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의 책장

<맞벌이의 함정>, 선수의 등장

2014.11.14

미국 중간선거가 공화당 승리로 끝났다. 이제부터는 본격 대선 레이스다. 민주당에서는 일찌감치 힐러리 클린턴이 앞서나간다. 하지만 골수 민주당원들은 힐러리를 보면 빌 클린턴 집권기의 빈부 격차와 월스트리트 득세를 떠올린다. 그래서 민주당 진보파들이 대안으로 주목하는 후보가 메사추세츠 주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이다. 학자 출신인 그녀는 금융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자다. 2010년 오바마가 그녀를 소비자금융보호청장에 앉히려다 공화당과 월스트리트의 반대로 좌절되자, 2012년에 아예 상원에 들어가 버렸다.

나는 워런을 잠재적 대선주자보다 인상적인 책의 저자로 먼저 만났다. 하버드에 있을 때 딸과 함께 쓴 <맞벌이의 함정>(엘리자베스 워런·아멜리아 워런 티아기)에서 그녀는 우리 모두가 궁금해 하는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다. 왜 우리는 다들 맞벌이를 하는데도 외벌이를 하던 부모님 세대보다 가난한가? 부모님 세대는 근면하고 우리 세대는 사치스러워서라는 설명이 많지만, 틀렸다. 그녀가 보기에 결정적인 문제는 모두가 맞벌이를 하면서 ‘게임 참가비’ 자체가 지나치게 높아진 것이다.

어느 나라나 최대 소비 품목은 주택이다. 주택 가격은 대체로 학군에 따라 결정 난다. 더 비싼 값을 불러야만 좋은 학군의 주택을 살 수 있는데, 모두가 맞벌이를 하면서 모두가 이 경매를 더 많이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소비자가 사는 것은 학군이 아니라 주택이다. 돈을 두 배로 투입한다고 학군이 좋아지지 않는다. 단지 두 배 비싸질 뿐이다. ‘게임비’를 끌어올린 또 다른 주범은 금융이다. 금융권은 무분별한 주택담보대출로 주택시장에 판돈을 공급했다. 마찬가지로 가격을 끌어올리는 것 외에 아무런 효과도 내지 않았다. 워런은 2003년에 내놓은 이 책에서 벌써 서브프라임 위기를 경고한다. 월스트리트가 학을 뗄 만하다.

외벌이 시대의 가사 담당자(남자든 여자든)는 가사노동을 제공하는 한편으로, 외벌이의 실직과 같은 비상 상황에 대비한 훌륭한 보험이었다. 가사 담당자가 짧게 임시직을 구하면 그 사이에 실직자가 새 일자리를 찾는 식으로 위기를 넘겼다. 이 안전장치가 사라지자, 미국의 가정은 한 발만 삐끗해도 나락으로 떨어지는 외줄타기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하나같이 굳이 미국으로 한정할 필요도 없는 얘기들이다. 워런은 외벌이 시대로 돌아가자는 얼토당토않은 대안 대신 교육의 질을 높이고 출산을 조율하는 등 느리지만 현실적인 해법을 내놓는다.

워런이 진보파들 사이에서 대선주자로 처음 거론될 때 참 묘한 기분이었다. 이 책은 탄탄한 논리, 공들인 데이터 수집, 꼼꼼하고 실현 가능한 대안, 거기에 실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의 고통을 정확히 포착하는 안목을 두루 갖추었다. 진보의 깃발을 들었지만 두 발은 현실에 단단히 딛고 있다. 그야말로 정치가 해야 할 일이 모두 들어가 있다. 그것도 일류의 전문성을 갖추고. 하나같이 우리에게서 찾기 힘든 미덕이다. 이정도 ‘선수’가 등장한다면 한국 정치권은 어떻게 반응했을까를 상상하다 보니, 묘한 기분이 들밖에.

천관율
<시사IN> 기자. 6년 동안 정치 기사를 썼다. 2014년 11월부터 사회 기사를 쓴다. 농땡이를 보다 못한 조직이 발로 뛰는 부서로 보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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