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딩동 “현장 MC 최고의 무기는 관객과의 공감대”

2014.11.14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이하 <스케치북>)이나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이하 <불후의 명곡>) 공개 방송에 한 번이라도 다녀온 사람이라면 뮤지션들의 공연 외에 또 하나의 쇼를 보고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녹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무대 세팅이 바뀌는 막간마다 쉬지 않고 관객들을 폭소하게 만드는 현장 MC의 단독 무대다. 마이크 하나만을 손에 쥐고 매 순간 변하는 스튜디오의 모든 상황을 농담의 소재로 삼으며 “필요하면 열 시간도 떠들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어떤 사람일까. 매주 수천, 수만 명의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MC 딩동을 만났다.

‘현장 MC계의 신동엽’으로 불릴 만큼 바쁘다고 들었다. 기본 스케줄이 어떤가.
MC딩동
: 일주일에 사흘 이상 KBS에 온다. 월요일에 <불후의 명곡> 녹화 끝나고 밤 11시쯤 나오면 밖에 줄 서 있는 분들이 있다. 다음 날 <스케치북> 방청권 받으려고 기다리는 분들이다. 겨울엔 편의점 가서 뜨거운 캔 커피 사다 돌리면서 “우리 이따가 볼 거예요”라고 할 때도 있다. 무슨 소린지 몰랐던 분들이 다음 날 내가 무대에 올라가면 알아보고 웃는다. 그분들은 이미 내 편인 거다. 일요일에는 격주로 2회 녹화하는 <1 대 100> 끝나고 <나는 남자다>로 넘어간다. 그리고 토요일엔 tvN < SNL 코리아 >에 간다. 다른 날에는 팬미팅이나 쇼케이스, 대학 축제 등 여러 가지 행사가 있다.

방송부터 행사까지 무대마다 관객들의 연령대, 취향, 목적이 모두 다를 텐데 어떻게 준비하나.
MC딩동
: 나는 철저히 관객을 상대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분들에 대해 공부한다. 아이돌이 나오는 자리에서는 팬클럽 이름을 미리 알아뒀다가 불러준다. 비스트는 뷰티, 에이핑크는 팬더, 정동하는 동하연가. (웃음) 그리고 예를 들어, <불후의 명곡>에 틴탑이 나와서 열심히 했는데 1승을 못 하면 오신 분들이 서운할 테니까 올라가서 “어우, 1승 하기 쉽지 않아. 그렇죠?” 하면서 틴탑 노래 제목을 언급하는 식으로 나름의 위로를 해드린다. 반면 쇼케이스처럼 기자님들을 상대로 하는 행사에서는 굳이 말을 길게 하지 않는다. 사진 찍고 타이핑 치느라 바쁜 분들이니까 “박수 주세요”나 “여기 보시죠” 같은 멘트도 안 한다. 그런데 주인공들이 지각을 하거나 갑자기 영상에 문제가 생겨 지연될 때는 농담도 하고 내 얘기도 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친구 얘기까지 끌어와서 어떻게든 분위기가 다운되지 않도록 한다.

그럼에도 유독 힘든 현장이 있다면. 
MC딩동
: 처음에 <나는 남자다> 현장에 갔더니 남자 백 명이 앉아 있었다. 정말 끔찍했다. (웃음) 여자분들이나 연인들은 서로 대화도 하고 사진 찍어 SNS에 올리기도 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있는데, 남자분들은 심지어 같이 온 친구끼리도 말 한마디 안 하는 거다. 마치 예비군 훈련장 같았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했다. “여러분들이 저한테 너무 큰 시련을 주시네요.” 하지만 어차피 현장 분위기는 다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거기에 맞게끔 열심히 하면 된다. 진짜 힘든 건 관객이 너무 적을 때다. 처음 개그맨이 되려고 인천에서 서울로 올라왔을 때, 종로 피아노 거리에서 하는 행사 사회를 본 적이 있다. 2월이라 너무 추웠지만 장갑 살 돈이 없어서 공사장에서 쓰던 목장갑을 끼고 갔는데 앞에 세 명 서 있더라. 그래도 그 세 명이랑 최대한 재밌게 놀았다.

