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대중이 원하는 것을 그리는 게 치사하다고?

2014.10.30
개인적으로 지브리의 작품을 볼 때마다, 일반성과 특별함이 공존하는 좋은 예라는 느낌이 든다.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가 모두가 원하는 이야기인 경지. 그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 <귀를 기울이면>의 한 장면.

웹툰작가 지망생들끼리 술을 먹을 때엔 천하제일 무도회처럼 다양한 결투가 벌어진다. 물론 선의의 결투다. 서로의 만화관과 작가관이 만들어내는 대립각 위에서 펼쳐지는 논쟁들. 너무나 생산적이면서도 애틋해서 내가 많이 좋아했던 대화들, 그 중에서도 아마도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결투는 ‘대중성과 작품성’의 대결이 아닐까 싶다. 이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결투주제다. 그만큼 창작인이라면 한 번씩 거쳐 가는 고민이다. 사실 대중성과 작품성이라는 단어 자체는 지뢰밭과 같아서 상당히 섬세한 개념이다. 어휘 한 발자국 잘못 디뎠다가는 바로 지뢰가 터지면서 논쟁의 불길이 타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 이 두 가지는 작가 내면에서 갈등과 고민을 일으키는 지점이지만 나는 이 두 가지 사이에서 화해의 지점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사실, 많은 경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는 주장은 단지 자신이 그리는 것을 독자가 이해하지 못할 때, 혹은 자신의 만화가 인기가 없을 때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해서 자주 사용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작가가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뿐이다. 혹은 스스로도 자신이 뭘 이야기하고 싶은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자주 그래서 잘 알고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제 두 가지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

작가에게 있어서 ‘대중의 공감’만이 최종 목표일 때의 한계는 그 허망함에 있다. 독자들이 다함께 울고 웃고 난 뒤에는 후련함이 찾아오지만, 그 후 아무 것에도 다다르지 못한다. 작가와 작품의 기억 모두 다른 작품들과 함께 시간이 흐르며 증발해버리게 된다. 물론 그것도 좋다. 작가 본인이 그것을 원했다면. 반대로 고독한 고고함에도 한계가 있다. 독자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공허한 외침을 반복하다보면 지치게 된다. 물론 극소수의 누군가가 열렬한 지지를 보내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외의 어느 것에도 다다르지 못한다. 물론 그것도 훌륭하다. 작가 본인의 목표가 그것이었다면. 나는 이 두 가지 모두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 오래 고민하고 지금도 고민하고 있는데 잠정적인 현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작가라면 입장이 있어야 한다. 작가는 그 입장을 내어 놓을 뿐이고 그에 대해 누군가는 찬성 혹은 공감을 하지만 누군가는 반대를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고민을 한다. 그런 지점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작가라고 생각한다. 나의 편협하고 좁은 작가관일 뿐이지만 이 생각은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만화를 그리면서 자신이 그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작가로서의 입장이 생긴다면 그것을 전달하기 위한 경로, 혹은 소재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 경로나 소재를 독자나 대중이 원하는 방향으로 잡는 것은 대중작가에게는 직업적인 친절함이자 최소한의 배려다. 그 끝에서 건네게 되는 입장이 작가 자신만의 것이기 때문에 과정이 조금 식상하거나 혹은 독특하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노련한 이야기꾼들은 남들이 원하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내가 원하는 이야기로 이끌어 간다.

물론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는 싶지만, 아직 명확한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 고해상도로 그 고민점들을 독자 앞에 펼쳐내면 된다고 본다. 고민의 디테일과 절실함이 묻어 있다면 재미와 설득력과 대중적인 매력 또한 발생한다. 누군가의 진지하고 절실한 고민은 대부분 우리 모두가 한 번씩 했거나 할 고민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야기꾼이라면 감정과 정서만을 불러일으키는 것만이 목적이라고 보는 작가들도 많다. 나는 그들의 작가관도 존중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서, 감정, 기분은 곧, 작가의 입장을 전달하거나 독자로 하여금 입장을 정리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는 것이 내 입장이다. 작가 자신이 원하는 것과 독자들이 원하는 것 사이에는 꽤 큰 간극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입장’이라는 개념을 통해 대중성과 작품성이라는 식상하기 그지없는 논쟁보다 한 층위 위로 고민을 끌어 올릴 수 있다고 믿는다.

약간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사실 고전을 만들어내는 거장들은 ‘내가 원하는 것이 남들이 원하는 것과 같다’는 경지에 이르는 것 같다. 자신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독자들이 모두 그 이야기 안에서 자신에게 중요한 것들을 채집한다. 아마도 작가가 누구보다 오래 집요하게 고민했기 때문일까. 결국 인간에게 중요한 것들은 모두 얼추 비슷하니까. 그래서 대부분의 거장들은 타인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있지 않나. 비록 천재성에 의한 외로움 때문에 괴팍해질지언정.

이종
<닥터 프로스트> 작가로 일 벌이길 좋아하는 참치형 만화가.
덕력과 잉여력의 위대함을 신봉하지만 정작 본인은 마감 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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