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 이제는 없는 MBC 시사교양국을 위하여

2014.11.03
< PD수첩 >에서 파헤친 줄기세포 조작 사건은 영화 <제보자>가 되었지만, MBC 교양제작국은 지난 10월 폐지되었다.

국장: 진실과 국익 중 뭐가 더 중요하냐고? 진실이 바로 국익이다.
팀장: 경영진 의견은 무시해도 돼. 반대해도, 해야 하면 하면 되는 거야.
- 영화 <제보자> 중


2005년, MBC 시사교양국 < PD수첩 > 팀에서는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사건을 파헤쳤다. 거센 반대와 비난 여론에 부딪혔던 이들은 외압에 맞서 진실을 밝혀냈고,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제보자>에서 그들은 NBS 시사제작국 < PD추적 > 팀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PD와 팀장과 국장이 치열하게 논쟁하면서도 서로를 신뢰하고, 경영진이 아닌 PD 회의에서 취재 진행 여부를 결정하던 그 조직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10월 24일 MBC가 발표한 조직 개편안에 따라 교양제작국은 폐지되었다. 구성원들은 예능 1국의 제작 4부, 외주제작물을 관리하는 콘텐츠제작국으로 분산된다. 시사교양국이 현재 < PD수첩 >이 속한 시사제작국과 교양제작국으로 분리된 것은 이미 2012년 파업 중에 벌어진 일이다. 눈 녹듯 사라지는 시사교양국의 마지막에 대해 한 PD는 말했다. “누군가 죽었다고 개념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관 뚜껑을 열어 죽은 얼굴을 보는 건 다른데, 지금은 후자의 순간 같다.”

MBC 시사교양국의 죽음은 언제 시작된 것일까. 김대중 정부와 참여 정부를 거친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시사교양국은 겁 없고 저돌적이며 정치적 금기 또한 없는 조직이었다. < MBC 스페셜 > 연속기획 10부작 ‘미국’처럼 굵직한 주제의 다큐멘터리와 7년에 걸쳐 100회로 제작된 현대사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공존했으며 해외 시사 프로그램 < W >도 만들어졌다. <제보자>의 배경이 된 시기에 대해 한 PD는 회상했다. “당시는 PD가 개인적인 양심에 따라 제작하면 그대로 방송되는 게 당연한 분위기였다. 그 사람의 시각과 개성을 조직이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대신 시청자들이 직접 판단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2005년 < PD수첩 > 15주년 특집 방송에서 최승호 팀장(현 <뉴스타파> 프로듀서) 역시 “능력이 모자라서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 적은 많았지만, 압력 때문에 피해 간 적은 없었습니다”라는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듬해 < PD수첩 > ‘론스타와 참여정부의 동상이몽-한·미 FTA’ 편이 방송되자 정부는 일간지 전면광고로 방송 내용을 반박한 뒤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PD와의 대화’를 통해 토론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지만 무산되었다. 그러나 힘보다 ‘말’로 하려는 정권은 거기까지였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에도 < PD수첩 >은 직진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은 일각에서 이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을 불러왔다는 평가를 받으며 정권과의 골이 깊어지는 계기가 됐다.


결정타는 2010년 김재철 사장의 취임이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본부장(노조위원장)이었던 이근행 PD는 낙하산 사장에 반대하는 파업을 이끈 후 해고(2013년 특채 형식으로 복귀)당했다. 섬세하고 순한 성품으로 ‘아줌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그는 책임감 강하고 거절을 못 하는 성격 때문에 투사가 되어 극한 상황에 내몰렸지만, 이것은 보복성 징계의 시작일 뿐이었다. 2011년 2월 간부 인사에서는 김 사장과 같은 대학교 출신 윤길용 국장(현 울산 MBC 사장)이 시사교양국의 수장으로 임명된 것을 비롯해 내부 평가가 좋지 않았던 인물들이 주요 보직을 장악했다. 2012년 최승호 PD와 함께 해고당한 박성제 기자는 김재철 사장의 인사에 대해 “지금까지 인정을 못 받고 있던 인물들을 요직에 배치하는 것은 간부들이 알아서 충성하게 만드는 데는 최고의 방법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같이 술 잘 마시던 ‘좋은 형’들은 자리에 오르자 ‘나쁜 간부’가 됐다. 그리고 < PD수첩 >에는 아이템 금지 리스트가 늘어났다.

