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의 이재균, 서툴러도 괜찮아

2014.11.13
이재균을 지켜본다는 것은 성장소설을 읽는 것과도 같다. 3년 사이 앙상블에서 탄탄한 주역이 되어서도, 뮤지컬로 시작해 라디오와 드라마까지 영역을 넓혀서이기도 하지만, 더 정확히는 그에게서 풍기는 서툰 기운 때문이다. 처음에는 처음이어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무대를 지켜보면서 이재균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잠깐 반짝이고 사라질 그 무언가에 눈길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연습을 하다 3분의 1 지점에서 이미 에너지가 방전됐다거나 <쓰릴 미> 공연 중 잠깐 기절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더욱 그렇다. 모든 것을 처음으로 대하는 그는 그래서 늘 서툴다. 하지만 그 서툼 덕분에 우리는 선생님에게 끌리는 소년의 당혹스러움(<번지점프를 하다>)을, 살인을 계획하면서도 흔들리는 연쇄살인범의 내면(<쓰릴 미>)을, 형의 죽음으로 마음을 닫아버린 북한군의 아픔(<여신님이 보고 계셔>)을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됐다. 찰나는 금세 사라지고, 이재균도 마음에 점을 찍고 무심히 지나간다. 하지만 반복의 장르인 무대에서, 모든 곳에서 처음부터 멀티를 요구하는 지금에 만나 더욱 반가울 뿐이다.

1. 배우입니까?
Yes.
2011년 <그리스>로 데뷔해, <닥터 지바고>, <번지점프를 하다>, <히스토리 보이즈>, <쓰릴 미>,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했고, 지금은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에서 선천적 청각장애를 가진 빌리 역을 맡아 공연 중이다. 청각장애인의 등장 때문에 연극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모두의 가족 이야기가 될 수 있어 쉬울 수 있겠구나 싶다. 대사가 일상적이기도 하고. 물론 서브텍스트가 엄청나서 빌리의 마음에 확신이 들다가도 한 장 넘기면 또 한숨이 나지만. (웃음)

2. 공감합니까?
Yes.
가족은 가장 가깝고 늘 같이 있지만 생일을 까먹을 때도 많고 남보다 먼 사이로 느껴질 때도 있다. 널 위한 거야, 라고 말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게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상황도 많고. 빌리가 독순술(입 모양을 보고 상대방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내는 기술)로 검찰청 증거 전문가가 돼서 인터뷰를 하니까 가족들이 배 아파한다. 그런 부분이 굉장히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모든 인물에 아이러니가 있어서 말이 아닌 마음에 대해 많은 걸 생각하게 됐다. 이 작품을 하면서 날 위해서가 아닌 상대방이 받고 싶어 하는 걸 주는 게 진짜 사랑이 아닐까 싶었다.

3. 주로 듣는 편입니까?
Yes.
친한 사람들이랑 있을 때는 들어주는 것도 말하는 것도 자연스럽지만, 굳이 말을 막 많이 하려는 편은 아닌 것 같다.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하기도 하고. (웃음)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의도와 달리 너무 직접적으로 말해서 혼도 많이 나고 왕따 당할 뻔한 적도 있었다. 이제는 어른들도, 다양한 사람들도 만나게 되면서 많이 늘었다. 말하다 계속 까먹는 건 아직도 비슷해서 (웃음) KBS <슈퍼주니어의 KISS THE RADIO> 생방송 때 말 시키면 갑자기 당황하기도 하는데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더라.

4. 부담감이나 조심성이 있는 편입니까?
Yes.
겁이 많은 편이기도 하지만, 라디오 같은 경우엔 뭔가를 막 해야 할 것 같았다. 지금은 그냥 내 생각을 편하게 얘기하는 수준까지 왔지만. (웃음) 캐릭터를 만들 때 조사를 많이 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편인데, 빌리의 경우엔 그동안의 경우와 달리 상상하는 게 불가능했다. 삶은 물론, 살아가는 방식도 생각하는 방식도 나와는 다를 테니까. 그렇다고 그분들을 찾아가 연극해야 하니까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도 민감한 사안이고, 그분들의 커뮤니티도 또 다른 사회이기 때문에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5. 도움받은 게 있습니까?
Yes.
<나는 귀머거리다>라는 웹툰이 있다. 빌리처럼 선천적 청각장애를 가졌지만 구화를 쓰시는 분이라 그분 만화를 보고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예를 들면 교수님 면담 에피소드를 보면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사소한 지점에서의 불편함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 같은 사람이면 노크 후 상대방의 인기척을 듣고 들어갈 수 있지만, 청각장애인들은 그게 불가능하다. 그냥 열자니 안에 계신 분이 교수님이고, 가만히 있자니 언제 문이 열릴지 모르고. 결국은 계속 노크를 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얼마나 표현하느냐에 따라 편견이 생길 수도, 혹시라도 그 분들이 보셨을 때 가짜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것에 대한 작업을 굉장히 많이 했다. 이재균으로 생각했을 때는 맞는 말일 수 있지만 청각을 잃은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는 아닐 수도 있으니까.

