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④ 박명수부터 서태지까지, 유재석과 열두 사도

2014.10.21

중국 고대의 명의 편작에 대해 당대 사람들은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고 칭송했다. 정작 편작은 “나는 죽은 사람을 살려낸 것이 아니라 당연히 살아날 사람을 일어나도록 했을 뿐”이라 말했지만 누구나 사람을 일으킬 포인트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유재석 역시 예능에서 죽어가는 사람,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사람, 살아날 방법을 모르는 사람을 살려내는 명의가 아닐까. 분명 재능이 있지만 유재석과 함께하며 꽃을 피운 이들, 생명을 연장한 이들,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을 뽑아봤다. 이름하여 유재석의 열두 사도들이다.


1. 박명수: 그는 목자와 같이 어린 명수를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악마의 아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남자, 아차 하는 사이 방송 불가 멘트로 잘 찍고 있던 신을 날려 먹을 수도 있는 예능인. 하지만 유재석은 이 하찮기도 하고 거성이기도 한 남자를 적당히 놀리면서 욱하게 만들고, 또 적절히 북돋아 빵 터뜨리는 조련사다. 박명수는 이미 지난 2008년 “내가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은 두 명이다. 한 명은 딸이고, 다른 한 명은 유재석”이라고 밝히며 “유재석이 없으면 내가 큰일 난다”고 말해 유재석이 자신의 활동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임을 인정하기도 했다. 물론 박명수만의 짝사랑은 아니다. 유재석 역시 박명수에 대해 “MBC <무한도전>의 마스코트”이자 “귀엽고 너무나도 예쁜 분”이라 하였으니 둘을 보면 괜히 시청자가 다 행복하다. 부럽다. 영원하길!


2. 하하: 꼬마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유재석이 박명수를 조련했다면 하하는 유재석에게 수련받았다. SBS <일요일이 좋다> ‘X맨을 찾아라’(이하 ‘X맨’) 시절부터 ‘런닝맨’, <무한도전>까지 하하의 곁에서 채찍질하고 가르치고 어르고 달래 온 ‘재석이 형’이 ‘꼬마’를 어엿한 예능인으로 키워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하는 김태호 PD의 말대로 “PD 마인드를 가진 연기자”이기도 한데, 그래서 유재석이 어떤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고 싶어 하는지 가장 먼저 알아채고 이를 돕는다. 이 과정에서 ‘무한재석교’의 1호 신도임을 천명하고 추종자로서의 캐릭터까지 획득했는데, 그가 “한국을 살린 위인”이라 주장하는 유재석을 향한 간증은 가히 주말 낮에 현관 초인종 누르며 좋은 말씀 전하러 왔다고 할 것 같은 수준이다. “유재석의 기적을 아직도 못 믿습니까? 유재석과 함께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유재석의 손길이 느껴졌을 때, 그 손을 잡고 어디까지 왔습니까.” 물론 자진해서 토요일 저녁마다 MBC로 채널을 고정하는 일반 신도들은 이를 믿어 의심치 않겠지만.


