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후드>, 음악이 인생의 OST가 되는 순간들

2014.11.06

<보이후드>는 극장 문을 나오는 순간 곧장 OST를 사러 가고 싶어지는 부류의 영화다. 한 소년의 성장을 12년 동안 짬짬이 찍어 담은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그 배경인 21세기 초부터 2013년까지의 반짝이는 팝 넘버들을 모은 컴필레이션이자, 주인공 메이슨 주니어(엘라 콜트레인)의 ‘어썸 믹스 vol.1’이다.

1번 트랙은 콜드플레이의 ‘Yellow’다. 전주의 인상적인 기타 리프와 동시에 출발한 카메라는 학교 잔디밭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 어린 메이슨을 찾아내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노래를 멈추지 않은 채 제법 오래 비춘다. ‘Yellow’는 콜드플레이의 데뷔작인 2000년 앨범 < Parachutes >의 수록곡이니 영화의 시간적 배경과 대략 일치하고, 대낮에 하늘을 올려다보는 장면에 흐르는 “별들을 봐, 너를 위해 어떻게 빛나는지를 봐” 하는 가사 역시 관객들이 기대하는 메이슨의 미래, 앞으로 발견할 몽상가적인 면모와 겹친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영화의 도입부터 삽입곡을 비중 있게 사용하면서 러닝타임 내내 음악에 주의를 기울여보라며 노골적으로 윙크한다.

그러나 이 덤덤한 영화는 소년을 위해 사려 깊게 고른 노래로 가득하면서도 음악이야말로 고독한 소년의 진정한 친구이자 구원이었다는 식의 호들갑스런 태도를 취하지는 않는다. <비포 선셋>에서는 셀린(줄리 델피)이 제시(에단 호크)를 향해 노래하게 했던, 심지어 <스쿨 오브 락>이라는 본격 음악 영화를 만들기도 했던 링클레이터는 끝내 메이슨의 손에 기타를 쥐여주거나 듀얼 이어폰잭을 끼고 단짝 친구와 음악을 나눠 듣게 하지 않는다.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기승전결 없이 담백한 영화의 톤은, 음악이 소년의 삶에 존재하는 양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헤드폰을 끼고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거나 밴드를 만들어 차고의 소음 속에 갇히는 사춘기의 반항 이야기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하지만 유난스런 음악 팬이 아니라도, 누구나의 삶 속에는 그 시절의 배경 음악이 있다. 아버지의 카 오디오에서, 친구들이 연 파티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간 여행지의 펍에서 음악은 내내 흘러나와 삶의 장면들을 추억으로 만든다.


감독의 고향이기도 한 텍사스에 사는 10대의 삶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보이후드>는 그의 초기작인 <멍하고 혼돈스러운>(1993)을 떠올리게 하지만, 음악을 선곡하는 접근법은 전혀 달랐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70년대 틴에이저들이 주인공인 <멍하고 혼돈스러운>은 1960년생인 링클레이터 세대의 이야기이며, 사운드트랙에 역시 감독의 성장기 플레이리스트가 자연스럽게 반영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생인 메이슨을 위해서 감독은 자식뻘 세대의 음악 취향을 연구해야 했다. 인터뷰에서 링클레이터는 <보이후드>에 다수의 ‘음악 컨설턴트’가 존재했다고 언급했는데, 차트에서 여러 곡을 고른 다음 배우들과 나이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많은 이 모니터 팀에게서 노래와 얽힌 개인적인 사연을 수집했다고 한다. 그렇게 <멍하고 혼돈스러운>에서의 앨리스 쿠퍼, 딥 퍼플, 나자레스, 블랙 사바스, 키스는 <보이후드>의 피닉스, 뱀파이어 위켄드, 포스터 더 피플, 킹스 오브 리온, 더 블랙 키스에게 자리를 물려주면서 메이슨 세대의 감수성을 스케치한다. 오바마 선거 운동 같은 정황으로 시기를 짐작하게만 하는 이 영화 속에서 삽입곡들은, 남자아이들이 갖고 노는 콘솔 게임기의 기종 변화와 더불어 보이지 않는 연도 자막을 찍어준다. 2012년 초에 지구 상에 존재했다면 하루에 한 번 이상 듣지 않는 게 불가능했던 고티에의 ‘Somebody That I Used To Know’ 같은 노래처럼. 영화 초반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Oops!... I Did It Again’을 부르며 춤추던 누나 사만다(로렐라이 링클레이터)가 중반 이후 휴대폰으로 레이디 가가의 뮤직비디오를 찾아보는 장면은 댄스 디바의 세대교체만큼이나 훌쩍 커버린 소녀의 성장을 확인시킨다.

<보이후드>에서 특히 음악이 가장 또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장면을 꼽는다면 아버지 메이슨 시니어(에단 호크)가 차 안에서 자신이 편집한 믹스 CD를 아들의 15번째 생일 선물로 건네는 신일 것이다. 비틀즈 해체 이후 멤버 네 사람의 솔로 곡들을 고른 ‘블랙 앨범’을 만들어주며 아버지는 구성원이 내내 함께하지 못하는 자기 가족의 삶에 대한 은유를 담았을까? <비포 선라이즈>의 레코드가게에서 말없이 캐스 블룸의 ‘Come Here’를 듣던 에단 호크라는 소년은 주름진 얼굴의 아버지가 되어 수다스럽게 떠들고 있고, 그 위로 폴 매카트니 앤 윙즈의 ‘Band On The Run’이 흐른다. 세대의 특수성을 드러내는 데 몰두했던 영화의 선곡이, 세대와 세대를 이어 변함없는 클래식을 향해 품을 벼르는 순간이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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