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버터칩, 그 맛의 비밀을 찾아서

2014.11.10
사진제공. 해태

봉지를 뜯자 낯익은 질소의 바람에 실려 낯선 과자의 향기가 코끝에 닿았다. 아, 이 향기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홀렸던 거로구나. 언젠가부터 SNS 타임라인에 간증이 쉬지 않고 올라오던 그 제품, 해태 허니버터칩이었다. 이 과자에 대한 찬사는 말 그대로 단순한 추천의 변이 아닌 간증이었다. 누군가는 허니버터칩 2+1 행사에 인생의 호사가 있다는 듯 말했고, 누군가는 <허생전>의 허생처럼 사재기를 해댔으며,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생산 일시 중단 소식에 수백 수천 명이 절규하기도 했다. 입소문은 빠르게 퍼졌고, 제품은 출시 3개월 만에 매출 50억 원을 달성하며 감자칩 시장의 앙팡테리블로 떠올랐다. 사실 그럼에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과거 덴마크 우유 김현복 장인에 대한 풍문처럼, 이번에도 몇몇 호사가들의 설레발이 아닐까. 찍힌 이름에 따라 맛이 미묘하게 다르다고 증언한 사람들처럼, 이번에도 일종의 최면 효과가 미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저도 먹어보았습니다.

제품의 첫인상은 앞서 말했듯 혀보다는 코로 먼저 전해졌다. 물론 모든 음식은 혀를 대기 전 음식물에서 날리는 향기 성분이 후각세포를 먼저 자극한다. 중요한 건 그 강도와 독특함이다. 일반 감자칩 역시 고소한 기름 냄새가 식욕을 자극하지만, 허니버터칩은 그보다 조금은 느끼하고도 짙은 버터 냄새가 코를 훅 찌른다. 아마도 이 향의 정체는 봉지 뒷면에 자랑스럽게 써 붙인 프랑스산 고메 버터일 것이다. 고메 버터는 프랑스어로 미식을 뜻하는 ‘Gourmet’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사실 프랑스에서는 특정 브랜드가 아닌 장인이나 어떤 지역에서 특별히 생산되는 모든 프리미엄 제품에 고메라는 수식이 붙는다. 가령 마복림 할머니의 떡볶이도 일종의 고메 떡볶이가 될 수 있다. 때문에 프랑스의 최고급 버터인 에시레나 이즈니도 고메 버터로 분류된다. 하지만 12시간 발효를 거쳤다는 설명으로 볼 때, 허니버터칩에 쓰인 고메 버터는 이들 프리미엄 버터가 아닌 프랑스 유제품 회사인 엘레&비르에서 나온, 제품명 자체가 고메 버터인 버터로 추측된다. 이 제품은 높은 온도에서 구울 때 달콤하고 고소한 풍미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허니버터칩 봉지에서 흘러나오는 향기 역시 그러하다.

요컨대, 이 과자는 먹기도 전에 향기를 통해 제품에 대한 수많은 정보와 기대치를 입력시킨다. 이미 많은 연구가 증명하듯, 우리가 맛을 느끼는 것에도 많은 학습이 필요하다. 즉 맛을 느끼는 건 기존에 느낀 수많은 맛과 상황들에 대한 데이터를 연산하는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게 허니버터칩은 먹기 전부터 감자칩이라는 시각적 정보와 마치 베이커리에 온 듯한 기분의 후각적 정보가 충돌하며 이 과자에 대한 섣부른 예상을 차단한다. 그리고 입에 넣고 와삭 감자칩을 씹는 순간, 이미 살짝 당황한 뇌를 향해 이번에는 미각세포에서 짭짤함 뒤에 몰려오는 달콤함을 전달한다. 뭐지,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하는 건가? 흔히 ‘단짠단짠’이라 부르는 단맛과 짠맛의 연쇄적인 끌림이 감자칩 하나 안에서 반복된다. 여전히 짙은 버터 향으로 뇌를 끊임없이 교란하며.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경험. 우리는 그걸 흔히 새로움이라고 부른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호불호를 떠나 ‘이런 맛은 처음이다’라고 말하는 건 이처럼 익숙하지 않은 느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검증은 철저해야 한다. 정말 이런 맛은 처음인가? 단맛과 짠맛과 고소함의 레시피는 참신한 조합인가? 연남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요리연구가 C에게 조언을 구했다.