개그맨이 되려고 했다면, 어떻게 해서 현장 MC까지 오게 된 건가. 
MC딩동
: 말하고 사람들을 재밌게 해주는 게 천직이라 이십 대 후반까지는 이벤트 MC도 하고 인터넷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런데 매일 열 시간 가까이 업소에서 MC로 일하다 보니 성대 결절이 왔다. 그만두고 섬에 들어가 봉사활동을 하다가 목이 나아 서울로 왔다. SBS 신인개그맨 선발대회에 1등으로 뽑혔는데, 그땐 세상이 달라 보였다. 고시원 살면서 개그 짜고, PD님 오시는 날이라고 하면 친구들 불러서 객석에 앉힌 다음 내 코너 할 때 막 웃게 하는 편법까지 써가면서 노력했지만 4개월 뒤 <웃찾사>가 폐지됐다. 열심히 군 생활 마치고 제대했더니 돌아갈 집이 없어진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래도 돈은 벌어야 하니까 직접 이화 사거리 예식장마다 프로필 돌리며 결혼식과 돌잔치 사회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윤도현의 러브레터> 현장 MC였던 변기수의 대타를 몇 번 하다가 <이하나의 페퍼민트>에 이어 <스케치북>을 처음부터 맡게 됐다.

결혼식과 돌잔치 사회자로서의 시작은 괜찮았나. 
MC딩동
: 6만 원 받으면 소개비로 2만 원 주고 4만 원을 내가 가졌다. 하지만 돈을 많이 못 벌어도 행사 주인공들한테는 일생에 한 번뿐인 이벤트니까 대충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남들이 15분 할 때 나는 30~40분씩 단독 쇼를 했다. 지금의 아내와 연애할 때였는데, 아내는 스무 살 직장인이었고 나는 스물아홉 돈 없고 나이 많은 남자친구였다. 그러다 한번은 기념일이니까 뷔페 먹게 해준다고 대학로에서 몽촌토성역까지 데리고 갔다.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찰나 돌잔치 시간이 다 되는 바람에 나는 마이크 잡고, 여자친구한테는 음악 좀 틀라고 시켰다. 그런데 이 친구가 입장 음악과 돌잡이 테마 음악을 헷갈려서 잔소리를 했더니 삐져서 집에 간다는 거다. 붙잡았더니 “오빠, 우리가 각설이야?”라고. (웃음) 그때부터 더 이상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서 같이 다닐 제자를 키우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내 첫 번째 제자는 아내다. 행사 멘트를 다 외우고 있어서 지금 돌잔치 사회를 맡겨도 잘할 거다. (웃음)

현장에서 긴장되거나 잘 안 풀릴 때는 어떻게 하나. 
MC딩동
: 사실 관객들보다도 (신)동엽이 형, (유)희열이 형, (유)재석이 형이 나를 보고 계시는 게 긴장된다. 나에게 전과이자 과외 선생님 같은 존재인 최고의 MC들이 들었을 때 내 멘트가 재밌으면 좋겠고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다. 특히 동엽이 형은 <불후의 명곡> 끝나고 종종 피드백을 해주신다. 그동안 해준 말씀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잘 안 되면 빨리 접고 다음으로 넘어가라”는 거였다. 전에는 내가 재밌다고 생각하면 괜히 붙잡고 있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싶으면 바로 인정한다. “재밌을 줄 알았는데 재미없네요. 집에서 할 땐 빵빵 터졌거든요.” 사실 현장에서 제일 짧으면서 ‘웃픈(웃기고 슬픈)’ 멘트는 “우리 엄마가 아직도 저 뭐 하는 사람인지 몰라요”다. (웃음) 

아직도 잘 모르시나. 
MC딩동
: 자세히는 모르시지만, 얼마 전 엄마가 <불후의 명곡>에 오셔서 처음으로 내가 일하는 걸 보고 가셨다. 엄마 앞이라 엄청 떨었는데 “우리 아들이 신동엽보다 말 많이 하더라”라며 굉장히 좋아하셨다.

