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다 가스파드 오셨네

2014.10.23

“우↗리↘가 다↗ 갖다↘ 넣↗는↗다↗ 우↗리↘가 다↗ 갖다↘ 넣↗는↗다↗ (중략) 전↗자↘오↗락↘수↗호↘대↗↗↗”

원더걸스의 “떼떼데데데텔미” 이후 이토록 귀에 오래 맴도는 멜로디는 오랜만이었다. 아니, 듣기도 많이 들었다. 그만큼 지난 7일 자정 직전에 올라온 가스파드 작가의 <전자오락수호대> 예고편에 삽입된 음악은 중독적이었다. 영상은 또 어떤가. 음악의 리듬에 딱딱 맞춰 움직이는 도트 캐릭터들은 그대로 웹툰 본편에 활용해도 좋을 만큼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의 팬을 포함한 웹툰 독자들은 오밤중에 가스파드를 연호했고, 신작에 대한 기대치는 조회수와 함께 수직 상승했다. 하지만 이 뜨거운 반응은 단순히 미처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예고편에 대한 만족과 기대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역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쓸고퀄(쓸데없이 고퀄리티)’의 왕, 가스파드의 귀환에 대한 환영인사에 가까웠다.

데뷔작인 <선천적 얼간이들>부터 가스파드의 만화는 일상 만화, 그리고 에피소드 형식 개그 만화 양쪽 모두에서 일종의 돌연변이와도 같았다. 재밌는 일상의 경험을 짧고 재밌게 담아내거나, 일상 속의 성찰을 담아내는 전통적인 일상 만화에 비해 연출에 박력이 넘쳤고, 조석과 이말년 같은 스타 ‘병맛’ 작가의 계보와 연결되는 듯하지만, 세밀한 스케치부터 2~3개의 톤을 쓰는 색상까지 작화 퀄리티가 너무 높았다. 일상 만화나 개그 만화는 그림을 대충 그린다거나 그래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의 작품에는 그림과 재미 두 마리 토끼를 최적의 비율로 잡는 조화로움보다는, 과도할 정도의 의욕과 에너지가 있다. 종종 시도되는 현존 인물에 대한 패러디 컷에서의 사진처럼 디테일한 묘사는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수준이었고, 동물로 묘사되는 캐릭터의 종에 따라 포유류, 어류, 파충류에 맞춰 재현한 털 혹은 피부의 질감은 종종 징그러울 정도로 생생했다. 필요한 걸 다 쓰고도 남은 것이 잉여라면, 그의 만화는 재밌고 잘 그린 만화라는 안정적인 프레임 바깥으로 삐져나오는 잉여를 품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쓸고퀄’이라 할 만했다. 제목을 ‘휴재 공지’로 하고 감기에 걸린 사연을 전하는 척하며 2주 분량을 연재한다거나, 정말 휴재를 할 때도 8비트 도트를 이용한 영상을 올려 ‘이럴 거면 휴재가 무슨 의미냐’는 애정 가득한 야유를 받았다. 직접 그린 <선천적 얼간이들> 단행본 표지는 본편의 그림체와는 또 다른 스타일의 공들인 디자인으로 화제가 됐고, 역시 가스파드라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는 언제나 필요 이상으로 열심이었다. 사람들도 알았다. 미디어 연구가 김낙호는 <선천적 얼간이들> 리뷰에서 작품의 장수를 예견하되 ‘작가가 과중한 노동으로 쓰러지지만 않으면’이라는 단서를 달았고, 가스파드 스스로 작품 마지막 회에서 ‘주 7일 감금 연재’라는 표현을 썼을 때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하지만 가스파드의 활동이 정말 ‘쓸고퀄’이라면, 단순히 주 7일 동안 사적인 생활을 포기하고 작품에 매달려서만은 아니다. 그는 그 노력에 스스로 취하지 않는다. 언제나 필요 이상을 하되 필요 없는 것을 하진 않는다. 가령 동창 모임 회장인 삐에르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며 마치 삐에르 연혁을 초상화처럼 그리고, 땅 파는 걸 좋아하던 어린 시절 묘사를 위해 고전 땅파기 게임을 8비트 도트 느낌으로 그리는 식이다. 그 정도까진 안 해도 될 일인지는 모르지만, 어색하거나 안 어울리지는 않는다. <선천적 얼간이들> 완결 이후 크리스마스 단편 스페셜로 그린 ‘루돌프 룬드그렌’에서 흑백 대비를 이용한 액션신이 인상 깊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액션 만화에서도 보기 힘든 박력 있는 그림과 연출은 그 자체로 시선을 끌었지만 또한 그것은 루돌프와 산타의 대결이라는 웃음 포인트를 극대화했다. 그의 작품에 남아도는 에너지가 있다면 자신의 실력과 노력을 과시하는 헛된 덧칠을 해서는 아니다. 단지 지금 이 주제를 표현하는 데 있어 최적이 아닌 최선을 택해서다.

어쩌면 이러한 순수한 잉여적 열정과 에너지야말로 작화나 분량의 문제를 떠나 <선천적 얼간이들>의 전체 테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한 성깔 하는 산티아고는 십 대의 탈선 현장을 볼 때마다 분노와 열정을 담아 선도하고, 한 번 꽂히면 뭐든 하고야 마는 로이드는 봄이 다 되어서도 빙어축제를 즐기겠다며 일행을 끌고 간다. 일상 만화로서 가스파드의 작품이 재밌는 건, 수많은 우연이 겹쳐 황당한 사건이 일어나서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보이는 일에 죽고 사는 열정으로 뛰어들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들도 자신의 삶에서 ‘쓸고퀄’을 실행한다. 앞서 말한 특유의 박력 넘치는 연출과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디테일한 작화 역시 가스파드의 실력 과시가 아닌 작품을 위한 최선이 되는 건 이 지점이다. 잉여적 열정의 순간을 가장 잉여적인 열정으로 그려낸 가스파드의 세계는, 앞뒤를 계산한 최적 함수나 자아도취적인 과시로는 닿을 수 없는 폭발력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는 ‘쓸고퀄’의 왕이다. <전자오락수호대> 예고편은 왜 우리가 그를 사랑했는지 환기시키는 가장 적절한 서곡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웹툰 예고편을 도트 애니메이션으로 만든다는 아이디어의 반짝임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엄청나게 공을 들였기에 가능한 결과물이다. 또한 음악과 영상의 퀄리티를 뽐내는 데 매몰되지 않고, 전자오락수호대라는 작품 속 세계관을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해주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사랑받은 이유를 여전히 잘 알고 있다. 시작하기도 전에 너무 기대치만 올려놓는 것 아니냐는 당연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의 귀환에 가슴이 부푸는 건 그래서다. 그러니 우선은 즐거운 마음으로 환영의 노래를 부르자. 가↗스↘파↗드↘ 오↗셨↘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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