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버덕│① 이상한 나라의 러버덕

2014.10.28

올 상반기에 슈퍼마리오가 있었다면, 하반기에는 러버덕이 있다. 그저 무표정으로 잠실 석촌호수 위에 떠 있을 뿐인 거대한 오리 풍선은 무서운 속도로 사람들을 매혹하는 중이다. 무언가에 쓰이기라도 한 것처럼 모두가 러버덕을 만나고, 카메라에 담고, 갖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를 석연찮게 바라보는 시선 역시 끊일 줄을 모른다. <아이즈>의 이번 스페셜은 지금 모두의 눈을 집중시키고 있는 치명적인 매력의 오리, 러버덕에 관한 이야기다. 어느 날 문득 한국에 나타나 즐거움과 혼돈을 동시에 안겨주고 있는 이 기묘한 존재를 탐구하고, 사소한 정보들을 끌어모아 동물도감의 한 페이지처럼 정리했다.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에 갑자기 출현한 러버덕의 사진은 덤이다. 우리를 행복한데 불안하고, 불안한데 행복하게 하는 오리의 모든 것.

어쩌면 이것은 그리스 신화의 세이렌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다. 세이렌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노랫소리로 선원들을 유혹했지만, 러버덕은 노래를 부르지도, 귀여운 표정을 짓지도, 스스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다가가서 만질 수도 없다. 그럼에도 서울에서의 러버덕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난 14일 이후, 사람들은 그를 보기 위해 자발적으로 잠실 석촌호수를 방문했다. 호수 앞에서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러버덕을 바라보거나,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엄청난 인파는 이제 일상적인 장면이 되었다. 뉴스와 각종 SNS 역시 러버덕의 일거수일투족을 중계하는 데 여념이 없다. 매체들은 전시 첫날 도착하자마자 바람이 빠져 축 늘어진 러버덕의 사진을 보도하며 “러버덕, 피곤했니? 힘들어서 ‘러무룩’” 등의 제목을 달고, 사람들은 바람 빠진 러버덕과 복구된 러버덕을 비교하며 “러버덕 ‘낮져밤이’ 스타일이었어” 같은 멘트를 더한다. 단 3일 만에 12만 명 이상을 모으고, 2일 만에 축소판 인형만 3,000개를 팔아 치운 이 오리는 지금, 한국에서 가장 핫한 아이돌이자 사랑받는 애완동물, 흥행에 성공한 미술작품이다.

