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소녀>의 양조아, 감정을 이기는 이성의 힘

2014.10.30
한 여자가 한 남자를 결박한 후 총을 겨누고 있다. 남자는 이유 모를 이 모든 상황이 혼란스럽지만, 여자는 단호하기만 하다. 두 사람은 가해자와 피해자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누가 더 정확한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알 수 없다. 연극 <죽음과 소녀>는 독재정권 시절 누군가에 의해 납치됐던 여자 빠울리나 쌀라스의 삶을 통해 용서와 복수를 묻는 극이다. 이 질문의 극이 몇 개의 테이블과 의자, 배우 셋의 대사와 액션만으로 관객의 적극적인 상상력을 끄집어내는 극단 양손프로젝트와 만나 의외로 큰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궁금했다. 가진 것이라고는 자신의 몸과 이야기뿐인 무대에서 배우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빠울리나의 지난 15년을 60분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며 묘하게 사람을 잡아끄는 양조아는 그 질문에 꽤 괜찮은 답을 내주었다.

1. 연극배우입니까?
Yes.
졸업 후, 2011년 양손프로젝트에 합류해 본격적으로 연기를 하고 있다. 양손프로젝트는 주로 단편소설을 각색해 연극 무대에 올리는 작업을 하는데, 그동안 다자이 오사무 단편선 <개는 맹수다>, 현진건 단편선 <새빨간 얼굴>, 김동인 단편선 <마음의 오류> 등을 했고 지금은 <죽음과 소녀>에 출연 중이다.

2. 이번에도 단편입니까?
No.
<죽음과 소녀>는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다. 칠레의 독재정권을 모티브로 한 작품에서 15년 전 납치돼 성고문을 당했던 빠울리나 쌀라스 역을 맡았다. 빠울리나는 무언가에 강렬하게 사로잡혀 굉장히 예민하고 감정의 기복도 크다. 그렇게라도 15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복수심 때문이지만, 한편으로는 누구보다 더 제대로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는 의지가 강한 여자다. 2년 만에 재공연되는 작품인데, 본 공연은 총 8장의 구성 중 일부를 발췌해 진행된다.

3. 새롭게 발견한 점이 있습니까?
Yes.
이 작품을 처음 했을 때는, 피해자들은 잊으라는 말을 가장 듣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여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잊어야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지금은 (두 눈을 부릅뜨고) ‘용서?’ 이런 마음이 생겼다. (웃음) 2년 사이 한국의 상황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확실히 빠울리나가 느끼는 고통의 크기가 좀 더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용서하고 잊는다는 것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일이구나 하고. 우리 연극이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다큐 같은 걸 봐도 보는 사람들의 피부에 이야기를 닿게 하기 위해서는 한 개인의 삶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그래서 인물을 더 제대로 알고 그 삶을 리얼하게 재현해내는 게 중요하다.

4. 피해자를 연기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습니까?
No.
한예종 연극원 수업시간 중에 무심코 “나는 성폭행 피해자 역할을 맡아서 그 사람들의 입장을 리얼하게 잘 연기해보고 싶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말이 씨가 되면서 갑자기 그런 역할만 계속 했다. (웃음) 학교에서도 <해무>의 홍매를 했었고, 영화 <가시꽃>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 맨 처음에는 굉장히 감정적으로 접근했는데 실제 리서치를 많이 해보니 그분들은 속에서만 난리가 나고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가더라. 그리고 감정을 계속 지우면서 마치 남 일 대하듯 한다. 내가 이분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엄청 왜곡을 하겠구나 싶었다. 여전히 그게 제일 크다. 이게 정말 맞나? 내가 뭘 알고 이걸 하는 거지?

