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터스텔라>에는 신파가 필요했을까

2014.11.12

* 이 글에는 <인터스텔라>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터스텔라>는 지금까지 나온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 중 가장 쿨하지 못한 작품일 것이다. 그건 놀란이 지금까지 쿨한 영화들만 만들어왔다는 말이 아니다. <메멘토>, <다크 나이트>는 모두 쿨한 영화였다. 하지만 그 영화들이 쿨했던 것은 그의 의도가 아니었다. 놀란은 그의 경력 내내 쿨함의 반대 방향으로만 갔다. 그의 영화는 우직하고 단순하고 유머가 없고 잔재주를 허용하지 않고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다. <메멘토>와 <다크 나이트>가 쿨할 수 있었던 건 어쩌다 보니 그런 태도 때문에 선두에 섰기 때문이다. 쿨한 사람들은 <다크 나이트> 같은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아무리 진지하게 굴려고 해도 그들은 자기네들이 만드는 영화가 박쥐 가면을 쓴 정신 나간 자칭 수퍼 히어로 이야기임을 잊지 못한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은 영화 내내 그런 건 모르겠다는 듯 심각하게 군다. 이런 태도는 낯설기 짝이 없고 그 결과 역으로 쿨해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인터스텔라>가 쿨하지 못한 건 그가 이전 영화에서 달성했던 쿨함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이 영화가 크리스토퍼 놀란이란 남자의 쿨하지 못한 속성을 보다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일 뿐이기 때문이다. <인터스텔라>는 <다크 나이트>처럼 묵직하고 단순하고 거대한 영화다. 단지 크리스토퍼 놀란 식으로 가족 멜로드라마를 다루는 것이다. 배트맨과 조커의 대결을 쿨하지 않게 그리면 그건 역으로 쿨해 보인다. 하지만 가족 멜로드라마를 쿨하지 못하게 그리면 그건 그냥 신파가 된다.

뿌리만 따진다면 <인터스텔라>는 놀란의 이전 영화들보다 로저트 저메키스의 <콘택트>에 더 가깝다. 영화의 원안은 <콘택트>의 제작자 린다 옵스트와 칼 세이건이 이 영화의 원작소설을 쓸 때 웜홀과 시간여행에 대해 조언했던 물리학자 킵 손으로부터 출발했다. 이들이 원했던 것은 <콘택트>에서 맛만 보여주었던 웜홀 우주여행을 보다 정교하게 묘사하는 것이었을 텐데, 그 아이디어가 스티븐 스필버그, 조나단 놀란, 크리스토퍼 놀란을 거치는 동안 <콘택트>에도 있었던 가족 멜로드라마가 확장되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 멜로드라마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이치에 맞는 테마다. 단순히 우주로 진출하는 것만으로는 정서적으로 강한 이야기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주인공을 지구로 끄는 구심점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영화는 일반상대성이론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두 개의 다른 시간대를 보여주는 비교 대상인, 지구에 남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 사람들은 우주비행사의 배우자나 애인일 수 있지만,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그리려면 우주비행사보다 어린 게 좋다. 가족 멜로드라마는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멜로드라마가 굉장히 투박하게 그려졌다는 게 문제다. <인터스텔라>의 멜로드라마는 정말로 그렇게 유려하지는 않다. 종종 지나치게 감상적이며 톤이 거칠다. 무엇보다 큰 문제점은 놀란 형제가 여성 캐릭터를 그리는 데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이 경우는 가족 멜로드라마보다 앤 해서웨이 캐릭터와 관련된 에피소드에서 단점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이건 놀란 자신의 개성이기도 하다. 애당초부터 그의 감수성이 쿨한 것과 거리가 멀다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가 이 영화의 멜로드라마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진지하고 단도직입적인 감정에 대한 민망함 때문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실제로 과한 멜로드라마일 수도 있지만, 냉소주의의 시대를 사는 보통 관객들이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장르의 성격을 지적하게 된다. <인터스텔라>의 거친 심리묘사와 캐릭터 묘사를 수많은 고전 SF 소설들, 예를 들어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이나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와 같은 작품들이 가진 단점들과 비교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런 투박함은 장르의 발전과 함께 어느 정도 극복되었으므로 이는 얼핏 보면 단점을 다시 지적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사람들이 일반적인 멜로드라마의 세련됨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건 보기만큼 큰 문제점이 아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에겐 세련됨을 유지하는 데에 꼭 필요한 익숙함과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SF가 그렇듯, <인터스텔라>는 인류 역사상 아주 특별하고 거대한 사건을 다룬다. 이런 사건에 말려든 사람들은 일반적인 드라마 속 인물들과 비슷한 능숙함을 유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비현실적일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들의 거친 감정과 행동은 오히려 사실적이다. 만약에 이들이 마치 우주여행 소설이나 영화를 모조리 독파한 ‘SF 덕후’처럼 세련되게 행동한다면 오히려 부정직해 보일 것이다.

요약하면 <인터스텔라>는 우주선을 타고 웜홀을 거쳐 미지의 우주로 나아가는 우주인뿐만 아니라 지구에 남아 그들을 기다리는 지구인들이 겪는 정서적 모험을 함께 그린다. 우린 이들의 멜로드라마를 또 하나의 모험으로 보아야 한다. 다른 기준의 적용이 필수적인 것이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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