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장기하, 타블로의 가사들

2014.10.31
대중음악에서 싱어송라이터가 주목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단지 직접 곡을 써서가 아니라 좋은 곡을 쓰기 때문이다. 그리고, 싱어송라이터의 좋은 곡은 대중적인 흥행만이 아니라 그의 세계를 담아내기 때문이다. 최근 거의 동시에 돌아온 서태지, 장기하와 얼굴들, 에픽하이의 가사에 대해 세 명의 대중음악평론가에게 비평을 의뢰한 이유다. 고유한 세계를 이루는 그들의 음악은 결국 노래와 노랫말의 결합이므로.


‘90s ICON’ - 서태지 

나이가 들수록 늘어 가는 변명들
세월이 흘러가도 망설임 따위뿐인걸
내 기타에 스미던 둔해진 내 감성
하지만 난 아직도 멈추지 못할 뿐

한물간 90s Icon
물러갈 마지막 기회가 언제일까 망설이네
질퍽한 망상 끝을 낼까

낡아빠진 액자에 갇혀버린 환영들
내 바람과 망상들로 내 방을 채워가네
덧없이 변해간 나는 카멜레온
내 피부가 짓물러도 조용히 감출 뿐

한물간 90s Icon
화려한 재기의 기회가 언제일까 망설이네
질퍽한 이 망상 끝을 낼까

난 꿈을 꾸죠 은밀한
비장함 따위는 아니에요
전쟁도 끝났죠
나의…

눈감은 순간 흩어지는
바람에 밀려 버려지는
당신의 삶과 같이한
너와 나의 쓸쓸한 이야기

해답이 없는 고민
하지만 밤이 온다면
나의 별도 잔잔히 빛나겠죠

‘소격동’이 은근한 힌트였다면, ‘90’s ICON’은 명백한 선언이다. ‘소격동’은 한때 ‘신비주의’를 상징하다시피 했던 서태지가 자기 자신과 직접적 연관을 가진 구체적인 지명을 언급한 것으로 눈에 띄었다. 그리고 ‘90’s ICON’은 제목부터 어떤 말을 할 것인지 명확하다. 다소 슬픈 이야기가 될 것이 명백할 이 노래 안에 ‘서태지’도 포함될까 정도가 의문이었다. 물론 힌트가 그랬던 것처럼 그가 빠지는 일은 없었다. 아니, 기대한 것 보다는 훨씬 자기고백적이다. “내 기타에 스미던 둔해진 내 감성”을 걱정하는 사람이 달리 누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노래 전체에 걸쳐 등장하는 지나칠 정도로 거친 어휘와 표현들은 이 노래의 주제와 서태지를 슬쩍 떼어놓는다. “낡아빠진 액자의 환영”이나 “피부가 짓무른 카멜레온”의 “질퍽한 망상”처럼 지나간 스타의 몰락한 위상을 비유하는 부분들은 그 언어들이 독하고 전형적일수록 서태지라는 특수한 ‘아이콘’과는 멀어진다. 심지어 여전히 화제를 몰고 다니는 서태지의 특별한 지위를 더욱 도드라지게 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에서 스스로를 ‘한물간 가수’라고 지칭하며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그가 서태지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묘한 감흥을 선사한다. 이 맥락은 < Quiet Night > 전체와 맞닿는다. 이 앨범은 최근 90년대를 키워드로 하는 일부의 음악 트렌드와 맥을 같이 한다. tvN <응답하라 1994>처럼 그 시절을 복고로 포장하는 대신 그 때를 성장배경으로 가진 아티스트들이 다소 뻔뻔할 정도로 90년대를 재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서태지는 그 시절의 재현이 아니라 스스로 90년대의 아이콘으로서 이런 음악을 한다. 그래서 그는 얼핏 동어반복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최근 돌아온 90년대의 누구보다 당대의 흐름 안에서 기민하게 움직이는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정말 재미있는 아티스트를 알고 있다.
글. 서성덕


사람의 마음’ - 장기하와 얼굴들

이제 집에 가자 오늘 할 일은 다 했으니까
집에 가자 이제 슬슬 피곤하니까
집에 가자 배가 고파졌으니까
집에 가자 나는 정말 지쳤으니까

어찌된 일인지 집으로 옮기는 발걸음 
한 걸음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무겁기 짝이 없지만 일단 집에 가자