네덜란드의 공공미술작가 플로렌타인 호프만이 고안한 러버덕 프로젝트는 다른 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끌어왔다. “러버덕에는 국경도 경계도 없고 어떠한 정치적 의도도 없다. 이것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치유가 되며 전 세계의 긴장감을 풀어줄 수 있다고 믿는다”는 작가의 의도처럼, 2007년부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일본 오사카, 호주 시드니 등 전 세계 14개 도시를 돌아다닌 거대 오리는 손쉽게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았다. 대만 가오슝에서는 5일간 50만 명이, 홍콩에서는 30일간 800만 명이 러버덕을 만나고 돌아갔으며, 유튜브에는 각국의 물 위에서 유유히 떠다니는 러버덕의 영상들이 올라와 있다. 심지어 성룡은 중국 러버덕 팬클럽의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정말,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러버덕을 본 이들은 국적과 성별,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 사랑에 빠지고 만다. 이 현상을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러버덕을 안 좋아할 순 있어도, 러버덕을 보고 좋아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이유는 명확하다. 크고 귀엽기 때문이다. 높이 16.5m, 부피 3,000㎤, 무게 7t에 달하는 이 고무풍선 오리는 어마어마하게 크고, 그래서 일종의 숭고미를 느끼게 할 만큼 압도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호빵 두 개를 겹쳐 패러디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디자인이기도 하다. 도무지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 또한 중요한 요소다. 만약 실제 오리가 저만한 크기로 석촌호수에 떠 있다면 러버덕만큼 사랑스러울까? 만화 캐릭터인 도날드덕이나 트위티가 저렇게 떠 있다면 또 어떨까? 어떠한 캐릭터도 없이, 구체적인 정체성을 지워버리고 오리라고 인식할 수 있는 최소한의 형태만 남긴 덕분에 러버덕은 손바닥만 한 인형 못지않은 귀여움을 획득한다. 더욱이 비바람이나 작은 압박에도 쉽게 망가져 버리는 ‘풍선’이라는 사실은 아주 약간이나마 남아 있을 수 있는 위협감마저 제거한다. 바람이 빠져 빈대떡처럼 납작해지거나, 쭈글쭈글해진 채 들어 올려지는 러버덕의 사진이 특히 관심을 받는 건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커다랗지만 깜찍하며, 위압감을 줄 순 있어도 위협적이진 않은 무엇. 여기에 더해, 보는 사람 스스로 어떤 캐릭터든 마음껏 입혀볼 수 있는 존재. 러버덕의 사진으로 어떤 상황을 연출하고 어떤 캡션을 달든 어색하지 않은 것은 그래서다. 관객이 생각하고 그리는 방향으로 감상하게 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참여미술로 볼 수도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런 러버덕이 한국, 그중에서도 잠실 석촌호수에 떠 있다는 사실은 이 오리를 더더욱 기묘한 존재로 만든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지나치던 풍경에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진 이벤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호프만으로부터 설계도를 받아 러버덕을 만든 것은 롯데 측이며, 롯데는 현재 잠실에 제2롯데월드를 건설하는 중이다. 최근 석촌호수 일대는 싱크홀의 빈번한 발생으로 발을 딛는 것만으로도 불안감을 안겨주는 지역이었다. 러버덕이 아니었다면, 어떤 이들에겐 되도록 방문하고 싶지 않은 장소였다는 이야기다. 싱크홀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건 무려 112층에 이르는 제2롯데월드의 건설이었다. 조금씩 지반이 내려앉고 석촌호수의 수면마저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계속해서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었으며, 주민들은 거리로 나와 피켓을 들고 제2롯데월드의 이른 개장을 반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4일, 롯데는 아직 완공되지도 않은 건물을 부랴부랴 오픈했다. 러버덕 프로젝트의 시작일과 같은 날이었다. 저층부만 완성된 건물은 밥을 먹을 만한 음식점도, 구경할 거리도 거의 없어 어수선한 상태였지만, 러버덕을 보러 왔다 들른 사람들만으로도 북적거렸다. 러버덕 갤러리가 마련된 애비뉴엘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러버덕은 ‘쇼핑몰 오픈을 알리는 행사용 풍선’에 지나지 않는 걸까, 아니면 이와 무관하게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공공미술작품일까. 러버덕 프로젝트와 그를 둘러싼 반응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현재 한국의 특징이다. 살아가는 것은 고되고 불안하며, 그런 일상에 작게나마 ‘힐링’을 안겨줄 이벤트는 모두에게 절실하다. 한편으론 힘든 삶을 더욱 고단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되지 않고, 언제 어떻게 사고를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험은 도처에 깔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믿을 만한 보호막은 없기에 긴장과 감시의 끈을 놓을 수도 없다. 그래서 잠실 석촌호수에서 러버덕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은 한국에서 산다는 것에 대한 은유 같기도 하다. 잠깐의 즐거움을 위해 곳곳에 잠복한 불안까지 감수해야 하는 아이러니인 것이다.

어쨌든 러버덕은 꾸준히 사람들을 끌어모을 것이다. 새로운 사진은 끊임없이 쏟아지고, 웬만한 스타의 뉴스보다 그에 관련된 소식이 더욱 화제가 되며, 관련 상품은 더 이상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의 모든 판매처에서 품절될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도 제2롯데월드의 건설과 싱크홀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다음 달 15일이면 러버덕은 떠난다. 여기 남아 있는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일단은 러버덕을 보며 웃지만, 생각지도 못한 숙제를 받아든 듯 마음속은 어지럽다.

사진제공. 러버덕 프로젝트 서울│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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