“버터와 꿀, 감자칩과 비슷한 조합을 다른 요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까요.”
“굉장히 많죠. 적절한 양의 소금은 짠맛 이외의 다른 맛도 잘 느끼게 해주기 때문에 셰프들은 양질의 소금을 베이킹이나 달콤한 요리에 종종 사용해요. 당장 감자칩 중에서도 시나몬과 황설탕 맛, 피칸파이 맛을 내놓은 프링글스가 있고요, 초콜릿을 코팅한 로이스도 비슷하죠. 사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대중음식이 있어요. 삶아서 부드러워진 감자를 지져서 설탕에 굴려 먹는 휴게소 버터구이 감자도 단맛과 짠맛, 감자의 고소함을 더한 조합이죠.”

아, 고속도로 휴게소 알감자에 이토록 엄밀한 맛의 황금비율이 숨어 있었다니. 새로운 사실에 무릎을 치는 동시에 다시금 의문이 생겼다. 기존 국산 스테레오 감자칩과는 다른 맛이지만, 그 자체로는 아주 새롭지만은 않은 이 조합에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걸까. 그렇다면, 다른 맛에서 ‘맛’보다는 ‘다름’에, 즉 차이로부터 이 제품만의 독특한 위계가 만들어지는 건 아닐까.

이 제품의 돌풍이 SNS에서, 그리고 나름 트렌드에 발 빠른 이들의 선도를 통해 증폭됐다는 건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위 질소 과자라는 통칭으로 불릴 정도로 국내 과자의 과대포장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커지자 트렌드에 민감한 이들은 수입 과자를 그에 대한 대안처럼 받아들였다. 하지만 ‘호갱’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이 국산 과자에 대한 편견을 키우고 수입 과자의 장점을 부풀린 것 아니냐는 반론이 생기면서 수입 과자에 대한 열광 역시 설레발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허니버터칩은 새로운 맛을 통해 국산 과자는 안일하다는 편견을 깨는 동시에, 수입 과자는 힙스터의 호들갑스러운 취향이라는 반감으로부터도 자유롭다. 기존 트렌드의 내부 모순을 변증법적으로 극복한 이 제품은 그래서 맛의 호불호 이전에 트렌디하다. 문득, 자문을 해주던 C가 말해준, 허니버터칩의 주재료인 아카시아 꿀의 장점이 떠올랐다.

“아카시아 꿀은 굉장히 맑고 잡 꿀, 밤 꿀, 만누카를 비롯한 다른 꿀에 비해 섬세해서 섞는 재료들의 맛을 가려버리지 않는 것이 장점이에요.”

어쩌면 서로의 맛을 함께 살리는 허니버터칩의 단맛 짠맛 고소한 맛의 조화는, 한 극단에서 트렌드를 좇는 사람들에게 변증과 조화의 의미를 가르쳐주는 것은 아니었을까. 단순한 설탕이 아닌 ‘허니’를 그것도 다른 재료와 조화를 이루는 아카시아 꿀을 고른 제조사의 선택은 이러한 고심의 흔적이 아니었을까. 미각의 즐거움과는 또 다른 훈훈함을 느끼며 그들의 고심이 묻어나온 봉지 뒷면의 성분 표시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읽어보았다. 허니버터 시즈닝 6.0%(아카시아 꿀 0.01%, 고메버터 0.01% 함유). 역시 다른 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꿀도 버터도 너무 과하지 않게 나노 단위로 배분하는 제조사의 황금 비율은… 훼이크고 0.01%를 감별해내는 우리가 황금혀다.

자문. 요리연구가 차유진│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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