5. 책임감이 있습니까?
Yes.
동덕여대 실용음악과를 다니다가 한예종을 다시 간 거였는데, 한예종에 들어가기 전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가족극을 한 적이 있다. 한번은 초등학생 아이가 이런 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나는 너를 보고 우리 아빠도 되게 무서운 사람이었는데 우리 아빠도 저렇게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래서 너처럼 아빠한테 술 먹지 말라고 얘기해보려고.’ 그때 진짜 이거다! 이게 내 길이다! 했던 기억이 난다. <죽음과 소녀>를 통해서도 관객들이 비슷한 문제로 고통받는 이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이게 굉장히 신중해야 되는 문제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2차 피해가 더 크기 때문에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바뀌어야 한다.

6. 연기와 삶을 잘 구분합니까?
Yes.
나는 구분을 굉장히 명확하게 한다. 감정적으로 접근해서 같이 어두워지고 우울해지고 예민해지고 슬퍼지고 그러면서 내가 그 인물이 됐다는 착각에 빠지는 게 싫다. 내가 아무리 해도 나는 빠울리나가 될 수 없다. 그냥 주변 인물인 거다. 그래서 그 인물에 더 다가가려면 이 사람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대화 진행방식은 왜 이렇게 되는지를 더 이성적이고 냉철하게 봐야 한다. 감정적으로 되는 것을 경계한다. 왜냐면 인간은 절대 감정적인 동물이 아니고, 표현하기보다는 감추는 동물이라고 생각하거든.

7. 감추는 편입니까?
Yes.
빠울리나 대사 중 “내 인생 내내, 나는 항상 너무 순종적이었어요”라는 대사가 정말 와 닿는다. 내가 되게 와일드해 보이지만 누가 한번 툭 치고 가면 확 움츠러드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분노에 있어서는 더 세게 표현하고 싶은 게 있다. (웃음) 농담도 좋아하고 활발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사람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두렵다. 나를 싫어하고 오해할까봐. 오버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고.

사진제공. 두산아트센터

8. 낯을 가립니까?
Yes.
학교 다닐 때는 연기를 되게 잘하고 싶었다. 무대 위에 있을 때 잡생각 하나 안 하고 감각을 다 열어서 어떤 것에든 반응하고 잘 듣고 잘 보고 내 생각을 정말 말하고. 그러다 보니 내가 나를 얼마나 기만하고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되면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진짜로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일이 과연 있을까? 봤는데 별로 없는 거지. 태어나서 어떤 관계를 맺고 친구가 되고 사랑을 하는 이런 게 다 의미 없고 부질없구나 싶어서 굉장히 부정적이었다. 그 고민 하느라 대학교 2~4학년 때까지는 대인기피증도 생겼었다.

9. 변화의 계기가 있었습니까?
Yes.
졸업을 하려면 공연을 해야 했고, 공연팀에 들어간 순간 알게 됐다. 아! 이건 사람들이랑 같이 하는 거였지? 혼자 하는 게 아니었는데 이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군! (웃음) 다행히 양손프로젝트를 하면서 그런 부분을 급격히 깨고 있다. 오빠들(양종욱, 손상규)이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나랑 (박)지혜가 더 막 하는 느낌? 남자 둘, 여자 둘의 느낌이 아닌 남자 넷 아니면 여자 넷 분위기라서 너무 잘 맞는다. 넷 다 사람에게 마음을 활짝 여는 편은 아닌데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처럼 서로서로 좋아하는 부분도 알게 되고, 싫어하는 부분도 생기면서 자연스러워졌다. 이미지 관리 같은 게 없고 상대방의 치졸한 부분을 발견했을 때 친해짐을 느끼고 좋아한다. 나는 좀 독특하고 이상한 아이디어를 많이 내서 아이디어 뱅크라 불리고 있고. (웃음) 사실 폐쇄적인 성격인데 이렇게 얘기하는 것 자체가 정말 기적이다! 할렐루야 진짜! 되게 많이 바뀌었네.