6. 상상력이 좋은 편입니까?
Yes.
좋다기보다는 좋아하는 것 같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여동생에게 옛날 얘기를 지어서 많이 해줬었다. 그래서 지금도 글로 깨작거리는 걸 좋아하고 동생한테 얘기해준다고 생각하고 쓰면 굉장히 스펙타클하게 잘 써지더라고. (웃음) <히스토리 보이즈> 할 때는 시도 많이 썼었다. 어딘가에서 본 얘기인데 힘든 일이 있을 때 그걸 글로 써서 보면 정확히 알게 돼서 마음이 놓인다고 하더라. 글을 좋아하는데, 상상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서인 것 같다.

7. 수화도 합니까?
Yes.
지금 수화를 배우고 있다. 굉장히 그림처럼 되어 있어서 이해하기가 쉽고 또 다른 언어라 외국어같이 재밌다. 그런데 문장 구성이 다르다 보니 수화를 하시는 분들 중에서도 공부를 많이 하지 않으면 책 읽기도 굉장히 불편하다고 하더라. 그래도 다행히 빌리 자체가 이제 막 수화를 배우는 애라서 내 상황과 비슷하다.

사진제공. 예술의 전당

8. 습득력이 좋습니까?
No.
한 번에 센스 있게 딱! 하지 못하고 굉장히 오래 걸린다. 운전면허도 세 번 떨어졌는데 아직도 못 땄다. 운전면허 시험이 제일 어려운 것 같애. 우리 어머니가 나 운전면허 떨어진 얘기를 제일 좋아하신다. (웃음) <히스토리 보이즈>에서 불어 배울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마음이 동했을 때 잘되는 것 같다.

9.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있습니까?
Yes.
재미인 것 같다. 연기를 하는 것도 재밌어서다. 이게 재미가 없어지면 난 언제든지 그만둘 생각도 있다. 내가 재밌어서 하니까 보는 사람도 즐거운 게 아닐까. 그래서 내가 힘들고 너무 깊게 빠져들 때마다 일부러 그런 생각들을 다 쳐낸다. 학교에서 처음 공연했을 때만 해도 불안함이 커서 박수 소리나 ‘무대에 서는 느낌이 이거구나!’ 같은 걸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히 작품을 하나씩 하면서 이래서 좋구나, 같은 걸 알아가는 중이다. 상대 배우들하고의 연기가 가슴에 착착 맞을 때가 있다. 그럴 때 기분이 정말 좋지.

10. 영향을 받은 인물이 있습니까?
Yes.
연기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에 대한 고민을 할 때 가장 가까이 있었고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 (강)필석이 형이다. 20대 초반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는데, 그건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형 때문에 좋은 배우들의 영화를 많이 봤다. 매번 선이 없는 연기를 하는 에드워드 노튼을 좋아하는데, 에드워드 노튼이랑 필석이 형이 좀 닮기도 했어. (웃음) 좋아하는 배우 중 하나인 호아킨 피닉스가 한 인터뷰에서 “연기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라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이 되게 멋있었다. 떨어질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냥 내던지는 것뿐이고, 그랬을 때 나오는 살아 있음이 굉장히 중요하니까.

11. 목표가 있습니까?
Yes.
비우는 것. 요즘은 내가 뭔가를 알면 알수록 계속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물론 이게 학습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3년간 분명히 어떤 경험을 통해 뭔가를 얻었고, 그게 쌓이면서 굉장히 소중한 자산이 되지만 오히려 배우에게는 안 좋은 편견이 될 수도 있다.

12. 편견을 경계합니까?
Yes.
예전엔 대본을 볼 때도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봤다. 말하려는 게 없으면 ‘이 공연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게 주제입니다’라는 거라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공연을 보고서도 울고 인생이 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을 엄청 했는데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연극 <레드>를 봐도 결국엔 아무런 답이 내려지지 않는다. 물론 배우에게 안목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런데 안목이 없어야 된다는 생각도 든다. 어딘가에 많이 치우쳐 있으면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13. 서툴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습니까?
Yes.
일부러 서툴게 하지는 않지만, 어떤 배역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해서 완벽하게 표현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늘 완벽하고 완전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게 필요하다. 서툴러야 변화도 가능하고. 내가 어떤 것을 보면서 언제 감동받았나를 보면, 늘 불안정하고 서툴지만 그 안에서 무언가가 꿈틀댈 때였다. 2013년 <쓰릴 미> 프레스콜 때 엄청 떨었던 적이 있다. 너무 떨어서 들고 있는 소품도 같이 떨렸는데, 그 순간 갑자기 그 떨림을 억지로 멈추는 것도 이상해서 그냥 ‘리차드가 떨리는가 보다!’라고 생각했지. (웃음) 뭐가 정답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지금 내린 결론은 내가 봤을 때 좋고 재밌는 게 가장 좋다. 그래야 평이 좋든 안 좋든 내가 열심히 할 수 있으니까.

14. 꿈꾸는 미래가 있습니까?
Yes.
늘 새롭게 겪고 싶다.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계속 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가진 게 맞다고 믿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지혜나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다시 늘 초짜처럼. 뭔가 많이 알고 있는데 많이 모르고 있는 사람 같은.

15. 마지막으로,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재균.
1990년생. 서툴러도 새롭게 나아가고 싶은 배우.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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