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나에게 쓰는 편지

2014.11.06

신해철 씨가 세상을 떠나고 많은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그의 장례를 주관하고 있다. 추모의 글과 기사뿐 아니라 그의 생전 언행과 과거 동영상이 SNS에 넘쳐난다. 길에서는 그의 노래들을 어느 때보다도 자주 듣게 되었다. 혹자는 한국 국민의 냄비근성을 들먹이며 꼭 누가 죽으면 듣지도 않던 노래를 듣는다고 일침을 놓기도 하고 그러게 살아 있을 때 좀 듣지 하는 핀잔 섞인 입장도 표현하는 것 같지만, 나는 한 세대를 거치며 다수에게 영향을 준 누군가가 우리 곁을 떠났을 때, 그 다수가 이런 방식으로 추모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느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한동안 그의 곡을 듣지 않았다. 그의 최근 행보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즉, 어쩌면 나는 누군가가 가장 ‘깔’ 사람들 중 하나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그의 죽음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었다. 그러니 이 글은 나의 개인적인 추모사인 셈이다.

나는 굳이 말하자면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멋진 친구나 좋은 형·누나들, 그리고 대단한 아티스트들의 유산으로부터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며 나이를 먹어왔다.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건 나 자신이 변한다는 뜻이다. 혹은 아직 없던 부분이 생겨난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보통 이런 변화나 형성은 최초의 어떤 감동으로 시작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면 그 감동을 나에게 선사한 사람에게 관심이 생기게 되고 그에게서 뭔가를 발견한다. 그건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의 일부다. 그렇게 누구나 많던 적던 자신의 롤모델을 하나씩 갖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내 기억 속 가장 최초의 롤모델은 신해철 씨였다. 그 시점은 무한궤도의 데뷔도 신해철 1집도 아닌, 2집의 한 곡이었다. 그 곡의 제목은 ‘나에게 쓰는 편지’였다. 10대의 초입에서 처음 접한 그 곡은 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일종의 천명과도 같았다.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정말로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 등에 대해 향후 이어질 고민을 잔뜩 안겨준 그 곡 때문에 나는 매우 진지하고 재미없는 소년이 되었지만 그 덕분에 내 삶은 어느 정도 방향을 정하게 되었다.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서 관심 가는 아티스트에 대해 수많은 정보를 모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를 신해철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는 그의 노래와 가사였다. 가끔은 앨범의 부클릿이거나. 즉, 그 때의 ‘롤모델링’은 일종의 블라인드 데이트였던 셈이다. 사실 정보가 넘쳐나는 현재에도 어느 정도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보통 우리가 정한 롤모델을 우리 마음대로 규정하고, 그에게서 내가 원하는 것만을 취하니까. 그리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언행을 보이는 롤모델에게서 멋대로 배신감을 느끼고 누구보다 극렬한 안티가 되어가니까. 기대는 실망을 가져오고 대부분의 기대는 우리가 멋대로 만드는 것이니까.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롤모델의 특정한 지점만을 취할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그 사람 자체가 좋다고 해도 나는 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삶의 어느 지점에서 그와 나의 분기점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그 때 스무스한 졸업을 하려면 그 사람의 어느 부분만을 참고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롤모델의 유통기한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성장해 가면서 기존의 롤모델에서 졸업하고 다른 롤모델로 옮겨가면서 여러 롤모델의 여러 부분만을 수집하고 기워내어 나의 첫 번째 프로토타입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것이 건강하다고 생각해서이다. 물론 단순한 팬질은 즐겁고 좋은 일이다. 그에게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것에 이입하거나 동경하는 것은 순수한 즐거움이며 자신을 확장하는 좋은 방법이니까.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상처받고 실망하는 수고로움을 덜어가면서도 진짜로 그 사람으로 인해 내가 확장되려면 위의 몇 가지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수많은 롤모델들을 거치면서 조금씩 그들 모두에게서 졸업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얻은 것들은 대부분 시간이 가면서 변해가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최초의 롤모델, 신해철 씨가 나에게 건네준 고민의 지점들은 변하지 않았고 아마도 내 삶의 끝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10대의 새끼오리에게, 그는 한 곡의 가사로 각인을 심어주었다. 그의 과거 이야기와 디스코그래피를 나열하지 않는 지극히 개인적인 추모의 글이 되어 미안하지만 떠나간 사람에 대해서는 모두가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로 인해서 내 삶이 변했다는 추모의 글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종범
<닥터 프로스트> 작가로 일 벌이길 좋아하는 참치형 만화가.
덕력과 잉여력의 위대함을 신봉하지만 정작 본인은 마감 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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