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② 장면별로 보는 <미생>의 원작 vs 드라마 캐릭터

2014.11.04

“원작이 가지고 있는 걸 지키되 (원작의) 디테일에 구애받지 않으려고 했다.” tvN <미생>의 김원석 감독이 <미생> 제작발표회에서 한 말은 작품의 인기를 설명하는 핵심 요인이다. 원작에서보다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장그래(임시완)부터 낙하산 장그래를 쉽게 인정하지 않고 사회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곳임을 보여주는 오상식 과장(이성민)까지. <미생>에서 재해석된 캐릭터들은 험난한 현실 속에서 인물들이 성장하는 이야기라는, 드라마 <미생>만의 미덕을 보여주고 있다. 원작을 리메이크할 때, 뚜렷한 방향의 재해석이 새 작품의 가치와 질을 결정할 수 있음을 보여준 <미생>의 캐릭터 변화를 원작과 비교해 장면별로 분석했다.


숨은 고수 장그래 vs 생초짜 장그래
입단에 실패한 기원 연구생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원작의 장그래는 드라마 속 장그래와 달리 숨은 고수에 가깝다. 인턴 생활 초반, 업무의 기본을 익힌 장그래는 바둑을 통해 배운 지혜로 상사인 박 대리를 변화시킨다. 김석호의 인턴 주간 보고서를 챙겨주고 인턴들 무리에서 ‘우리들’이라고 하며 소속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할 일을 찾지 못해 사무실에서 멍하게 있고 고졸 검정고시 출신이라는 이유로 왕따를 당한 드라마 속 장그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원작에 없는 젓갈 공장 에피소드가 추가된 것처럼, 달라진 장그래의 위상은 자연스레 그의 성장 서사가 강조되는 효과를 낳는다. 화분을 정리하며 눈치를 보던 장그래가 무역 용어를 익히고 자신의 능력을 키워나가는 모습은 아주 조금씩 완생으로 나아가는 보통 직장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단순히 능력치 제로의 주인공이 달라졌다는 반전 효과만이 아니라, 드라마의 의도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변화라 할 수 있다.


친절한 오 과장 vs 호락호락하지 않은 오 과장
“그러니까… 왜 또 너냐고!” 인턴 시험에 합격한 장그래가 또 영업 3팀에 배정되자 오상식 과장은 불평했다. 이는 같은 상황에서 장그래를 환영해준 원작에서의 오 과장과 드라마 속 오 과장은 빨간 눈만 빼고는 크게 다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초반부터 장그래의 통찰력을 인정하고 심지어 존댓말까지 했던 게 원작 속 오 과장이라면, 드라마 속 오 과장은 장그래가 낙하산인 것을 알고 피땀 흘려 인턴이 된 다른 사람들보다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장그래의 기를 죽인다. 마지못해 돕는다는 듯 장그래를 신경 써주지만, 100개가 넘는 자기소개서를 써도 대기업 인턴조차 되기 힘든 드라마 바깥의 현실로 장그래를 던진 셈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의 성장 서사가 영웅적으로 흘러가는 대신, 현실성을 얻고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은 그래서다. 부하 직원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은 평범한 과장의 피로한 얼굴과 함께, 오 과장이 드라마에서 현실성을 보장하고 있는 부분이다. 참고로, 원작에서 오 과장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충혈된 눈은 드라마에서 오 과장이 안약을 넣어 없애며 사라진다.


당근과 채찍을 모두 주는 김 대리 vs 강하게 키우는 김 대리
처음 만난 장그래에게 “열심히 하면 학력 콤플렉스를 지울 수 있다”며 그를 응원하다가도 혼낼 때는 무섭게 돌변하던 원작의 김동식 대리보다, 드라마 속 김 대리(김대명)는 냉정하다. 그가 옥상에서 처음 장그래의 학력, 스펙을 물어보며 “아니, 26년 동안 뭘 했대”라고 혼잣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장그래가 짐이라는 것이 전해진다. 하지만 조언을 해줄 때조차 “장그래 씨가 언제까지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폭탄이니까”라는 식으로 거리를 두고 감정적인 배려를 생략하는 김 대리는 장그래가 직접 깨지며 배우도록 만들었다. 오 과장이 대놓고 장그래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려 하는 상황에서 김 대리의 태도는 장그래가 더 큰 미움을 사지 않도록 했고 장그래가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회사에 녹아들 수 있게 했다. 장그래의 잘못으로 팀이 전무에게 지적을 받았을 때, 적당히 봐주지 않고 장그래가 실수에 대한 책임을 다하도록 옥상에서 혼자 기합을 받게 한 것이 오히려 장그래에게는 현실적인 배려가 된 이유다.


