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잔혹사│① 롯데, 해도 해도 너무 한 거 아이가

2014.11.11

사진. 롯데 자이언츠

정말 빼빼로데이를 맞아 불매 운동이라도 벌여야 하는 걸까. 최근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이하 롯데) 팬덤의 구단에 대한 압박과, 그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롯데 구단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지난 10월 29일 롯데 프런트의 비합리적인 구단 운영에 반발하는 1인 시위로 본격화된 팬들의 시위는 ‘Save the Giants’라는 이름으로 좀 더 조직적으로 운영되었다. 사직구장에서 시작된 1인 시위는 서울 제2 롯데월드 앞에서도 진행됐고, 삭발식이 있었으며, 단체 집회까지 열렸다. 그 와중에 구단은 호텔 CCTV로 선수단의 사생활을 감시한 사실을 언론에 들켰다. 여론과 언론이 압박했고, 결과적으로 최하진 사장과 배재후 단장 등이 사의를 밝혔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에 대해 누가 어떻게 왜 진행했는지에 대한 의혹은 깨끗하게 풀리지 않았다. 징벌은 내려졌지만, 더 나은 구단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2014 시즌 전반기까지만 해도 4강이 거의 확정된 것처럼 보이던 롯데가 후반기 들어 끝없이 추락할 때만 해도 다수 자이언츠 팬들은 분노하되 ‘우리 팀이 그렇지 뭐’라며 익숙한 패턴의 자학을 반복했다. 대신 다음 시즌엔 더 잘하길, 그럴 수 있는 노력을 보여주길 기대했을 뿐이다. 하지만 소위 프런트 라인으로 분류되는 공필성 코치가 차기 감독이 될 거라는 소문과 함께 선수단이 이에 반발하면서 팬들의 기대는 완벽히 배반당했다. 선수단과 프런트의 갈등이 언론을 통해 수면 위로 떠올랐고, 사장과 단장의 파워 게임, 그에 따른 감독 권한의 축소 같은 문제들이 연이어 밝혀졌다. 승패는 병가의 상사일지 모른다. 하지만 패배를 양산하는 부패한 시스템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물론 모기업의 움직이는 홍보 배너 겸 회장님의 취미로서 존재하는 프로야구 구단에서 팬은 언제나 부차적인 요소다. 잘하나 못하나 우리 팀을 지키는 정서는 분명 미덕이지만, 기업 입장에선 이런 ‘호갱’이 없다. 팬들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KIA 프런트는 팀을 두 번이나 8위에 올려놓은 선동열 감독과의 재계약을 발표했고, SK 와이번스(이하 SK) 역시 팬들의 신임을 잃은 이만수 감독과 다시 재계약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흘렸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둔 감독들(김성근, 조범현)을 임기 중 경질시키고 해당 감독을 임명한 프런트는 책임을 지기는커녕 독단적인 팀 운영의 민낯을 드러냈다. 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다. 우리는 ‘호갱’이 아니라고 외치는 것뿐이다.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감독에게도 KIA 팬들은 비난 여론을 멈추지 않았고, 지역 신문은 그가 군 입대를 앞둔 선수에게 임의탈퇴를 미끼로 입대를 만류했다는 걸 까발렸다. 사과문까지 올렸던 선동열 감독은 자진 사퇴했고, 가장 합리적인 경우의 수로 평가받던 김기태 감독이 부임했다. SK는 결국 이만수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했으며, 송일수 감독을 경질한 두산은 왕년의 ‘허슬두’를 표방하는 김태형 신임 감독을 임명했고, 한화 이글스 팬들의 청원 릴레이는 김성근 감독의 부임이라는 기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팬이 구단을 압박해 원하는 걸 얻어냈다는 분석은 이 싸움의 본질을 흐린다. 더 나은 야구를 볼 수 있게 해달라는 당연하고 합리적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이 정도까지의 실력행사가 필요했다는 게 진실에 가깝다. 롯데만 제외한다면.

사진. Save the Giant 페이스북

모든 맥락을 지운 채 본다면, 롯데 프런트가 가장 책임 있는 행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어느 구단도 사장과 단장이 동반 사퇴하진 않았다. 이종운 신임감독은 나름 인성과 합리적인 소통 능력을 갖춘 인물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신상필벌 자체가 아닌 이를 통해 더 나은 야구를 하는 것, 혹은 그에 대한 전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망가진 시스템 안에서 사람만 바뀌는 건 무의미하다. 자이언츠 팬들은 오랜 시간 그것을 학습했다. 팀을 한국시리즈까지 올렸던 프랜차이즈 스타 ‘미스터 롯데’ 김용희가 구단의 지원 부족으로 최하위를 기록한 뒤 임기 중 경질된 걸 지켜봤다. ‘888577’의 저주를 깨고 3년 연속 가을 야구를 실현하고 롯데를 전국구 인기 팀으로 만든 로이스터 감독은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하지 못했다고 재계약이 불발됐다. 프랜차이즈 스타 마해영이 타 구단에 팔려가는 걸 봐야 했고, 타격 7관왕에 올랐던 이대호는 연봉조정신청까지 내야 했다. 이 모든 일들을 인내했던 팬들은 이번 구단 내 파벌 다툼의 실체를 보며 자신들이 인내하는 동안 구단은 반성하기는커녕 더 곪아왔다는 걸 확인했다. 이런 상황에서 죄송하다는 말로 사퇴는 하되 CCTV의 진실은 무엇이고, 파벌 싸움의 원인은 무엇인지 밝히지 않는다. 과연 이것이 정말 고심한 선택인지 사태를 서둘러 봉합하기 위한 임기응변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들에게 필요한 건 왜 믿어주지 않느냐는 호소가 아니라, 대체 왜 팬들이 구단의 일거수일투족을 불신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통렬한 자기비판이다. 물론, 그런 건 없다. 팬들은 여전히 거리에 있다.

그래서 롯데 사태와 자이언츠 팬들의 행동은 구단과 팬 사이의 비대칭적인 관계의 문제뿐 아니라 현 한국 사회에서 익숙한 어떤 풍경들을 재현한다. 자이언츠 팬들이 원하는 건 다음 시즌 우승이 아니다. 일본에서 당장 이대호를 데려오라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불거진 문제들의 실체를 명백히 밝히고 합리적으로 야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부산 주류 시장에 소주 처음처럼을 팔 때처럼 필요할 때마다 자이언츠 팬덤에 호소하던 구단은 정작 팬들의 호소에는 묵묵부답이다. CCTV 감시처럼 위법에 근접한 행위가 발견돼도 적극적으로 해명하거나 반성하기보다는 언론에서까지 들고 일어나야 무엇 하나 시원히 밝히지 않은 채 임원 둘이 황급히 떠나는 걸로 사태를 매조 한다. 타 구단 팬들이 여론을 통한 압박으로 이뤄낸 게 그리 대단한 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뻔뻔하다면, 그 대단치 않은 호의마저 베풀지 않을 수 있다. 행동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행동해도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정말 빼빼로데이 때 불매 운동이라도 해야 할까. 그들에게 가시적인 손해가 생기면 팬들의 목소리가 저 위에까지 들리게 될까.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여전히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약자인,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란 것이다. 야구에서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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