쉬지 않고 말을 하다 보면 생각과 다른 말이 나오기도 하고, 자칫 상대를 불쾌하게 할 수도 있을 텐데. 
MC딩동
: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한다는 건 운전할 때 사거리에 서 있는 것과도 같다. 직진이나 우회전, 좌회전은 할 수 있어도 후진은 못 한다. 한 번 뱉은 말은 돌이킬 수가 없다. 나도 예전에는 순간적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실수를 많이 했고, 오해를 사서 얼굴에 침을 맞은 적도 있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오랫동안 경험이 쌓이면서 사람을 놀리더라도 최대한 기분 나쁘지 않게 하는 노하우가 조금 생겼다. 같이 일하는 동생들에게도 항상 강조한다. 앞에 300명 관객이 있을 때 한 명에 대해 열 마디를 놀려서 299명을 즐겁게 하더라도 그 한 사람의 마음을 다시 돌려놓는 데 50마디의 말이 필요하다. 그럴 바엔 그냥 300명을 향해 30마디 하는 게 낫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했던 적이 있나. 
MC딩동
: 얼마 전 < SNL 코리아 > 생방송에 어머니, 아들, 딸이 같이 오신 분들이 있었다. 굉장히 재밌는 케이스라고 생각해서 말을 걸었는데 사연을 들어 보니 “얼마 전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엄마 재밌게 해드리려고 같이 왔어요”라는 거다. 순간 식은땀이 쭉 흘렀지만 일단 어머님을 무대로 모셨다. 너무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장난을 치면 그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 “그래도 오늘 웃으러 오셨으니까 기분 좋으시죠?”라고 하면서 얘기 나누고 방송 전 < SNL 코리아 > 크루들이 인사할 때 전원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어드렸다. 다행히 어머님이 밝은 분이셔서 즐거운 분위기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스케치북>에서 막간에 프러포즈 이벤트를 한 방청객을 위해 유희열과의 기념사진 촬영도 주선해 주던데, 관객에게 최대한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MC딩동
: 예전에 다른 음악 프로그램 현장 MC가 어떻게 하는지 공부 삼아 보러 간 적이 있다. 그런데 그분이 관객들에게 선물을 주면서 “우리는 여행상품권도 드리고 비싼 초콜릿도 드리고 신발도 드리지만 <스케치북>에선 스케치북밖에 안 줘요” 그러는 거다. 그걸 듣고 비록 몇천 원밖에 안 하는 스케치북이라도 얼마나 의미 있는 선물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자비로 스케치북을 사고 한 시간 일찍 와서 대기실을 돌아다니며 출연자 전원의 사인을 받아서 선물로 드리고 있다.

대학 축제 MC를 맡으면 미리 가서 매점부터 둘러본다고 들었다. 무슨 이유에서인가.
MC딩동
: 현장 MC에게 최고의 무기는 관객과의 공감대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메뉴, 자주 가는 술집, 요즘 학교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기에 가장 좋은 곳이 매점이다. 송해 선생님께서 KBS <전국노래자랑>으로 지역에 가시면 특산물을 미리 맛보시거나 목욕탕에 가보시는 것처럼. 그래서 전에 이화여대에 갔을 땐 바쁜 학생들이 ‘이화사랑 김밥’이라는 걸 많이 먹는다는 걸 알고 “이화사랑 김밥을 정말 사랑하는 남자”라고 내 소개를 했다. 경희대 축제에서는 초대가수 팀이 좀 늦어져서 “아, 지금 OO가 서울역에서 M버스를 탔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타고 오는 버스 이름인데, 그런 걸 한 번 짚어주면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지금 현장 MC로서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데, 방송은 여전히 진출하고 싶은 영역인가.
MC딩동
: 현장 MC를 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방송 MC가 되고 싶다. 지금은 입학해서 학년을 하나씩 올라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내가 열심히 하는 걸 보셨던 분들도 내가 잘되면 인정해주실 거고, 혹시 잘 안 되더라도 응원해주실 거라 믿는다. 그래서 시청자 여러분에 대한 내 사랑은 아직 짝사랑이지만 언젠가 인지도라는 섬에 꼭 가고 싶다. (웃음) 하지만 나중에 잘되더라도 <스케치북>이나 <불후의 명곡>은 계속 하고 싶다. 희열이 형이나 동엽이 형이 등장할 때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치는 박수를 나도 한번 받아보고 싶다. 그리고 담당 PD님께 “딩동아, 이제 그만해도 돼. 우리가 부담스러워~”라는 말씀도 들어보고 싶고, 무엇보다 제일 기다려지는 건 “그 프로 딩동이 현장 MC 본다며, 딩동 보러 가야지!”라는 말이다.

출연하면 제대로 나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은 프로그램이 있나.
MC딩동
: 지난주엔 <나는 남자다>에서 독특한 직업을 가진 사람 중 하나로 인터뷰를 했다. 평소 재석이 형이랑 대기실에서 인사도 하고 사적인 얘기도 하지만, 내가 카메라 앞에서 국민 MC와 토크를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설레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MBC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에도 나가고 싶은데, ‘라디오 스타’를 위해 무슨 준비를 하고 있는지 누가 물어보셔서 말씀드렸다. “녹화가 수요일이니까 수요일 시간 비우고 있어요.” 즉, 나는 준비가 다 됐다는 얘기다. (웃음) 물론 다른 방송 프로그램도 환영이다. 한두 번 연락 오고 피드백이 없으니까 궁금한데, 내가 자꾸 전화해서 어떻게 됐는지 물어보는 게 민망하다. 그러니까 얼른 연락 주시라!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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