3. 노홍철: 광야가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마른 땅이 샘물이 되게 하시고
끼 많은 대학생에서 케이블의 ‘닥터 노’로 알려졌던 노홍철은 MBC <놀러와>에서 유재석을 만났다. 놀러 오는 것처럼 방송을 시작했던 노홍철에게 스타일리스트도 매니저도 없던 시절, 당시 이미 적지 않은 스케줄로 활동하던 유재석은 이동할 때마다 까마득한 후배의 차를 대신 운전해줬고 녹화가 끝난 뒤 늦게까지 기다려 집에 데려다 주었다. 활기와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방송에서는 아슬아슬할 수 있는 지점을 젊고 톡톡 튀는 캐릭터로 자연스럽게 포장하거나, <무한도전>에서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돌+아이’에게 뱃살이나 부정확한 발음 등 사소하고 인간적인 약점이 있음을 드러내 준 것도 유재석이다. 결국 자신의 멘토인 유재석의 사진을 차에 붙여놓을 만큼 그를 따랐던 노홍철은 역시 무한재석교의 신심 깊은 신도로 손꼽히는데, 하하와 달리 노홍철의 경우 방임과 격려를 통한 가르침을 택했다는 면에서 유재석이 상대의 특성에 따라 다른 교수법을 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정준하: 그리고 참고 견디면 생명을 얻을 것이다 
‘무모한 도전’에 출연했다가 유재석의 추천으로 <무한도전>의 고정 멤버가 되었다. 그러나 2007년 <무한도전>에서 멤버들의 사주를 봤을 때 정준하와 유재석은 “평생 도움이 안 되고 거리를 둬야 하는 사이”로 나왔고, 심지어 정준하는 유재석의 여자와 명예도 빼앗아 갈 수 있는 천적으로 나왔다는데 다행히 그 후 유재석의 가정과 명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보기와는 달리 굉장히 소심하고 쉽게 위축되는 성격의 정준하가 하차를 고민할 때마다 유재석은 이 말 안 듣는 형을 설득해 <무한도전>에 남게 했고, 온갖 사건을 함께 견뎠다. 그리고 은근히 마음 약한 정준하는 유재석을 제치고 자신이 1인자가 될 일이 있을 경우 안절부절못하며 부담스러워하는 귀여움을 보인다. 그래서인지 정준하는 이광수와 함께 유재석이 끊임없이 장난치면서도 예뻐하는 상대인데, 특히 정준하가 억울해할 때 유재석의 즐거움은 배가된다고.


5. 이광수: 창백한 기린이 나올 때 예능의 천사가 나팔을 불었나니 
노홍철과 하하에 이어 유재석이 키운 또 하나의 예능 재목. 녹화할 때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상시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거나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는 유재석은 ‘런닝맨’에 들어온 예능 초보 이광수에게도 일주일에 몇 차례씩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고민을 들어주었다. 또한 유재석은 방송에서 광수를 향한 끝없는 놀림과 구박을 통해 약한 기린으로서의 캐릭터를 뚜렷하게 만들었고, ‘광바타’라는 새로운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게다가 유재석은 광수를 놀릴 방법을 수만 가지 정도 알고 있으며 ‘런닝맨’을 하는 동안 이 모든 방법을 써먹어 볼 것이라고 하니 기대해보자. 물론 유재석은 광수가 림보 막대 앞에서 부들부들 떨며 몸을 낮출 때 놀리는 척하면서도 걱정스런 눈을 떼지 않는 따뜻한 형이고, 광수는 유재석에 대해 “카메라 밖에서 더 좋은 사람이자 아빠 같은 사람”이라며 믿음과 존경을 보내고 있으니 무한재석교의 신도는 나날이 늘어갈 수밖에.


6. 지석진: ‘형제여 일어나라’ 하시자 나이 든 자가 앞으로 나왔다
유재석, 지석진, 김용만이 속한 ‘조동아리’는 맥주 500cc가 치사량일 만큼 술을 못 마시는 대신 말하기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남자 셋으로 구성된 친목 모임이다. 유재석은 밀크셰이크와 딸기셰이크만 시켜놓고 하루 종일 떠들 수 있는 친한 형 지석진을 꾸준히 챙기며 ‘런닝맨’에서도 함께 출연 중인데 물론 어른을 공경…하는 건 아니고 ‘허약하고 못 나가는 형’을 구박하는 식으로 그의 캐릭터를 잡아준다. 지석진의 아내를 소개해주었던 유재석은 “형수는 형이 자기 스타일 아니라고 했다”고 폭로하며 그를 놀려먹고, 게임 도중 “지난 수년간 형수에게 거짓말한 걸 알고 있다”며 당황하게 만들곤 하는데 비록 체력은 약하지만 입만은 살아 있는 지석진도 이런 상황을 센스 있게 받아치며 웃음 코드를 살려낸다. 수다만큼은 지지 않는 지석진의 장기를 리얼 버라이어티 안에서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호흡이 척척 맞는 상황극이나 에미넴을 능가할 ‘매미랩’ 같은 명장면은 둘의 오랜 관계로부터 탄생할 수 있었다.