사람의 마음이란 어렵고도 어렵구나 
하지만 오늘 밤엔 잠을 자자 푹 자자

자자 이제 시간도 늦었으니까
그냥 자자 오늘 하루도 길었으니까
그냥 자자 더 이상 생각할 힘도 없으니까
그냥 자자 내일 하루도 길테니까

어찌된 일인지 이불 속에서 눈꺼풀을 
깜빡 깜빡 깜빡 할 때 마다
졸음은 달아나지만 일단 잠을 자자

사람의 마음이란 어렵고도 어렵구나 
하지만 오늘 밤엔 잠을 자자 푹 자자
사람의 마음이란 어렵고도 어렵구나 
하지만 오늘 밤엔 잠을 자자 푹 자자

사람의 마음이란 어렵고도 어렵구나 
하지만 오늘 밤엔 잠을 자자 푹 자자
사람의 마음이란 어렵고도 어렵구나 
하지만 오늘 밤엔 잠을 자자 푹 자자

장기하는 ‘걷는 사람’이다. 처음부터 그랬다. 설탕 프림 잔뜩 든 자판기 커피로 뇌 주름을 싹 편 뒤, 함께 걷자고 느긋하게 권했다. 다만 ‘느리게’ 걷자 했다. 죽을 만큼 뛰다가는 사뿐히 걷는 고양이 한 마리도 못 보고 지나친다며. 이후도 내내 그랬다. 하늘 가득 달이 차오를 때도(‘달이 차오른다, 가자’), 죽을 둥 살 둥 가 봐야 아무것도 없다는 걸 직접 눈으로 확인할 때까지도(‘아무 것도 없잖어’), 좋았던 그 사람의 편지 한 장만 쥐고도(‘마냥 걷는다’) 걷고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걷다 잠시 멈추면 이번엔 어서 나오라고 아우성이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전부 나오라고(‘나와’)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지금 나와 당장 만나자고(‘우리 지금 만나’) 그렇게 쉴 새 없이 피곤하도록 우리를 걷게 만드는 걷는 사람이었다. 3년 만에 돌아온 그는 여전히 걷는다. 하지만 방향을 튼다. 가자 걷자 손목을 잡아끌며 저 먼 달을 가리키던 그의 신념어린 손가락은 이제 없다. 그 대신 모든 걸 체념한 듯 “이제 집에 가자”는 장기하의 목소리가 빈자리를 채운다. 한숨인 듯 하품인 듯 어깨와 턱을 툭 늘어뜨리고 내는 그의 이 한마디는 그 자체로 센세이션이다. 게다가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정해져있는 기상 시간도 꿈 같이 둥그런 달도 아닌 ‘사람의 마음’이다. 지구와 달의 거리 383,000km보다도 훨씬 멀고 알쏭달쏭한 사람의 마음, 그 마음. 아직 그 어떤 의문도 풀리지 않았지만, 우리는 우선 자야 한다. 내일도 변함없이 길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푹 자자 권하는 장기하의 또박또박한 발음이 단순한 위로만으로 느껴지지 않는 건 그 때문이다. 체념과 납득, 성장과 희망 그 모두가 한 데 뒤엉켜 있다. 그대로 사람의 마음이다.
글. 김윤하


헤픈엔딩’- 에픽하이 

말해 뭐해?
위로 받기 위해 구걸하지 않아
감성팔이는 질색
난 행복에 인색해 
‘돈 내’란 말 보다 싫은 말이 ‘힘내’
술, 사람, 다
쉽게 취하고 끝이 추잡한 나
툭하면 성질 내고 판을 깨
좋아 죽을 것 같다가도

미워서 죽일 듯이 끝장을 내
어차피 이별은 멀쩡히 숨 쉬는 이
마음에 묻게 하는 그런 죽고 죽이는 일
묻지 마
나 괜찮은지
내가 바라는 건 나를 닮은 무심함
온 세상이 떠는 같잖은 청승
사랑 따위 거룩해 봤자 그저 본능
웃겨, 인간과 짐승을 나누는 게
인간을 짐승 만드는 게