10. 예민한 편입니까?
No. 원래 성격이 되게 둔한 부분이 있어서 촉을 세워서 ‘분석해야지!’ 이러지 않으면 그냥 쓱~ 흘러간다. (웃음) 인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면서 진짜 나를 끄집어내려 노력하지만, 이걸 안다고 해서 발전이 막 되는 게 아니고 계속 망각하고 제자리걸음이다. 그래도 이런 작업을 계속 하면 스스로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서 다른 사람들의 가려운 부분을 더 잘 긁어줄 수 있는 거지.

11. 아이디어의 원천이 있습니까?
Yes.
중1 때부터 지금까지 만화방을 꾸준히 가고 있는데, 만화책이 정말 많은 도움을 준다. 놀랐을 때 인물 뒤로 그어진 선 같은 것들이나 누가 등장할 때 샬랄라하게 꽃 날리는 거라든가 그런 느낌이 내 연기에 굉장히 많이 적용된다. 아이디어 낼 때도 거기서 도움을 많이 받고. 좋아하는 건 <요괴소년 호야>나 <바사라>, <21세기 소년>, <암즈> 등등 어마어마하다. (웃음) 요즘은 다시 <기생수>를 보고 있고. 만화책에서는 주로 선이 다 이기고 주인공들이 정말 용감하다. 특히 SF에서는 더더욱. 호야 같은 경우 세상을 구하기 위해 창 하나 들고 몸이 부서져라 요괴를 죽인다. 정말 많이 울고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 라는 다짐을 한다. 원래 이입도 감탄도 잘 한다. 뭐든지 처음 해보면 우와! 이래서 욕도 많이 먹고. (웃음)

12. 상상력이 좋은 편입니까?
Yes.
중·고등학교 시절에 연극반 생활을 했지만 연기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운 건 대학에 들어가서였다. 최용진 선생님께 사물에서도 힌트를 얻을 수 있어야 하고, 계속 그렇게 상상하게 되면 상상력이 좋아진다는 얘기를 들었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바람인데, 아침마다 항상 내가 사람이라는 게, 이걸 느낀다는 게 너무 감사하다. 하지만 이걸 느끼는 시간이 아주 길진 않지. (웃음) 바람이 슉 와서 내 손과 얼굴에 닿는 것, 햇살 이런 게 참 좋다. 새싹을 보면 “너 되게 귀엽다” 이러고. 돌아보면 내가 연기할 팔자였나 싶다. 어릴 때 멍멍이가 유일한 친구였는데, 개는 말을 할 수가 없으니 내가 굉장히 관심을 갖고 읽어야 했다. 그러면서 관찰력도 좋아진 것 같고.

13. 선호하는 이야기가 있습니까?
Yes.
인간이 가진 내면의 악하고 부정적인 부분, 사람이 하는 거짓말에 관심이 많다.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내가 지금 이걸 하고 싶다거나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들. 우리 넷 모두가 자기 성찰이나 용서, 복수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아서 이런 얘기들을 계속 해오는 것 같다.

14. 꿈꾸는 미래가 있습니까?
Yes.
내 안에도 여성성이라는 게 존재하기 때문에 최대한 끄집어낼 수 있는 섹시한 <보이첵>의 마리 같은 거. (웃음) 하지만 그보다도 언제나 우리가 자기 자신을 더 알게 되는 걸 하고 싶다. 여전히 나도 나 자신을 정말 많이 속이고 있는데, 그 정체를 내가 보고 알게 되는 것과 모르는 것은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이걸 보고 알아야지 컨트롤도 가능하다. 난 궁극적으로 정말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남들에게 인정받는 사람 말고 내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 사람이 자기 내면에 관심을 더 많이 가져야 이런 끔찍한 일들도 벌어지지 않는다. 좋은 사람, 좋은 세상을 만드는 여러 수단이 있겠지만 나는 그걸 연기로 하고 싶다.

15. 마지막으로, 당신은 누구십니까?
양조아.
1983년생. 살아 있는 모든 것에 감각을 깨어두고 싶은 배우.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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