회사 생활의 가이드 안영이 vs 독립적인 능력자 안영이
장그래에게 먼저 자신의 업무를 챙기라며 조언해준다. 짙은 화장을 하고 바이어를 설득한다. 원작과 드라마 속 안영이의 첫 등장은 각각의 캐릭터 차이를 드러낸다. 원작에서 안영이는 인턴 스터디를 하는 등 다른 인턴들과 관계를 맺으며 장그래에게 모범적인 처세를 알려주고 한석율의 특징 등에 대해 넌지시 충고했다. 하지만 드라마 속 안영이(강소라)는 장그래 외의 다른 인턴들처럼 정치적으로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능력을 적절히 활용하며 독립적으로 일을 처리하기 위해 집중할 뿐이다. 속옷에 착용하는 뽕의 장점을 바이어에게 설명하기 위해 타이트한 의상을 직접 입거나, 무거운 천도 충분히 들 수 있으니 장백기(강하늘)의 도움을 거절한 것처럼 말이다. 더불어 업무에 서투른 장그래에게도 실수한 부분이 있다면 깔끔하게 사과를 하기도 한다. 덕분에 남녀 주인공인 장그래와 안영이가 업무와 상관없는 우연으로 얽히기보다, PT 파트너 선정 때문에 생긴 오해를 푸는 동시에 동료로서 각자 성장해가는 전개가 가능했다.


속이 보이는 장백기 vs 속을 알 수 없는 장백기
분량부터 존재감까지, 장백기는 원작과 가장 차이가 큰 인물이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외모만이 아니다. 원작에서처럼 “스펙, 친화력, 이 모든 게 무난한 장백기”가 아닌, 초반부터 상사에게 “PT 마스터”, “제법”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기본이다. 드라마 속 장백기는 원작에서보다 훨씬 전략적이며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장그래를 인턴 스터디로 초대할 때, 실력이 없는 장그래가 필요하다고 솔직히 말하는 원작의 장백기와 달리 드라마 속 장백기는 장그래가 고졸 검정고시 출신임을 다른 인턴들이 자연스럽게 알게 한다. 장그래를 도와주는 듯하다가도 정작 전략은 공유하지 않는 장백기는 모두에게 주목받는 안영이에게 끊임없이 접근해 정보를 얻고 적은 만들지 않는 등 지능적인 경쟁을 하는 데에 익숙하다. 그래서 장그래의 불행에 통쾌해하고 은근히 그를 견제하는 장백기의 눈빛은 살벌하기도 하다. 상대를 이기는 것만큼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을 잘해야 한다는 것에 밝은 현실적인 인물이면서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는 셈이다.


장그래를 도와주는 한석율 vs 장그래와 부딪치는 한석율
‘성취동기가 분명한 사람’, ‘토네이도처럼 주변을 힘들게 하는 사람.’ 한석율에 대한 묘사는 원작과 드라마에 모두 적용된다.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듯하지만 결국 자신의 의도대로 대화를 끌고 가는 한석율만의 개성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한석율(변요한)은 현장의 중요성을 두고 장그래와 좀 더 강하게 부딪친다. 공동 PT를 준비하며 부드럽게 장그래를 이끌어주는 원작과 달리, 드라마 속 한석율은 답답하다는 듯 자신의 아이디어만을 뽐낸다. 장그래의 반응이 한석율의 아이디어에 감탄하고 서로의 팀워크를 다지는 모습에서, 분하지만 한석율의 능력을 인정하려는 모습으로 바뀐 이유이기도 하다. 덕분에 장그래는 개별 PT에서 자기주장이 강한 한석율을 자신의 통찰력으로 설득하며 스스로 성장해간다. 최종 합격한 한석율이 장그래에게 만만치 않은 경쟁자이면서 좋은 자극이 될 수 있는 동료로 자리 잡은 셈이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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