이번은 다르다고
매번 날 속여봐도
어김없이
언제나 그랬듯이 
끝나겠지
사랑을 하는 건지
이별을 하려고 만나는 건지
또 다시 날 찾아온 
헤픈엔딩

깨진 거울에게 하는 말
어렵게 만나 
쉽게 이별 할 때마다 
술잔 속에 채운 그 술처럼 투명했더라면 
조금의 숙취라도 있겠지 
넌 금세 또 한 모금 해
목을 매 첨엔 확 불타는 너야
식을 땐 그 사람 목에 쇠사슬 거는 너야
늘 다른 거야, 그 사람을 떠나야 했던 이유
이별 이후, 버림받은 쪽은 always you
너에겐 사랑이란 노름이
다른 누군가에겐 전재산인 걸 모르니?
사치스러운 눈물로 동정을 산 후 그 빚은 
다음 사람이 대신 갚는 그 reason
누가 알아, 맘대로 해
마음에 드는 사람에겐 마음의 반대로 해
참 외롭게 사는 네가
아니 내가
잘 됐으면 좋겠다

난 오히려 잘 된 것 같아
너라고 다를 건 없잖아
늘 같은 엔딩
그저 그런 해프닝
이 헤픈 엔딩
뭐. 어쩌겠어

이번은 다르다고 
매번 날 속여봐도
어김없이
언제나 그랬듯이 
끝나겠지
사랑을 하는 건지
이별을 하려고 만나는 건지
또 다시 날 찾아온 
헤픈엔딩

해피 엔딩

해피
아니 헤픈

안녕과 안녕으로
시작과 같은 말로 끝나는 건 
다 이유가 있겠지

사랑을 하는 건지 
이별을 하려고 만나는 건지
또 다시 날 찾아온 
헤픈엔딩

랩은 언어로 하는 예술이다. 랩은 청각적 쾌감을 위해 같거나 비슷한 발음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반복하는 ‘라임’을 필수요소로 지니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타블로는 한국에서 ‘펀치라인’, ‘말장난’ 같은 키워드를 논할 때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래퍼다. ‘헤픈엔딩’에서 ‘Eight By Eight’ 같은 작심한 말장난은 찾기 어렵지만, 형식적으로 유사한 단어를 반복하는 동시에 앞 단어와 내용적으로 인접한 의미를 지닌 압축적 표현을 물려가는 전개방식은 여전하다. 예를 들어 “묻지 마 나 괜찮은지/ 내가 바라는 건 나를 닮은 무심함” 같은 구절은 ‘묻지 마’와 ‘무심함’을 라임으로 이어가는 동시에 ‘무심함’이라는 표현 선택이 노래의 심상을 적절히 반영한다. 표현을 살짝만 변주해 원문과 상이한 의미를 만들어내는 방식도 그대로다. 이미 널리 회자된 어떤 구절(“난 이 세상의 밑바닥이 아닌 밑받침”)처럼 타블로는 ‘헤픈엔딩’에서도 특유의 예민한 언어 감수성으로 모국어의 성질을 영리하게 활용한다(“웃겨 인간과 짐승을 나누는 게/ 인간을 짐승 만드는 게”). 마치 시인이 그러하듯. 만약 다른 래퍼에 비해 타블로의 가사가 소위 ‘문학적’이라고 느꼈다면 그것은 타블로의 가사가 지닌 시적인 성질 덕분일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랩에서 통용되는 펀치라인이나 말장난, ‘~처럼’, ‘like 무엇’ 같은 화법과는 조금은 다른 지점에 근거한다. 한마디로, 타블로는 한국에서 직유가 아닌 ‘환유’(혹은 환유에 인접한 표현)를 가장 많이, 또 잘 쓰는 래퍼다. 이것이 사람들이 타블로의 가사를 문학적으로 느끼고, (가사가 깊다는 의미에서) ‘깊블로’라고 부르는 중요한 실마리 중 하나일 것이다. 이를테면 ‘헤픈엔딩’에서 “목을 매. 첨엔 확 불타는 너야 / 식을 땐 그 사람 목에 쇠사슬 거는 너야” 같은 부분 말이다.
글. 김봉현




목록

SPECIAL

image Mnet 악행전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