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가 잠실의 주인이 된 날

2014.11.04

잠실은 문자 그대로 고향이다. 지금은 다른 곳에서 살지만, 20년 넘게 그 곳에서 살았다. 그 세월의 기억 속에서 롯데는 잠실의 일부 같은 것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친구들끼리만 간 수영장은 잠실 롯데 실내 수영장이었고, 물놀이를 끝내고 먹었던 롯데리아 버거는 참 괜찮았다. 잘 되지는 않았지만 좋아했던 사람과 첫 데이트를 한 곳은 롯데 아이스링크였고, 처음으로 간 백화점이자 첫 정장을 산 곳도 잠실 롯데백화점이었다.

그래서 제2롯데월드가 생긴다고 했을 때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예전부터 잠실과 롯데는 떼놓을 수 없는 관계였으니까. 하지만 제2 롯데월드 개장과 함께 석촌호수에 전시한 러버덕을 보러 간 날, 잠실은 기억과는 무척 다른 곳이 되어 있었다. 제2롯데월드의 개장과 함께 교통량은 엄청나게 늘어났고, 석촌호수에는 러버덕을 보러 하루 5만여 명의 인파가 모였다. 잠실 주민들이 산책을 하던 석촌호수는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흙바람이 날렸고, 종종 술을 먹곤 했던 잠실 포차의 자리에는 제2롯데월드가 서 있었다. 롯데백화점, 롯데월드, 롯데호텔, 샤롯데씨어터, 롯데캐슬, 그리고 제2롯데월드. 이제 장미 아파트를 제외하면 잠실 사거리의 세 블록은 모두 롯데의 브랜드로 통일 됐고, 그 곳을 들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몰려온다. 잠실은, 이제 롯데의 거대한 테마파크가 됐다.

롯데몰에는 패션브랜드부터 길거리음식을 파는 음식점, 에스테틱, 쿠킹 스튜디오 등 다양한 가게들과 하이마트, 서점까지 있다. 또한, 거대한 극장과 아쿠아리움, 콘서트홀 등 과거 롯데백화점과 롯데월드가 수용하지 못 했던 엔터테인먼트 시설도 있다. 명품관이 자리 잡은 에비뉴엘과 롯데몰이 카페 스트리트, 홍그라운드, 29스트리트, 서울3080등 스트리트의 개념으로 장소 이름을 만든 것은 단지 콘셉트같지 않다. 잠실 주민은 롯데를 벗어난 선택을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잠실 주민이 롯데 이외의 지역에서 쇼핑을 하거나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려면 신천이나 공사 중인 삼성 코엑스몰로 가야 한다. 롯데 안에서 무엇이든 가능하지만, 바깥으로 나가기는 어렵다.


지역 하나가 사실상 한 기업의 도시가 됐다. 생활은 편해질지 모른다. 과거의 추억 같은 것은 개인적인 것이라 무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얼마 전 제2롯데월드 바닥에는 균열이 일어났다. 제2롯데월드 공사 중에는 씽크홀 현상이 있었고, 석촌호수에서는 물 빠짐 현상이 있었다. 얼마 전에는 또 다른 안전사고도 있었다. 그래도 잠실 주민들은 롯데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한 기업에게 한 지역의 삶이 맡겨진다는 것은 이런 의미다. 분명히 내가 선택해서 온 지역이지만, 정작 나의 삶 중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 안전마저도.

잠실은 광역버스가 마지막으로 정차하는 지역이고, 송파에서 강남으로 나가는 길목이다. 바로 옆에는 잠실경기장이 있어 콘서트 및 야구 경기가 열린다. 이런 교통의 요충지인 까닭에 롯데의 잠실지역 매출은 제2롯데월드가 들어서기 전에도 연 2조 4000억 가량이었다. 롯데의 신격호 회장이 1987년부터 제2롯데월드를 꿈꾼 이유였을 것이다. 그는 제2롯데월드가 들어서기까지 꾸준히 여러 건물과 시설을 잠실에 만들도록 했고, 드디어 제2롯데월드가 들어섰다. 대안을 만들기에는 잠실에서 롯데의 존재감은 너무나 커졌고, 한 개인이 무엇인가를 호소한다 해도 그 거대함 앞에서는 지극히 작고 무력할 뿐이다. 그렇게 어떤 시대가 시작됐다. 기업이 만든 한 없이 거대한 스펙터클 앞에서, 개인은 그저 살아가기만 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심지어 그것이 공포로 느껴질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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