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이 말하는 <인터스텔라>

2014.11.12
호불호를 떠나, <인터스텔라>는 지금 가장 뜨거운 영화다. 개봉 5일 만에 약 200만 명의 관객을 끌어들인 이 작품에 대해선 말하고 싶은 것도, 듣고 싶은 것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의 이야기는 좋은 가이드가 되어 줄 것이다. <아이즈>는 여섯 개의 주제를 중심으로 그의 발언들을 정리했다. 참고로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 및 지난 10일 중국 상해에서 진행된 <인터스텔라> 기자회견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인터스텔라>는 내가 어릴 때 봤던 블록버스터처럼 만들고 싶었다”
1970년생인 크리스토퍼 놀란은 자신이 블록버스터의 황금기에 자랐다고 줄곧 이야기한다. 심지어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를 처음 봤을 땐, 최대치의 잠재력이 담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 생각했다고 밝힐 정도다. 특히 그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작품들을 좋아했고, 그래서 <인터스텔라> 역시 그러한 블록버스터처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놀란이 끌린 지점은 가족영화로서의 정신이었다. “<미지와의 조우>나 <죠스>는 가족영화다. 누군가 가족영화를 만든다고 하면, 왠지는 모르겠지만 부드러운 무언가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내가 어렸을 땐 훌륭한 센스를 지닌 가족영화들이 있었다. 그 어떤 다른 종류의 블록버스터보다 더욱 통렬하고 예리하며 도전적이었다. 나는 그것을 잡아내고 싶었다.” 가족의 관계와 모험이라는 테마를 결합한 이야기는 꽤 오래 전부터 놀란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셈이다. 그가 <인터스텔라>의 레퍼런스로 삼은 영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우주비행사를 소재로 한 필립 카우프만의 <필사의 도전>도 있다. “우리 영화를 크랭크인하기 전에 스태프들과 이 작품을 봤다. <필사의 도전>은 거의 완벽하게 만들어진 영화지만, 사람들은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잘 알지 못한다. 아마 러닝타임이 4시간이나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비티>는 보지 않았다”
많은 관객이 우주 공간을 담았다는 이유로 <그래비티>와 <인터스텔라>를 동일선상에 놓곤 한다. 이와 관련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놀란은 <그래비티>를 보지 않았다고 딱 잘라 말한다. “지난해 시상식 시즌, 알폰소 쿠아론과 저녁식사를 하며 그에게 자백했다. 아마도 내가 이 지구상에서 <그래비티>를 보지 못한 유일한 사람일 거라고. 그리고는 사과했다. ‘내가 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에는 다른 훌륭한 SF 영화를 볼 수가 없다. 그것에 의해 내 작품이 혼란스러워지길 원하지 않는다.’” <인터스텔라>와 가장 빈번하게 비교되는 또 한 편의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다. 우주와 우주선을 비추는 방식, 로봇의 디자인 등 두 작품은 명확하게 닮아있다. “일곱 살 때 아버지와 함께 런던 오데온 극장에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봤고, 그 때 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 <인터스텔라>가 이 영화에 큰 빚을 졌다는 걸 인정한다. 우리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척 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놀란은 덧붙인다. “어떤 장르든, 그 장르의 마스터피스를 의식하며 작업하게 된다. 그럼에도 거기에 뛰어들어 최선을 다할 수도, 혹은 포기하고 다른 장르를 시도할 수도 있다. 나는 뛰어들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타스와 케이스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대한 오마주다”
<인터스텔라>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든든한 존재는 타스와 케이스일 것이다. 단순하고 투박한 디자인의 이 로봇들은 지능과 유머 감각을 모두 갖췄다. 이들의 특징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비석 모노리스와 로봇 HAL9000을 떠올리게 한다. “타스와 케이스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오마주가 맞다. 로봇들은 모노리스처럼 가능한 한 가장 간단한 디자인으로 고도의 지능을 나타내고 싶었다. 콘셉트 회의를 할 때 내 아이디어는 의인화의 흔적을 모두 제거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타스와 케이스에겐 얼굴과 팔, 다리가 없고 목소리만 있지만, 그 덕분에 퍼스널리티를 갖게 되었다.” 디자인이 모노리스에 대한 오마주라면, 대화가 가능한 로봇이란 점은 HAL9000과 연관이 있다. “영화 초반, 타스의 농담 중에 ‘누군가를 에어록 밖으로 날려버리겠다’는 게 있다. 이 대사야말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HAL9000에 대한 명료한 오마주였다.” 이렇듯 인간에 가깝지만 결코 인간은 아닌 존재로 놀란이 말하고 싶었던 건 뭘까? “인간의 적응과 혁신은 생존본능으로 인해 발동되지만, 로봇은 퍼스널리티를 갖고 있음에도 그럴 수 없다. 이 차이는 <인터스텔라>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로봇들은 당신을 계속 생각하게끔 만든다. 인간이 된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라고.”


