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줘>가 이야기하는 것

2014.11.05

* 이 글에는 <나를 찾아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를 찾아줘>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벌이는 싸움에 관한 영화다. 아내는 아리송한 몇 가지 힌트만을 남긴 채 갑자기 사라져버렸고, 남편은 아내의 행방을 추측조차 하지 못한다. 미디어는 출처도 사실관계도 불분명한 몇 가지 정보를 조합해 남편을 범인으로 몰아가며, 거기에 동조한 세상은 그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아내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의 진실이 드러나기 전까지 남편 닉(벤 애플렉)을 의심하게 되는 건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 역시 마찬가지다. 데이빗 핀처 감독은 아내를 찾는 과정에 동참하지만 어쩐지 심드렁해 보이는 남편을 덤덤하게 비추는 한편으로, 에이미의 내레이션을 빌려 둘의 첫 만남부터 권태기까지를 드라마틱하게 그린다. 게임은 여기서 이미 끝났다. 부부의 이야기에서, 그리고 스크린에서 승자이자 주인공은 명백히 에이미다. 대중과 관객의 마음을 빼앗아 이야기를 장악해야 하는 이 싸움에서 남편 닉은, 처참하게 패배했다.

사실 작품 속 미디어와 대중도, 작품 바깥의 관객도 그들 사이에 실제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백 퍼센트 정확하게 파악한 목격자는 아니다. 확실한 팩트라고 할 만한 부분은 두 사람 모두 실직했다는 것, 부부 사이가 차츰 멀어졌다는 것, 닉이 바람을 피웠다는 것 정도다. 나머지는 에이미가 설계하거나 전달한 ‘이야기’다. 그는 부부의 역사를 서술하며 종내에는 닉을 게으르고 폭력적인 남편으로, 자신을 버림받은 불쌍한 아내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기막힌 드라마를 일기장에서 미디어로, 다시 세상으로 증폭시킨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써내려가는 여성이다. 부모가 에이미를 모델 삼아 쓴 <어메이징 에이미>는 이러한 욕망의 씨앗에 대한 결정적인 힌트다. 에이미는 늘 책 속 주인공보다 뒷전이어야 했고, 그가 존재 가치를 입증하는 방법은 “쿨 걸”이 되어 남성을 매혹한 후 자신의 방식대로 바꾸는 길뿐이었다. 때문에 ‘변해버린 닉이 내 존재를 지워버렸다’는 에이미의 주장은 납득할 만한 것이다. 꿈에 그리던 남자에게 사랑받음으로써 존재를 확인받았던 여자에겐 그의 현재가 곧 본인의 현재일 수밖에 없다.


에이미가 자살하려던 계획을 수정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자신이 집필한 이야기로 이미 세상의 주인공이 된 그녀에겐 퇴장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남은 건 계속해서 의도대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뿐이다. 에이미는 이야기로 대중의 주목을 받았고 마음을 얻어냈으며 결국 진짜 ‘어메이징 에이미’로 다시 태어났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나를 찾아줘>에서 이야기의 직조에 영향을 끼치는 인물들은 모두 여성이다. 이웃에 살던 주부는 에이미의 임신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알렸고, 에이미와 닉의 이야기를 포장하고 확산시킨 것은 뉴스의 여성 진행자였으며, 에이미의 이야기를 중도에 어그러뜨린 것은 그녀의 돈을 털어간 여성이었다. 닉에게 변호사를 붙여준 쌍둥이 동생 마고(캐리 쿤), 닉과의 관계를 공개적으로 밝힌 앤디(에밀리 라타코스키) 또한 이야기의 흐름을 흔들어놓은 여성들이다. 여성이 만들고 퍼뜨리고 변화시키는 이야기 앞에서 남성은 무력하다. 그들은 경찰 길핀(패트릭 후짓)처럼 만들어진 이야기를 무비판적으로 믿거나, 살해당한 데시(닐 패트릭 해리스)처럼 이야기의 도구로만 기능한다. 여성의 욕망을 읽어내지 못한 탓이다. 닉이 보조 화자로나마 구제받을 수 있었던 건, 토크쇼에서 에이미의 욕망을 정확히 겨냥한 덕분이었다.

만약 애초에 에이미가 복수심을 품지 않았더라면 영화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그는 하버드대학을 나왔음에도, 닉과 비슷하게 글 쓰는 일을 했었음에도,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재산을 가졌음에도 단지 여성이라는 한계 때문에 영원히 닉 던의 아내 에이미 던으로만 살아가야 했을지 모른다. 물론 그가 벌인 일련의 사건들이 정당했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이것은 극단적으로 한 여성이 가정과 세상에서 자신의 이름, 나아가 자리를 온전히 확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데이빗 핀처는 에이미를 비난하거나 불쌍하게 여길 마음조차 없는 것처럼 보인다. 길리언 플린이 쓴 원작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닉은 에이미에게 “당신이 너무 불쌍해. 당신은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당신이 되어야 하니까”라고 말한다. 반면 영화는 에이미의 머릿속을 궁금해하는 닉의 시점에서 끝이 난다. 결혼도, 삶도, 이야기도 계속되니까. 끔찍하든 행복하든, 앞으로도 그들의 이야기는 에이미의 손끝에 달려 있으니까. 소설에서 영화로, 다시 리얼리티 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시대. <나를 찾아줘>는 여성이 주인공을 차지하는 이야기로 시대의 주인공 역시 여성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올해의 가장 급진적인 여성 영화가 등장했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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