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라이프스타일숍이 만드는 착각

2014.11.07

홍대입구역 근처에는 ‘버터’라는 라이프스타일숍이 있다. 브랜드 측의 설명에 따르면 정확히는 팬시&리빙 SPA이며, 국내 최초의 패스트 리빙 브랜드이기도 하다. 매장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편이지만, 꽉꽉 들어찬 물건들의 리스트는 다른 곳 못지않게 다양하다. 고양이 캐릭터 펠릭스를 앞세운 필기구와 노트류, 실내용 슬리퍼, 플라스틱 그릇과 앞치마는 물론, MUJI 풍의 심플함을 자랑하는 주방용품과 차렵이불, 발매트까지 찾아볼 수 있다. 가격 또한 저렴하다. 아기자기한 유리컵이나 접시가 5,000원 선 아래고, 펠릭스가 그려진 토스터는 무려 19,900원에 판매한다. 어디부터 구경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상품이 많고 값은 싸다 보니, 호기심에 이끌려 방문했다가 매장 안을 빙빙 도느라 한 시간쯤은 우습게 지나간다. 특별히 필요한 게 있는 건 아니었지만, 빈손으로 나오기 아쉽다는 이유로 몇 가지를 들었다 놨다 하던 중 깨달았다. 버터는 다이소를 두 단계쯤 업그레이드한 버전 같다는 사실 말이다.

이것은 최근 라이프스타일숍들 사이에서 두드러지는 경향이기도 하다. 디자인과 이미지, 품질은 좀 더 그럴듯하게, 가격은 최대한 저렴하게, 종류는 가져다 놓을 수 있는 한 다양하게. 요컨대 MUJI와 다이소 사이의 그 어디쯤에 포지셔닝하고 있는 것이다. 신세계에서 론칭한 JAJU는 대표적인 예다. 본래 이마트 내부에 샵 인 샵(shop in shop) 형태로 위치해 있던 이 브랜드는, 개별적인 매장으로 독립하며 이 같은 지향점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덕분에 이곳에서는 모던한 디자인의 작은 프라이팬과 세련된 자수가 놓인 삶아 쓰는 면 행주 두 장을 약 15,000원에 구매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미 국내에 입점한 H&M 홈과 니코앤드, 입점 예정인 이케아와 ZARA 홈 등 해외발 라이프스타일숍의 공습까지 더해지면서 선택지는 급격히 늘어나는 중이다. 우아한 꽃무늬 접시를 원하는 사람도, 동물이 그려진 깜찍한 조명을 사고 싶은 사람도, 베이직한 스타일의 화분을 찾는 사람도 조금만 시간을 투자하면 무리하지 않은 가격으로 만족할 만한 제품을 구하기가 한층 쉬워졌다.


구매를 고려할 만한 물건의 스펙트럼이 확장된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한 집에 머무르기보다 이 방 저 방을 옮겨 다니곤 하는 1인 가구, 즉 보통의 20~30대 자취생들에겐 더더욱 그렇다. 다만, 물건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이 시대에서도 나의 안목과 취향을 다듬고 구현하기란 여전히 요원한 일이다. 저가 라이프스타일숍의 제품들은 대부분 다이소의 그것보다 훨씬 그럴싸해 보이기 마련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감이나 조립 상태가 변변치 않은 경우도 많지만, 오래 사용할 이유도, 보관해둘 수 있는 여유 공간도 거의 없는 자취생에겐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언제든 가볍게 버리고 다시 구입하면 되기 때문이다. 저가 라이프스타일숍의 부담 없는 가격은 짧은 사용 기간에도 큰 미련을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만큼 더 쓸 만한 물건, 더 제대로 된 물건을 알아보는 안목 역시 기를 수 없게 만든다. 문제는 또 있다. 기껏해야 5평에서 8평 남짓의 원룸에서 구현할 수 있는 인테리어란 생각보다 다양하지 않다. 아무리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다 모아도 싱크대와 침대가 공존하는 방의 난잡함을 감추기엔 역부족이다. MUJI나 이케아 풍의 단정함으로 통일하는 게 아니라면, 공간의 한계 앞에서 내 취향은 부질없는 것이 된다. 세상은 넓어졌어도 나의 세계는 변함없이 좁은 셈이다.

그래서 평범한 자취생이 저가 라이프스타일숍을 전전할수록 맞닥뜨리게 되는 건, 나만의 방에 대한 환상보다 현실 자각이다. 트렌드를 따라 사들였던 물건은 곧 질리기도 하며, 낮은 퀄리티로 인해 얼마 지나지 않아 버리게 되기도 한다. 각 매장의 쾌적하고 세련돼 보이던 공간 디스플레이는 내 방에서 재현되기 어렵다. 정말 바뀌어야 하는 건 인테리어가 아니라 불안정한 주거환경, 나아가 그것을 당장 바꿀 수 없는 나의 한정적인 상황이다. 나만의 ‘라이프’를 갖는 것은 물론 거기서 나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일은 한층 더 희귀해진 지금, 저가 라이프스타일숍은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착각은 어느 순간 걷혀버릴 얇디얇은 막 같은 것이다. 한 달 전 구매했던 프라이팬의 코팅은 벌써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했다. 면 행주는 한두 번밖에 쓰지 않고 아무렇게나 접어서 싱크대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그럼에도 한동안은 적당한 품질과 적당한 가격 안에서 배회하게 될 것 같다. 이케아에서, ZARA 홈에서는 더 나은 라이프스타일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교정. 김영진




목록

SPECIAL

image Mnet 악행전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