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잔혹사│② 롯데 프런트의 흑역사

2014.11.11

최근 롯데 자이언츠(이하 롯데)를 둘러싼 수많은 논란은 사실 ‘롯데’가 아닌 ‘롯데 프런트’에 관한 것이다. 프런트가 선수들을 CCTV로 사찰하는 등 상식을 벗어난 운영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팬들이 분노하는 것 역시 단지 성적을 못 내서가 아닌, 프런트가 팬들이 사랑하는 ‘자이언츠의 야구’를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 프런트는 대체 어떤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인 것일까. 그들이 프로야구 출범 이후 벌여온 모든 비상식적인 일들의 역사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이다. 일을 벌인 사람은 다를지언정, 롯데 프런트가 야구를 대하는 태도는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다.


故 최동원의 보복성 트레이드 (1988)
1988년 11월, 故 최동원은 팀 연습을 가던 중 기자들의 전화를 받고 자신이 삼성 라이온즈(이하 삼성)로 트레이드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롯데에 입단한 지 1년 만에 팀에 첫 우승을 안기고 사직구장의 영웅이 된 그였다. 선수를 트레이드하는 것은 구단의 고유 권한이지만, 당시 구단의 트레이드는 전력 향상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최동원은 선수들의 복지를 위해 선수협을 만들려고 했었고, 이에 구단은 “선수회 사건으로 후유증을 남겼고 매해 연봉파동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그를 트레이드했다. “투수력에서는 크게 전력이 약화”되는 걸 알면서도 “매년 팀당 10~20억 원씩의 적자를 보는데 선수들에게까지 시달릴 수는 없다”는 당시 프로야구단 의견에 따른 롯데의 결정은, 무능할 뿐만 아니라 한 개인에 대한 보복이기도 했다. 최동원을 입단시킬 때부터 “동료 선수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을 받는다면 팀워크가 깨진다”(<경향신문>, 1983)고 한 롯데는 그렇게 최고의 선수를 보냈다.

마산 경기 축소 논란 (1992)
1990년대 초반, 롯데 프런트는 삼성, 빙그레 이글스, LG 트윈스(이하 LG)와 함께 “9명이 하는 경기에 80명에 가까운 선수단이 필요하냐”며 2군 존폐론을 거론(<동아일보>, 1992)할 만큼 투자에 인색했다. 게다가 그해 여름에는 연고지 중 한 곳인 마산에서 홈경기를 거의 열지 않았다. 대신 티켓 매진 시 수익금이 2배 더 많은 부산 사직구장에 홈경기를 몰았다. 이후 롯데는 한화와 더불어 비용이 가장 적게 든다는 이유로 더위가 심한 호주에 해외전훈지 캠프를 차리기도 했다(<경향신문>, 1996). 당시 롯데가 다른 구단에 비해 가장 적자 폭이 적은 편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프로야구 발전이나 팬을 생각하는 마인드가 전혀 없었다고밖에 볼 수 없는 부분이다.


故 임수혁의 사고 (2000)
2000년 4월, 故 임수혁은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의 경기 도중 지병인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됐다. 구단 트레이너는 응급대처법을 몰랐고, 경기장에 있던 유일한 의료진이었던 간호사는 그의 상태를 일사병으로 판단했다. 게다가 롯데는 이후 지원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2002년 故 임수혁의 가족들에게 “생활비 지원에 대한 어떠한 언질도 받지 못했고, 병원비도 지속적으로 지급하기 힘들다”고 했고, 이듬해 가족들이 롯데와 LG를 상대로 민사조정을 신청하자 “법률상 책임은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도의적으로는 어느 정도 보상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소송을 제기한 이상 지원을 중단한다”고까지 했다. 롯데 선수단은 물론 현대 유니콘스 선수단이 자발적으로 매월 치료비를 모았던 상황이었다.

1년 만의 감독 교체 (2002)
김명성 감독이 2001년에 심장마비로 별세하자, 롯데는 고심 끝에 우용득 감독 대행을 감독으로 선임했다. 하지만 성적 부진을 이유로 우 감독이 1년을 채우기도 전에 그를 중도 해임했고, 후임 백인천 감독을 임명했다. 하지만 그 백인천 감독이야말로 지금까지도 팬들이 그를 ‘금지어’라고 말할 만큼 어이없는 운영으로 팀을 망친 감독으로, 이후 롯데는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오기 전까지 긴 암흑기를 보냈다.