“계속 까이는 아이템들이 있었다. 정권, 재벌, 노동, 남북문제, 4대강, 소외 계층 같은 키워드는 죽어도 안 되는 거였다. 대신 종교, 사건사고, 사기업 비리 등 시스템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것만 권장됐다.” PD들은 안 될 걸 알면서도 아이템을 제출하고 때로는 목소리를 높여 싸웠지만 수많은 아이템이 ‘뻔하다’와 ‘칙칙하다’는 이유로 통과되지 않았다. 당시 가장 뜨거운 이슈였던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의 투쟁을 다루려던 PD는 “아줌마 하나 크레인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거 아무도 신경 안 쓴다”는 말을 들었다. 항의하거나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인 PD는 제작과 상관없는 부서로 인사이동 당했고, 남은 PD들 역시 취재를 강행하려다가 함께 징계받을지 모르는 동료를 생각해 아이템을 포기하기도 했다. < MBC 스페셜 > ‘여의도 1번지 사모님들’ 편이 방송을 일주일 앞두고 편성 취소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그리고 MBC가 ‘마봉춘’에서 ‘엠빙신’으로 불리게 된 지도 한참이 지난 2012년 1월부터 7월까지, 170일 동안의 총파업이 진행되었다.

사진. 파업채널M

긴 파업 이후, 긴 보복이 이어졌다. 그러나 징계와 인사 조치보다 뼈아픈 것은 사측의 대체 인력 투입이었다. “전에는 탄압으로 힘들어도 사무실에 오면 같이 웃을 수 있었는데,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생겼다는 게 괴로웠다. 게다가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들어와 내 일을 대신 할 것 같은 불안감은 굉장한 트라우마로 남았다.” 정직당한 PD들은 ‘신천 교육대’라 불린 잠실의 MBC 아카데미에서 샌드위치 만들기와 요가 등을 배워야 했고, 신사옥 건설 현장이나 용인 드라마 세트장에서 안내역을 배정받기도 했다. 또한 김현종 시사제작국장(현 MBC 경인지사장)은 파업을 지지했던 < PD수첩 > 작가 전원마저 해고하며 작가는 프리랜서이므로 ‘교체’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노동 강도가 높기로 이름난 프로그램을 애정과 사명감으로 지키고 있던 이들이었다.

2013년 김재철 사장이 해임되고, 김종국 사장을 거쳐 2014년 안광한 사장이 취임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5년간 다섯 번의 파업을 거치며 노조 역시 큰 타격을 입었고, 검열에 대한 스트레스와 무력감이 구성원들을 짓눌렀다. 조직에 대한 자부심, 힘들어도 함께 에너지를 쏟아 프로그램을 완성하는 성취감을 느낄 수 없게 되면서 제작에 대한 동력도 떨어져 갔다. 한 PD는 “전에는 프로그램이 나고, 내가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을 위해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언제든 어디든 뛰어들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가치가 흔들리는 시간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열정을 잃었다”고 말했다. 시청자가 눈치채지 못하더라도 작은 자막 하나를 수십 번 바꿔보고 CG실을 찾아가 특별히 신경 써달라고 부탁했던, 옆 팀이 몸을 던져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보며 각 팀이 파이팅하던 자발적 에너지들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또 다른 PD는 “오로지 생계를 위해서만 일하는 것 같다. PD가 아니라, 시키는 일 하고 월급만 받아 가는 사람이 된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2011년을 마지막으로 교양제작국에 신입사원은 들어오지 않았다. 내부에서는 ‘불임 조직’이라며 자조했다. 그리고 결국 지난 10월, ‘MBC 시사교양국’은 해체되어 사라졌다. 이것은 MBC에도, 대한민국 사회에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해온 이 조직에 내려진 최종 사망선고이자 완벽한 단절일까.

10월 27일, 상암동 MBC 신사옥 로비는 서로의 안부와 앞으로의 거취를 묻는 이들로 어수선했다. 한 PD에게 조직을 잃고 흩어지는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당장 다음 주에 자신이 어디에 있게 될지도 아직 모르는 그가 말했다. “신형철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 ‘삶에 희망이 있다는 말은,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것이란 뜻이 아니라 우리의 지난 시간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우리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련의 일들이 헛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옛날처럼 돌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좋아하고 지키고 싶었던 가치는 DNA처럼 남아 있다. 원래 있던 사람은 죽었지만 새로 태어날 사람이 그 유전자를 이어받아 어떻게 성장할지는 아직 알 수 없는 거다. 우리가 그동안 느낀 것, 힘들었던 시간, 많은 사건들은 언젠가 고스란히 자산이 되어 프로그램에 반영될 거라 믿는다. 나에겐 그런 희망이 있다.”

10월 31일, MBC는 이근행 PD를 비롯해 <제보자> 윤민철 PD(박해일)의 모델이 된 한학수 PD, 전 < PD수첩 > 팀장 김환균 PD, < PD수첩 > ‘광우병’ 편을 제작했던 조능희 PD, MBC 노동조합 간사 김재영 PD를 비제작부서로 발령 냈다. < PD수첩 > 출신 이우환 PD와 이춘근 PD 역시 제작에 참여하지 않는 교육발령의 대상이 되었다.


참고 도서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 박성제 (푸른숲)
<응답하라! PD수첩> PD수첩 제작진 (휴먼큐브)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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