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가까이>, 언저리 세대를 위한 성장소설

2014.11.07

사실 국문학도로서 한국 현대문학의 성장소설이라면 질릴 정도로 읽었다고 생각했다. 많은 소년과 소녀들이, 좀 넓게 보자면 청춘들이 어떤 시기를 지나며 아파서 흔들리다, 훌쩍 변해버린 자신을 느끼고, 인생과 사랑에 대해 깨달음을 얻곤 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성장이라면 은희경 <새의 선물> 속 진희가 열두 살에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것을 꼽을 수 있겠다.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는 서른이 훨씬 넘어서야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는 것을 깨닫는 주인공이 나온다. 이 또한 성장이라고 한다면 성장일 테다. 그러니까 ‘굳이 분류하자면 성장소설’인 소설이, 참 많았다. 때로는 이제 그만들 좀 성장하고 깨달으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정세랑의 <이만큼 가까이> 역시 성장소설이라고 해야겠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일반적인 범주 내에서 ‘성장’이라고 불리는 시기를 지나가고, 역시 일반적인 의미에서 보통 어른이라고 부르는 나이가 된다. 때로 그 의미가 변주되는 작품들에 비한다면 너무도 정직한 시간과 공간적 배경 속에서, 인물들은 나이를 먹는다. 그러니 성장소설이랄 수밖에. 하지만 그들이 성장했느냐고, 혹은 삶과 사랑의 의미를 깨달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끝내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게 별로 중요한 것 같지도 않다. ‘굳이 분류하자면 성장소설’이지만, 뭘 굳이 분류까지 해야 하나 싶어지는 그런 소설이랄까.

주인공과 그의 친구들의 “그냥 십대를 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세기말에 십대를 보내는 건 더 죽을 것 같은 경험”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 속에는 이렇다 할 서사도, 세기의 사랑이나 복수도, 역사적인 사건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작가의 나이와 비슷한 서른 초반 즈음의 주인공이, 그런 학창시절을 지나고, 또 한마디로 정의되지도 않는 이십 대 역시 지나와 도대체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가 하는 것이 거의 전부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이 소설을 질리도록 읽은 성장소설들과는 다른 칸의 책장에 넣고 싶은 이유가 된다. 그러니까, 이들처럼 ‘서울, 가까이’에서 살며 어떤 일로 인해 망가지고, 그걸 고치지 못한 채로 살아왔지만 그래도 그런 일들로 인해 내가 되었다는 것. 어쩌면 아주 개인적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보편적인, 이 세대의 지난 시절이 거기에 있다.

나는 이 책을 여행지에서 틈틈이 읽었다. 접어두어야 하는 순간이 와도 다음 장이 궁금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신 혼자 있을 때면 언제나 다시 펼쳐 들었다. 그러면 거기 친했지만 연락이 끊겨버린 동창 같은 인물들이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었다. 길에서 만났다면 인사를 해야 할지 말지 고민하다 어정쩡하게 스쳐 지나가겠지만, 때로 안부가 궁금하고 소식을 듣지 못해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로 위안하며 잘 살기를 바라게 되는, 그런 존재들이. 그러면 이상하게도 안심이 됐다. 단 한 번도 메인 무대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언저리의 세대, 겨우 자신의 망가진 삶을 견디며 살아왔고 또 살아갈 ‘우리’가 거기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이 세대의 성장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함께 망가지고 고장나고, 그러다 한 사람씩 사라질 것”이라는 당연한 예감마저 성장이라고 말해도 된다면 말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 “세계의 파주” 정도인 한국에도, 같은 세대의 언어로 우리 세대의 소설을 쓰는 이들이 있다. 이만큼 가까이 느껴지는 이 소설이, 그래서 더 반갑다.

윤이나
보험과 연금의 혜택을 호주 공장에서 일할 때만 받아본 비정규직 마감 노동자. 책도 읽고, 영화와 공연도 보고, 축구도 보고, 춤도 추고, 원고 청탁 전화도 받는다. 보통 노는 것같이 보이지만 쓰고 있거나 쓸 예정이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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