로이스터 감독과의 재계약 포기 (2010)
감독으로 선임된 해부터 3년 연속 롯데를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다. 패배주의에 빠져 있던 팀의 분위기도 끌어올렸다. 하지만 구단은 2010년 10월, 로이스터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한다. 롯데는 부임한 지 1년이 된 감독에게 우승을 요구하면서도 2년의 단기 계약을 원했고, 최하위였던 팀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린 감독을 “우승시키지 못한 감독”으로 폄하했다. 팬들은 팀이 패배하면 변명하는 대신 책임을 지고 새로운 색깔의 야구를 보여줬던 로이스터를 신임했지만, 팬들의 의견은 구단의 고려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재계약 과정에서 로이스터가 요구한 연봉 액수가 구단에 의해 알려진 비정상적인 일 또한 팬들의 원성을 샀다.

이대호의 연봉조정신청 (2011)
이대호가 타격 7관왕, 9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기록을 세운 후, 롯데는 연봉으로 6억 3,000만 원을 제시했다. 이대호의 요구액은 7억 원이었고, 그는 2008년과 2009년 개인 성적이 준수했음에도 연봉 삭감 통보를 받기도 했었다. “자존심을 지켜주길 바란다”던 이대호의 요구는 결코 감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롯데는 이승엽이 8년 전에 받은 액수를 제시하며 “이 액수면 국민타자 대우를 해주는 것”이며 “팀 내 다른 선수들의 사기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고, 이대호는 “물가 상승률을 반영했으면 좋겠다”며 KBO에 연봉조정신청을 냈다. 롯데 프런트는 당시 한국 최고 타자에게 7,000만 원을 더 주기 싫어 연봉 조정까지 간 것이다. 그리고 1년 뒤, FA가 된 이대호는 100억 원을 제시한 롯데 대신 일본 오릭스 버팔로스로 갔다.


선수단에 대한 폭언 (2013)
2012년, 양승호 감독이 물러나자 구단 운영팀 실무 책임자는 선수단 미팅을 소집해 “양 감독이 물러나게 된 것은 너희들이 기자들에게 함부로 말해서다. 앞으로 말조심하라”고 선수들을 질타했다(< OSEN >, 2012). 심지어 고위 관계자가 연봉 협상을 하며 선수에게 물병을 던졌다는 등의 흉흉한 소문까지 돌았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FA가 된 홍성흔과 김주찬은 다른 구단으로 떠났다. 롯데의 올해 성적 하락과 프런트에 대한 문제는 이때부터 곪아 있던 것이 터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두조 수석 코치 사퇴 (2014)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5월, 선수단의 요구로 권두조 수석 코치가 사퇴했다. 그가 프런트를 대변하는 인물이었다는 이유다. 강압적인 훈련 스타일로 선수들과 갈등을 빚었던 권 코치가 소위 ‘프런트 라인’이었다는 것은 물론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김시진 감독이 권영호 영남대 전 감독을 수석 코치로 발탁하자 2군 감독으로 갔던 그는 한 시즌 만에 다시 수석 코치 자리로 돌아왔고, 권영호 코치는 일주일 만에 경질됐었다. 또한 선수단의 집단행동이 알려지는 과정에서 구단 관계자가 팀 주장에게 “선수들이 권 코치의 사퇴를 요구한 적은 없었다”고 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내도록 한 것도 밝혀졌다. 프런트와 선수들의 갈등은 이미 극에 치닫고 있었고, 롯데는 7년 만에 7위로 내려앉았다.

CCTV 사찰 (2014)
올봄, 구단이 선수단의 원정 숙소 호텔의 CCTV로 새벽부터 아침까지 선수들의 행적을 사찰했다는 의혹이 터졌고, 배경에는 최하진 사장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최 사장은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사찰은 “선수의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고 선수단의 컨디션을 조절하기 위함”이라며 선수들의 동의를 미리 구했다고 했지만, 선수단은 이를 부인했다. CCTV 사찰은 결국 국회에서까지 거론될 만큼 논란이 됐고, 결국 최하진 사장은 물러났다. 새로운 프런트 운영진이 등장했지만, CCTV 사찰의 충격은 여전하다. 사상 초유의 논란과 분란을 일으킨 롯데는 과연 이번 갈등을 봉합하며 팬이 원하는 자이언츠가 될 수 있을까.

교정. 김영진




목록

SPECIAL

image 장성규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