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각자도생의 시대

2014.11.19

제국의 아이들 멤버이자 tvN <미생>에 주인공 장그래 역으로 출연 중인 임시완은 ‘연기돌’로 불린다. 연기를 병행하는 아이돌. 하지만 정작 그의 최근 활동은 ‘연기돌’보다는 그냥 연기자에 가까워 보인다. 임시완은 지난 6월 미니 앨범 < FIRST HOMME > 수록곡 ‘숨소리’ 활동 당시 연기 스케줄 때문에 함께 무대에 오르지 못할 때가 많았고, 제국의 아이돌 멤버들은 “아름다운 그대 모습 자꾸 떠올라”라는 가사를 “아름다운 시완 모습 자꾸 떠올라”로 개사해 부르기도 했다. 그가 유독 개인 활동을 팀 활동보다 우선시했다는 뜻은 아니다. 평소에도 제국의 아이들 멤버들은 팀 활동보다는 개인 활동을 통해 주목을 받았다. ‘예능돌’ 광희는 SBS <강심장> 같은 집단 토크쇼에서 자신의 성형 사실까지 희화화하는 거침없는 입담을 통해 현재 케이블 채널 KBS W의 <시청률의 제왕 2> 진행을 맡고 있으며, 임시완과 함께 팀의 미모를 담당하던 박형식 역시 MBC <일밤> ‘진짜 사나이’에서 어리바리 신병의 모습으로 인지도를 끌어올렸다. 심지어 랩 담당인 김태헌은 XTM <주먹이 운다 4>에 출연해 격투기 선수와 격한 스파링을 하고서야 자신의 이름을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릴 수 있었다.

물론 많은 아이돌 멤버들이 개인 활동을 한다. 하지만 그 층위는 서로 다르다. EXO의 디오는 연기자로서 SBS <괜찮아 사랑이야>나 최근 개봉한 영화 <카트>에 출연하는 것 자체가 화제가 된다. f(x)의 크리스탈은 연기 경력이 풍부하지 않지만 SBS <상속자들>에선 ‘서브 여주’로,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에는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SM 엔터테인먼트(이하 SM) 같은 거대 기획사의 지원을 받은 인기 아이돌이라면, 상당히 안정적이고 유리한 고지에서 개인 활동을 펼칠 수 있다. 그에 반해 중소 기획사의 아이돌이라면, 심지어 스타제국이나 DSP 미디어처럼 경력이 제법 오래된 회사의 아이돌조차 개인 활동은 옵션이 아닌 생존을 위한 부업이다. 지난 1월 ‘Cha Cha’ 이후 활동이 없는 레인보우에서 김재경과 고우리는 각각 케이블 드라마인 OCN <신의 퀴즈 4>와 지상파 홈드라마인 SBS <기분 좋은 날>의 조연으로 대중과 만날 수 있었고, KBS <연예가중계>에서 1년째 리포터를 맡고 있는 김지숙은 그럼에도 최근 인터뷰이인 성혁에게 AOA 멤버로 오해를 받았다. 흔히 연예인의 삶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무대 뒤편의 쓸쓸함이란 클리셰로 표현하지만, 이제 그들 중 상당수는 무대 위에서도 화려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이 바로 높은 인지도와 수익으로 연결될 수는 없는 시대, 기획사에서 데뷔를 위해 흘린 땀이 충분한 도제 기간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 현재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열심히 개인 활동을 하는 아이돌 멤버들은, 그래서 비정규직 시대의 파트타임 근무자 같다. 물론 기본적으로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곳이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스타가 될 수도 있지만 어설프게 떴다가 돈이 없어도 사람들이 알아볼까 봐 지하철도 못 타는 게 이 시장이다. 문제는 리스크는 훨씬 높아진 반면, 리턴의 확률은 갈수록 줄어든다는 것이다. 아직 아이돌 시장이 블루오션이고,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던 god처럼 음반만으로도 유의미한 수익이 나오던 시절이라면 청춘을 걸어볼 만하다. 입사하면 어떻게든 네 식구 정도 건사하던 시절의 가장처럼, 데뷔까지 가면 그래도 음반과 방송, 행사 수익을 통해 부모님 집도 사드리고 본인 차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개인 활동을 통해 예능의 대세로 떠오른 M.I.B 멤버 강남은 JTBC <학교 다녀오겠습니다>에서 매점에서 왜 한턱내지 않느냐는 질문에 월수입 10만 원으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답한다. 경쟁자는 많고 거대 기획사의 영향력은 더 거대해졌다. EXO나 샤이니, 인피니트 정도가 아닌 이상 각 팬덤은 게토(Ghetto)화된다. 아이돌 멤버라는 사실은, 기획사에 속해 있다는 사실은, 이제 결코 하이 리턴은커녕 안정적인 생활조차 약속해주지 않는다. 남은 건, 각자도생이다.

평범하지 않은 삶을 동경해 아이돌에 지원했던 청춘들은 이제는 평범한 삶을 얻거나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언젠가 라디오에 출연한 B1A4의 바로는 드라마 출연 수익에 대해 “개인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수익을 나누지 않는다”고 밝혔다. 과거 같으면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팬과 대중도 그러지 않고서는 각각의 삶이 유지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나마도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고, 그 드라마가 히트할 때의 이야기다. 모든 아이돌 멤버들이 임시완처럼 새 분야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며 성공적인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웬만큼 뛰어나거나 운이 좋지 않으면 중도 탈락하기란 너무나 쉽다. 가장 빛나는 젊음의 시기를 모두 투자해야 한다. 실패했을 때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안전망은 없다. 바닥으로 떨어지면, 각자도생하지 못한 개인의 능력 탓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논리는 이제 꿈을 파는 산업까지 집어삼켰다. 과연 이것을 건강한 시스템이라 말할 수 있을까. 물론, 현재의 한국 사회를 신자유주의의 정글로 만든 이들이라면 그렇다고 대답하겠지만.

글. 위근우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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