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의 커밍아웃, 화려하지 않은 고백

2014.11.07

나는 팀 쿡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 며칠 전까지 그는 그저 내 게이 친구들이 좋아하는 애플사를 이끄는 CEO이면서, 공식적으로 커밍아웃한 적은 없다지만 미국에선 누구나 아는 ‘유리벽장(glass-closet)’ 속 게이에 불과했다. 그가 공개적인 커밍아웃을 감행하였다는 기사 제목을 보았을 때까지도 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유리벽장의 커밍아웃은 결말을 봐 버린 추리소설 같은 것이다. ‘결국 했구나’ 정도의 감상으로, 다분히 의례적으로 그의 커밍아웃 기고문을 읽기 시작했지만, 나도 모르게 고쳐 앉아 정독하게 되었다.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힘든 이유가 있다.

그 글에 새로운 사실은 별로 없었다. 그는 2011년 애플 CEO로 취임했을 때 이미 “실리콘 밸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게이”로 호명된 바 있다. 오히려 그의 성적지향을 전혀 몰랐던 듯한 한국의 언론 기사 몇 개가 나에게는 좀 “충격”적이었다. 그 외에는 놀랄 일이 딱히 없었다. 미국 정재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팀 쿡을 지지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내 트위터 타임라인에는 ‘게이는 좀 그렇다’는 상투적인 호모포비아적 반응과 “애플 제품을 버릴 호모포비아는 연락해 달라” 같은 ‘드립’이 공존했다. 모든 것이 따분할 정도로 예상대로였다. 이렇게 대강의 내용과 반응마저 예상되는 서구의 성소수자 소식을 접하다 보면 ‘현자타임’이 올 때가 있다. 저들에게는 차별금지법이, 성소수자의 가족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제도가, 우호적인 여론과 정치가들이 있다. 게다가 팀 쿡은 자기 영역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다. 저런 나라에서, 그 정도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의 커밍아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모든 삐딱한 감상에도 불구하고 나는 누군가의 커밍아웃 소식에 매번 경탄하고야 만다. 우리는 말하지 않으면 의문 없이 비트랜스젠더 이성애자로 간주되나, 성소수자로 인지되기 위해서는 이 암묵적인 규범을 거슬러 말해야만 한다. 커밍아웃에는 규범을 거스를 용기와 특별한 동기가 분명 필요하다. 이러한 사회적 커밍아웃은 너의 정체성을 부끄러워하고 숨기라는 외압과 차별에 대한 공개적인 반발인 것이다. 그래서 커밍아웃은 “나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라는 선언의 형식을 따른다. 이 선언이 괜한 ‘게이부심’이란 훈수를 들을 이유는 없다. “이성애자임이 자랑스럽다”와 동가의 진술 또한 아니다.

비교적 성소수자에 대해 우호적인 사회에 사는 유리벽장 속 성소수자라도 굳이 커밍아웃하여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대신 침묵을 선택할 수도 있다. 팀 쿡에게도 러시아 발 불쾌한 소식이나, 애인의 정체에 관한 보도와 같은 일들이 여지없이 일어났다. 이러한 귀찮음과 위험을 무릅쓰고 커밍아웃을 감행한 동기에 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애플사의 CEO가 게이라는 사실이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실마리를, 자신이 혼자라 생각하는 사람에게 위안을, 평등을 위해 싸우는 이들에게는 영감을 줄 수 있다면, 내 프라이버시도 희생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다수의 것이 아닌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지녔다는 정도의 공통분모로 모인 사람들이 하위문화와 집단을 구성하여 서로의 삶에 기여한다. 자신의 성공에 이 집단의 다른 구성원이 기여한 바를 인정하며, 자신 또한 그렇게 기여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진다. 팀 쿡은 성소수자 집단과 개인 사이의 이 호혜적인 관계를 분명하게 인지한 채, 자신 몫의 기여를 하겠다고 덤덤히 선언했다.

모든 사람이 매 순간 특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행동할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구에게든 타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기여할 수 있는 기회는 온다. 선의를 간직한 채로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면서 “내 몫의 벽돌”을 준비한다. 별 일 아니라는 듯이 겸허한 어투로 제시된 이 내용에서 예상치 못한 감동을 받았다. 이것이 내가 새로울 것 없는 그의 커밍아웃 선언을 정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MECO
퀴어니 성소수자니 LGBT니 하는 단어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본업은 섹슈얼리티와 별 상관이 없는 대학원생 겸 등골브레이커. 사람 좀 만나보겠다고 트위터와 블로그를 시작했다. 꿈은 높았지만 현실은 네트워크에서도 건어물 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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