각각 “웹사이트를 잇달아 서핑해가는” 단속적 읽을거리, ‘도시로부터 등을 돌린 채 내부로 닫혀 있는’, 즉 의미작용을 단념하는 텍스트의 모습을 하고 있다. 10년 후인 지금이라면 스마트폰을 통해 접속하는 니챤넬(2ch) 속 읽고 쓰기와 ‘거리로 나온’ 혐한시위의 풍경이 새로운 주제로 추가될 수 있지 않을까.

도시의 모습과 ‘읽고 쓰는’ 행위는 모두 그 시대 사람들이 세계와 관계를 맺으려는 적극적 사유와 실천의 결과이며, 그래서 서로를 닮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도쿄를 수많은 실천이 영위되는 다층적 미디어로 간주하고 다른 미디어와의 관계 속에서 포착하려는 이 자유분방한 탐험의 ‘지금, 서울’ 버전을 기다린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 없다.

안은별 (전 <프레시안> 기자)
탈락한 입사 지원서가 ‘패자 부활’하여 기자가 되었고, 사표가 반려되어 특수 부서로 배속된 결과 4년간 북 리뷰 섹션을 만들면서 책 세계와 연을 맺었다. 현재 다른 길을 도모하면서도, 꾸준히 책을 읽거나 쓰고 옮긴다.

디자인. 전유림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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