“실제 이미지로 얻을 수 있는 감각이 있다”
“CG가 아닌 실제 이미지는 일종의 촉각을 얻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무언가를 느끼고, 알게 되는 종류의 감각이다. 가령 빛이 어떤 물체를 어떤 방법으로 스치는가를 보게 되는 것처럼. 엄청나게 정교한 방식으로 구현한 CG와 시각효과 역시 이 영화 안에 있지만, 우리가 작업을 제대로 한다면 실제 이미지를 사용할 때 무언가가 향상되는 것 같다.” 작품 속 옥수수밭을 실제로 경작하고, 특수 골판지를 갈아서 만든 C-90이란 물질로 모래바람을 만들어낸 놀란의 입장은 이러하다. 그리고 당연히 각종 행성들의 풍경 역시 CG 대신 아이슬란드 로케이션 촬영으로 그려낸 것이다. “우주 행성이 사실적으로 보이고 느껴지길 바랐다. 관객들이 우주 비행사들과 함께 행성에 발을 딛게 하려면 실제 외부 현장에서 촬영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이슬란드는 그에 걸맞은 독특한 지형을 갖추고 있었다. 행성 신의 많은 부분들이 리얼이거나, 실제를 찍은 사진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인터스텔라> 속 풍경을 기대한 채 그곳에 가는 관광객은 아마… 좀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디지털 대신 필름을 고수하는 그의 고집 역시 당분간은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나는 35mm와 65mm 필름을 쓴다. 컬러나 이미지, 해상도가 디지털보다 훨씬 더 좋기 때문이다. 이것을 대체할 수 있는 더 좋은 무언가가 나오기 전까지는 계속 쓸 것 같다.”


“‘아내가 죽은 남자’를 다루는 이유는 모티브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에는 쉽게 알아챌 수 있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아내가 죽은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는 것이다. <메멘토>의 레너드(가이 피어스)는 강간 후 살해된 아내의 복수를 꿈꾸고, <인셉션>의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아내의 죽음에서 오는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하며, <인터스텔라>의 쿠퍼(매튜 매커너히) 역시 아내가 죽은 후 장인과 함께 두 아이를 키운다. “내 영화의 서사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장르가 아무리 다양하더라도 굉장히 극한상황에 빠지는 주인공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자 한다. 그래서 자꾸만 아내 잃은 남자를 다루게 되는 것 아닐까. 이는 복수나 우주탐험 등의 동기가 되어주고, 그런 극한상황에 주인공을 빠뜨리면 평소엔 하지 않았을 행동들을 하게 된다.” 사실 실제의 놀란은 제작자인 아내 엠마 토마스와 늘 함께 작업하는 돈독한 사이다. 심지어 상해 기자회견 당시엔, 엠마가 탑승한 비행기가 연착되자 “내 작업적 동지가 도착한 후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을 정도다. 물론 일과 사생활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다. “일과 가정 사이엔 아주 약한 벽이 있다. 사실 벽보다는 침실 커튼에 더 가깝다.” 엠마 또한 “일과 사생활을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영화 제작 기간 중에는 아무래도 집에서조차 영화 이야기만 하게 된다. 우리는 애가 넷인데,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네 명 키우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영화 제작하는 동안이나마)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는 자조 섞인 농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퍼즐을 푸는 것처럼 이 영화에 접근할 필요는 없다”
물리학이나 우주에 대해 잘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터스텔라>는 다소 어렵고 멀게 느껴질 수 있다. 상대성 이론이나 블랙홀, 웜홀 등에 대한 궁금증이 계속 커지는 이유는 그 때문이기도 하다. 감독인 놀란 역시 물리학자 킵 손에게 자문을 구하며 영화를 만들었다. 과학적 지식이 부족했던 그는 끝없는 질문으로 킵 손을 좌절시켰는데, 그 중 하나는 “주인공들이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여행할 수는 없냐”는 것이었다. 무려 2주에 걸친 킵 손의 설득 후에야 놀란은 그것이 불가능한 설정임을 깨닫고 포기했다. 그러나 놀란은 관객들이 그런 지식을 모두 알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이 영화에는 많은 과학이 담겨있다. 하지만 <007> 시리즈를 보듯 즐기면 된다. 거기 나오는 폭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스스로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인간으로서, 네 아이의 아빠로서 자연스럽게 영화에 끌렸던 것처럼 관객들도 그러길 바란다. “<인터스텔라>는 우주라는 공간을 통해 인간은 누구이고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와 같은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는 영화다. 하지만 나에게는 무엇보다 아버지가 되는 게 무엇인지를 다루는 영화였다.”

사진 제공.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참고사이트. < Empire Magazine >, < National Public Radio >, < Miami Herald >, < Time Out >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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