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경리단길 골목사장의 고백

2014.11.14

“그동안 즐거웠어요. 이제 경리단길 못 오겠어요.” 리퀘스트는 신해철의 ‘안녕’. 물론 단골의 장난 섞인 농담이란 걸 안다. 하지만 가게 주인 입장에선 ‘심쿵’이다. 지금 속도대로 가다간 농담이 언제 현실이 될지 모른다.

2013년 6월, 부동산에서 보여준 첫 번째 집을 바로 다음 날 계약했을 때, 건물주는 오히려 경험 없는 우리를 걱정하는 눈치였다. 건물은 허름했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비좁았으며 외국인 3명이 살다 나간 공간은 난장판이었다. 동네 중국집과 할머니 슈퍼를 이웃한 이런 곳을 누가 알고 올까? 더구나 ‘LP바’는 이미 충분하지 않나? 처음부터 우리의 목표는 좀 더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가볍게 한잔할 수 있는 펍(PUB)이었다. 뜻은 좋지만 몇 안 되는 ‘음덕(음악매니아)’ 지인들만으론 얼마 못 버틸 거란 것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경리단길이어야 했다. 알다시피 해방촌과 경리단길은 미군은 물론 각국 대사관 직원들, ET(영어선생)와 교수들이 모여 있는 외국인 집단 거주지다. 장사는 역시 동네 장사. 우리에겐 동네 주민이 필요했다. 일과를 끝내고 집 근처 술집에서 맥주 한잔과 음악을 즐기는 것이 몸에 밴 동네 주민들이.

가게를 열고 기대 이상으로 바쁜, 어리둥절하기까지 한 1년여가 지났다. 그사이 경리단길은 힙스터의 성지에서 무덤으로, 수제 맥주의 거리에서 노홍철의 거리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지금은 별 특색 없는 가게 앞에도 주말이면 줄이 늘어서곤 한다. 그 줄을 따라 물 만난 돈들 또한 빠르게 흘러들고 있다.

맨 처음 경리단길이란 이름을 알렸던 건 ‘맥파이’나 ‘베이커스 테이블’ 같은, 외국인들이 하는 가게였다. 자기들이 이 동네에 살면서 부족하다고 느꼈던 빵, 맥주 같은 걸 직접 만들어 팔면서 한국인들 사이에도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팬층이 두터운 이들은 지금도 건재하다. 하지만 요샌 보증금에 권리금까지 더해져 더 이상 외국인이 새로운 가게를 차리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이 많은 사람이 왜 경리단길에 몰리는지, 와서 무엇을 느끼는지는 나도 추측만 할 뿐 명쾌하게 설명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어떤 돈이 몰리고 어떤 사람들이 가게를 여는지에 대해선 몇 가지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잘 알려진 건 ‘장진우’다. 젊은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각기 다른 종류의 가게들로 길 하나를 선점, 그 골목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진작부터 유명세를 탔다. 최근 SNS에서 제기된 “비싸다”, “음식보다 분위기를 판다” 같은 불만에 대해선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 말하기 어렵다. 뜬다는 동네에 그렇지 않은 레스토랑이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고. 식욕 이상으로 ‘인증욕’이 왕성해질 거란 걸 예측했다는 점, 백화점 특강에 초빙될 정도의 사업 수완만큼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마치 그를 롤모델로 삼은 듯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한 젊은 사장들이 많다는 것도 경리단길의 특징 중 하나다. 핏줄대출 받은 게 분명해 보이는 유학생 출신, 모델이나 연예인 같은 인맥을 믿고 뛰어든 패션피플, 지방에서 돈 좀 벌고 야심 차게 서울 무대로 진출한 케이스 등등. 주로 건장한 남자 두어 명이 다루기 쉬운 먹거리를 취급하며 인스타그램 활용에 적극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패턴의 청년창업이 앞으로 외식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꽤 되지 않을까?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 중엔 강남에서 가게를 하다 넘어오는 경우가 많다. 압구정이나 청담 상권이 죽은 건 이미 오래전. 애타게 대안을 찾던 식당 주인들은 경리단길에서 다시 한 번 부활을 꿈꾼다. 이들의 승부수는 아이디어보다 자금. 시세보다 비싼 월세도 일단 받아들이고 본다. 방금 얘기한 것들을 몰랐다 하더라도 앞으로 이곳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는 덴 지장이 없다. 홍대, 가로수길, 삼청동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 과정을 우리 모두 지켜봐 왔으니까. 지난봄 ‘파스쿠찌’가 등장한 건 그저 시작.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상황과 앞으로의 전망, 외부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나는 경리단길이 좋다. 여전히 좋다라고 해야 할지, 아직까지 좋다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좋다. 이건 가게 주인이 아니라 동네 주민으로서 갖고 있는 애정에 가깝다. 지방유학생 신분으로 학교와 직장을 따라 서울을 떠돌아다닌 지 20년. 아이러니하게도 ‘멜팅팟’ 같은 이곳, 각자의 고향을 떠나온 이방인들의 동네에서 처음으로 ‘이웃’이란 단어를 피부로 느꼈다. 팔순이 가까운 슈퍼 할머니와 기타를 둘러멘 흑인 청년이 웃으며 안부를 건네는 풍경은 오랫동안 서로 다른 인종들이 어울려 살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리라. 나를 포함해 경리단길을 좋아하는 다른 이들도 어쩌면 이런 분위기에 마음이 끌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 정겨운 골목에서 ‘동네 술집 오래 하기’라는 애초의 목표를 지킬 수 있을까?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오늘 아침도 옆 건물 공사 소리가 요란하다. 구불구불 미로처럼 얽혀 있는 골목들이 시간을 벌어주길 바랄 뿐이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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