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 야구라는 거대한 칼

2014.11.05

“결국 하나 걸리게 되어 있는 것 같음.” 만화가 최훈이 야구 사이트 <야구친구>에 연재하는 야구 만평에 쓴 플레이오프 1차전 관전평이다. 이날 넥센 히어로즈(이하 넥센)는 LG 트윈스(이하 LG)에 1:3으로 뒤지다 윤석민의 3점 홈런으로 역전, 6:3으로 이겼다. 넥센은 플레이오프 3, 4차전에서도 각각 두 개의 홈런으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홈런왕 박병호도, 유격수 사상 최다 홈런을 기록한 강정호도 매일 홈런을 칠 수는 없다. 하지만 넥센에는 윤석민처럼 홈런을 칠 수 있는 힘 있는 타자들이 계속 이어진다. 넥센이 ‘남자의 팀’으로 불리는 이유다. 언제 어느 때건, “걸리게” 되면 경기를 뒤집는다.

넥센만이 장타력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들이 한국시리즈에서 상대할 삼성 라이온즈(이하 삼성)의 장타율은 넥센에 이은 리그 2위고, 팀타율은 1위다. 다만 넥센의 시즌 장타율은 .509고, 삼성은 .473이다. 3위 NC 다이노스(이하 NC)는 .447, 8위 한화 이글스(이하 한화)는 .415로 1위와 2위 차이가 3위와 8위보다 크다. 게다가 넥센의 팀 홈런은 199개로 산술적으로 경기당 최소 하나 이상이 나온다. 다만 투수력의 차이가 더 크다. 넥센은 삼성보다 경기당 거의 1점 정도를 더 준다. 넥센에는 홈런왕, 40홈런 유격수, 200안타 달성자, 심지어 20승을 기록한 다승왕 투수까지 있다. 팬들은 그들을 <어벤져스>를 빗댄 ‘넥벤져스’로 부른다. 그러나, 삼성은 모든 것이 강하다.

삼성에는 부상 선수들의 재활에 있어 최고의 환경을 제공하는 STC(삼성 트레이닝 센터)가 있다. 2군 육성에 최적화된 지원과 운영 시스템도 있다. 몇 해 전까지 존폐 위기에 몰렸던 팀은 꿈꿀 수 없는 수준이다. 당연히 자원도 많지 않고, 키워낼 역량도 한정적이다. 그런데, 넥센은 없는 자원을 골고루 나눠 쓰지 않았다. 단지 박병호처럼 힘은 좋지만 가능성을 꽃피우지 못했던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모아서만은 아니다. 넥센의 이지풍 트레이너는 선수들의 근육량을 늘리도록 웨이트 트레이닝과 닭가슴살 등으로 이뤄진 식단을 권장한다. 타자들에게 파워를 최대한 높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김민성은 넥센에 온 이후 근육량을 훨씬 늘리면서 두 자릿수 홈런을 치는 타자가 됐다. 힘 있는 타자들을 모으다 보면 다른 재능의 선수들을 놓칠 수 있다. 지나친 근육량의 증가는 다른 능력을 저하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넥센은 모든 리스크를 짊어진 채, 팀의 역량을 한 점으로 모았다.

사진. 넥센 히어로즈

염경엽 감독은 넥센의 야구를 완성시켰다. 그는 다양한 작전으로 팀에 세밀함을 더했고, 동시에 갈수록 모든 야수들을 활용하는 폭넓은 라인업을 선보였다. 심지어 강정호도 올해 경미한 부상을 입자 몇 경기 동안 출전시키지 않았다. 구단은 선수들에게 힘을 기르도록 유도하고, 감독은 그들의 수비력을 높이면서 그들 모두를 출전시켰다. 대신 밴헤켄과 헨리 소사처럼 잘 고르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외국인 선수들로 투수력을 끌어올렸다. 물론 투수까지 좋은 선수들이 가득했다면 최선이었겠지만, 넥센에 그런 운이나 여력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투수력이 들쑥날쑥해도 “걸리게” 될 확률은 그 어느 팀보다 높아졌다.

그래도 넥센이 삼성을 이기기는 어렵다. 삼성의 운영은 사실상 넥센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류중일 감독은 수비력을 높이는 데 탁월한 것으로 유명하다. 삼성의 수비력은 현재 리그 최고다. 또한 류중일 감독도 장타력을 중시한다. 올해 2루타 수 2위를 기록한 채태인을 빛 못 보던 시절부터 꾸준히 중용했다. 지난해 이승엽이 깊은 부진에 빠졌을 때도 그를 믿었다. 삼성이 모든 면에서 강하기에 이 부분이 덜 부각된 것뿐이다. 류중일 감독은 팀의 자원을 분석하고 가장 적합한 야구를 하도록 이끄는 명장이고, 삼성은 그런 야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시스템과 운영자의 능력이 이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이 팀을 이기기란 어렵다. 100경기 이상을 치르는 리그라면 더욱 그렇다. 다만 한국시리즈는 7전 4승제의 단기전이다. “걸리게” 된다면, 1번부터 9번까지 한 방 터질 수 있는 가능성을 극단적으로 높여서 한 번에 다득점을 내면, 이길 수도 있다. 넥센은 그들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시켜서, 통념에 반하는 결과에 도전하고 있다. 압도적으로 큰 칼 한 자루로 칼과 방패 모두를 부숴버리려는 시도. 이 ‘남자의 팀’이 피를 끓게 하는 매력이다.

장점 하나로 모든 단점을 덮어버리려는 팀. 마치 소년 만화의 주인공처럼, 넥센은 부족하고 불안 요소도 많은 대신 예상치 못한 순간의 필살기로 승리를 거둔다. 게다가 넥센은 이번 시즌 뒤 강정호의 해외 진출이 확실시되고 있다. 아무리 장타력에 역량을 집중한다 해도, 40홈런을 치는 유격수는 하늘에서 떨어져야 가능한 것이다. 또한 SK 와이번스 시절 두 자릿수 홈런을 치는 선수들이 10명을 넘을 때도 있었던 김성근 감독이 한화 이글스로 부임했다. 두산 베어스 시절부터 장타력의 가치를 알던 NC의 김경문 감독도 있다. 넥센의 공격력은 당분간 올해 절정이고, 장타력 있는 선수를 모으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대신 넥센은 2군 육성을 위해 화성시와 협약을 맺고 2군 구단 화성 히어로즈를 출범시켰고,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로부터 운영 기법을 배우는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팀을 운영할 자금이 없어 선수를 팔다시피 해 팬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던 팀이 장점을 극대화시킨 야구로 성적을 높였고, 조금씩 지속 가능한 팀으로 변해가고 있다. 앞으로 넥센은 지금과 또 다른 팀으로 변해갈 것이다. 그리고, 단 한 번뿐일지도 모를 가을의 끝자락에 왔다. 지금 넥센의 야구로는 마지막일, 그 야구의 마지막 순간에.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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