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이승환, 깃발을 든 피터팬

2014.11.10

한국에서 이승환만큼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산 뮤지션은 드물 것이다. JTBC <히든싱어>에서 그의 팬이 한 말처럼 이승환의 노래들은 지금의 30~40대에게 “인생의 OST 같은” 것이었다. 그는 셀 수 없이 많은 히트곡을 내놓았고 공연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로 한국 공연 시장의 흐름을 바꿨으며 취미 삼아 사운드 관련 문화 잡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음악으로 번 돈 이상을 음악을 만드는 데 들였고, 공연에 몰입한 나머지 머리카락에 불이 붙은 적도 있다. 심지어 공연 당일 갑자기 맹장염에 걸릴까 봐 조바심 내던 끝에 맹장을 미리 뗄 수 있는지 문의했다가 미쳤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포털 사이트 프로필에서 출생 연도는 지웠지만 ‘이승환 옹 특별 회고전’이라는 제목의 콘서트를 열고, 해맑게 웃으며 “실버보험 가입이 코앞”이라고 털어놓는 아저씨. 하지만 데뷔 25년간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떨어지지 않는 별명, ‘어린 왕자’로 불리는 뮤지션. 단지 40대에 몸을 만들어 복근을 공개하거나, 여전히 통통한 볼 때문은 아니다. 유명 피규어 작가가 디자인한 ‘개 옷’을 입고 지상파 토크쇼에 당당히 출연해 눈길을 끌거나 특유의 나긋나긋한 말투로 “님 좀 짱인 듯”, “포텐 터지기를” 같은 ‘시쳇말’을 유창하게 구사해서도 아니다. 이승환은 동안의 비결이 “권위적이지 않은 것, 누군가에게 군림하지 않는 것”이라 말하고 “젊으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난 그냥 젊다고 생각한다”며, 10대와 20대 여성들이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라는 말에 바로 출연을 결정하거나 “젊은 팀들보다 공연을 잘한다는 걸 확인시키고 싶다”고 다짐한다. 그는 끊임없이 젊음을 간절하게 갈망하며 소년 혹은 청년으로 남아 있기를 원한다.

흐르는 세월을 애써 거스르려는 무리한 욕심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중심을 시간에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의지다. 이승환은 음반 시장이 서서히 내리막을 걷고, 노래만 해서는 아무리 공들인 공연의 티켓도 팔기 어려워지는 과정을 온몸으로 체감한 뮤지션이었다. 올봄, 열한 번째 앨범 < FALL TO FLY 前 >을 내놓은 그는 말했다. “어느 뮤지션이든 차트에 진입하지 못하면 그걸로 음악인의 가치가 대중들에게 각인된다. 역시 퇴물이었다고. 그게 힘들다.” 그리고 예정되었던 < FALL TO FLY 後 >는 아직 나오지 못했다. 열정은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은 흘렀고 시장은 변했다. 이승환은 어느새 자신이 “록 페스티벌에 나가도 그리 어색하지 않고, 열린 음악회에 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애매모호한 경계에 있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많던 스태프를 거의 다 떠나보내고 녹음실만 유지하는 그에게 딸린 식솔은 이제 밴드 멤버들뿐이다.


그러나 이승환은 과거의 영광을 되풀이하거나 ‘요즘’ 세상에 훈수 두는 꼰대가 되지 않았다. 대신 공연을 위해 1년에 3개월만 술을 마시고, 반년에 걸쳐 연말 공연을 준비하고, <히든싱어>든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든 노래를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꼭 밴드와 함께 간다. 예능에서 ‘늙은 왕자’라 놀림받기도 하는 그는 자신의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 대해 가볍게 농담을 던지지만 음악에 대해서는 점점 더 집요할 만큼 높은 완성도를 추구한다. 그가 음악을 통해 버는 돈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적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승환은 최근 공연 수익금에 개인 기부금을 더한 전액을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보냈다. 그는 점점 자신의 몫을 남겨두지 않고 음악에 쏟아붓고, 그것을 통해 다시 사회에 좋은 것을 남기려 한다. 그가 투자한 영화 <26년>의 원작 만화를 그린 강풀 작가가 그에 대해 “좋은 의미로, 생각나는 대로 산다”고 말한 것처럼.

특히 최근 몇 년간 이승환은 정말로 생각나는 대로 사는 것처럼 보인다. 활동에 타격을 입을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해 전에는 용산 참사 유가족 돕기 공연과 언론노조 집회 무대에 섰고, 올해 5월에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필요하다면 시청 광장에 가서 노래라도 부르겠다”고 했으며, 정말로 7월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 시낭송 그리고 음악회’ 무대에 섰다. 그리고 <히든싱어>에서 자신의 행보를 걱정하는 팬들을 향해 “늙되, 언제나 젊게 늙읍시다”라고 말한 지 일주일 뒤, 그는 페이스북에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외면한 박근혜 대통령과 교양제작국을 해체한 MBC를 강하게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최근 가까운 뮤지션 신해철을 갑작스레 떠나보낸 그는 “착하게, 정의롭게 살고자 한 사람들이 먼저 떠나는 게 원통하고 분하다”고 썼고,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해철이 몫까지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수익을 계산하지 않고 음악에 투자하는 것도, 잘못된 권력을 비판하는 것도 ‘깃발’을 드는 거라 표현하는 그는 자신이 이뤄온 것들과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발목 잡히지 않고 예의 가벼운 말투로 이야기했다. “지킬 게 없다고 생각하면 깃발 들고 앞에 설 수 있다.” 그것은 나이 들어도, 아니 나이 들수록 “도망치지 않으려 피해 가지 않으려 / 내 안에 숨지 않게 나에게 속지 않게”(8집 ‘물어 본다’) 점점 더 뜨겁게 살고 있는 로커의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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