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와 연극 ★★★★

2014.11.20
단번에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는 제목이다. 2014년의 대한민국에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 제목은 김수영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따왔다. 해당 구절 뒤로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 옹졸하게 욕을 하고’라 이어지는 시를 읽고 있노라면 어느새 마음 한켠에 동요가 인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이하 <왜 나는…>)는 한국 근현대사 속 개인에 주목해온 김재엽 연출이 시인 김수영을 통해 연극은, 문학은, 예술은 사회와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은 작품이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창작 초연│2014.11.04. ~ 11.30.│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작․연출: 김재엽│주요 배우: 강신일(강신일), 정원조(재엽/원조), 오대석(김수영) 등
줄거리: 작가 재엽은 시인 김수영에 관한 작품을 구상 중이다. 재엽은 배우들을 설득하여 그들 안의 김수영을 찾아가는 연극을 만들려 하지만, 배우들은 대본도 없는 상태에서 선뜻 공연 출연을 결정하지 못한다. 어쨌든 그들은 김수영의 시를 이해하면 김수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믿음으로 김수영의 시를 읽기 시작하고, 광복 후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삶에 어두운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김수영을 만나게 된다. 과연 이들은 자신 안의 김수영을 찾을 수 있을까? 


[한눈에 보는 연극]
장경진: ★★★★ 관람을 넘어 체험이 되는 연극의 경이로움

이 연극에는 시대를 초월한 풍자와 상징이 있다. 하지만 3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김수영의 생애가 한 축으로 펼쳐지고, 다른 한 축에서는 배우 강신일과 작․연출 김재엽이 연극을 만드는 과정이 그려지는 데다, 종국에는 시간과 공간, 팩트와 픽션이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서 뒤섞이기까지 한다. <왜 나는…>은 자칫 잘못하면 연극이나 김수영이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는 한국전쟁부터 5.16까지 이르는 한국 근현대사 수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관객은 연극을 위해 김수영을 알아가기 시작하는 배우와 작가를 통해 비슷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평생토록 삶과 시를 일치시키려 노력해온 김수영과 사회적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연극이 다르지 않음을, 현재의 정답은 바로 역사 속에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복잡한 형식은 그래서 필요했다. 관객과 배우, 1950년대와 2014년은 그렇게 하나의 줄기로 이어지고, 이 체험기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다.

이유진: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와 연극이 있어야 하는 이유
소설과 달리 응축성을 갖는 시는 좀 더 정신적 영역의 것을 텍스트로 소화한다. 때문에 연애시라 하더라도 저항의 정신을 담지 않을 수가 없고, 문학적으로 시는 시대의 마지노선 같은 느낌이 있다. 그런 부분에서 시와 연극은 닮았다. 그래서 2014년 11월에 김수영을 연극으로 다룬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왜 연극을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실제 사건이나 인물을 다루는 작품에서 노골적인 표현방식을 개인적으로 지지하는 편은 아닌데, 이 작품이나 영화 <다이빙벨> 관련 이슈들을 보고 있으면 이런 노골적인 표현 자체가 먹혀들지 않는 시대라는 생각에 씁쓸해지더라. 김수영의 시가 점점 산문화되는 것도 응축할 것 없이 날것으로 기록해야 할 사건이 너무 많아서이지 않았을까 싶다. <왜 나는…>을 보면서 연극으로 목소리를 내던 시대가 있었다면 이거였겠구나 싶었고, 김재엽의 작품을 앞으로 챙겨 보고 싶어졌다.


[더 넓은 눈으로 본 연극]
이유진: 강신일, 존재만으로도 메시지가 보이는 배우

연극을 보면서 연극계가 강신일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수영의 삶을 다루는 극중극에 배우 강신일이 등장해 거제포로수용소 시절에는 영화 <실미도>의 조근재를, 인혁당사건 당시에는 그 시기를 배경으로 한 연극 <4월 9일>을 소환한다. 강신일의 존재는 극단 연우무대가 가진 38년의 역사성을 끌어내고, 가면을 쓰는 게 아닌 벗음으로써 이어져 온 그의 34년 연기 인생은 시인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과 자연스레 겹치면서 설득력을 얻는다. 작가 김재엽을 각성시킨 건, 처음에는 김수영이었겠지만 두 번째는 강신일이지 않았을까. 강신일을 만나며 그가 연극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이 작품에 대한 확신을 가졌을 것 같다. 이순재, 나문희 같은 배우들이 갖는 대표성처럼 연극무대 위의 강신일 역시 이제 존재만으로도 메시지가 보이는 배우가 된 것 같다.

장경진: 용기라는 갑옷의 힘
<왜 나는…>에서는 단어나 행동으로 1950년대와 2014년을 모두 아우르는 장면들이 다수 등장한다. 한국전쟁 당시 국민들을 향해 “가만히 있으라”던 정부의 말은 세월호 안내방송과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이승만 대통령의 망명은 텔레그램으로 연결된다. 언론의 자유를 외치던 김수영의 목소리는 채널A와 TV조선에 막히고, 광화문 광장에서는 교학사 국사 교과서를 진열한 채 “구국의 치킨과 피자”를 찾는다. ‘이승만과 아이들’로 불릴 만한 세 배우는 ‘박정희와 아이들’로 이어지고, 이들의 끊임없는 돌림노래는 낯설지 않아 섬뜩하다. 걱정하는 배우 강신일에게 작가 김재엽은 “붙잡혀 갈 만한 작가가 없어요”라며 업계를 꼬집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해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단호하고 격정적인 이야기가 과거 중앙정보부가 있었던 남산에서 공연된다. 불안과 묘한 쾌감이 뒤섞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글. 장경진, 이유진(공연 칼럼니스트)
사진제공. 남산예술센터│교정. 김영진




목록

SPECIAL

image 박나래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