7. 김종국: 내가 친히 너와 함께 가며 너에게 승리를 주리라 
MBC <목표달성 토요일>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에서 ‘X맨’, ‘패밀리가 떴다’, ‘런닝맨’까지 의외로 근 10년에 걸쳐 유재석과 주말 예능을 함께 하고 있다. ‘X맨’ 당시 김종국과 윤은혜의 러브라인에 바람몰이를 했던 유재석은 ‘런닝맨’에서 종종 윤은혜에 대해 언급하며 김종국을 놀리는데, 열 번이면 열 번 다 당황하는 김종국의 모습은 열한 번 놀리고 싶을 정도. 체력과 운동신경 또한 상당한 유재석은 ‘런닝맨’에서 ‘능력자’ 김종국과 라이벌, 가끔은 동맹의 형태로 세력의 양 축을 나누어 담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승부욕이 강한 김종국이 유재석의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기 위해 바지를 내리거나 둘이 서로 질색하면서도 빼빼로 게임을 할 때는 실로 흥미진진한 장면이 펼쳐진다. 항상 웃고 있는 것 같은 얼굴이지만 금세 욱하는 데가 있는 김종국에게 유재석이 쉬지 않고 깐족거리는 모습은 톰과 제리 같기도 한데, 물론 둘은 매우 친한 사이로 김종국은 유재석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렀다.


8. 서태지: 그가 잠든 새벽을 흔들어 깨우시니 마침내 동이 트고 
5년 만의 컴백, 신비주의 마케팅으로 일관하던 서태지를 누가 잡을 것인가. 방송사들의 치열한 경쟁 끝에 승자는 유재석이었다. 기존의 <해피투게더 3> 포맷과 달리 휑한 야간매점에서 서태지와 일대일로 마주앉은 유재석은 말수가 적고 예능에 익숙하지 않은 상대가 긴장을 풀게 하기 위해 “72년생 쥐띠 동갑 친구”임을 강조하며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려 애썼다. 토크를 활발히 이어가기보다 짤막짤막하게 답변하는 서태지에게 “술을 못하신다면서요. 저도 술을 잘 못 하거든요. 수다는 좋아하세요?”, “어제 잠은 좀 주무셨어요? 몇 시간 주무셨는데요?” 등 어색한 소개팅 자리에서나 나올 법한 질문들을 처절하리만큼 쉬지 않고 던지던 유재석의 노력은 점점 효과를 발휘했고 서태지 역시 아기 사진을 꺼내 들고 딸 자랑을 하는 아빠임을 보여주게 되었다. 유재석이 아니었다면 서태지에게 이토록 무난한 예능 컴백이 가능했을지는 모를 일이다.


9. 김영철: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 
유재석이 “피곤한 후배다. 안 보면 보고 싶지만, 막상 보면 후회한다”고 말했을 만큼 막역한 후배. 성대모사 중심의 개인기, 과장된 표정과 말투 때문에 다소 부담스러운 면이 있지만 김영철이 <해피투게더>에 나오면 대개 선방할 수 있는 것은 그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유재석이 적절히 눌러주고 정리해주며 맞는 판을 깔아주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무한도전> ‘못친소’와 ‘쓸친소’ 특집에서는 뭔가 하려고 하면 할수록 수렁에 빠지는 무리수 개그를 시도해 본의 아니게 욕을 먹기도 했는데, 그래도 유재석이 집에 찾아오자마자 당나귀 잇몸을 드러내며 반기고 이영자 성대모사를 시작하는 열정만큼은 따뜻하게 바라봐주자. 어쨌든 유재석과 함께 한 콩트 ‘물회’에서 둘의 메소드 연기는 기대 이상의 케미스트리를 낳기도 했으니,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임엔 분명하다.


10. 데프콘: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무한도전> ‘조정 특집’에 얼결에 출연했다가 콧김을 뿜으면서 체력이 방전될 때까지 노를 저은 이후 ‘우천 시 취소 특집’, ‘개그학개론’, ‘못친소 페스티벌’, ‘2013 달력배달’ 등 다양한 특집에 등장하며 유재석이 아끼는 ‘옵션 동생’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못친소’에 김영철, 김제동과 함께 데프콘을 선발한 것은 뉴페이스를 발굴함으로써 재미있는 조합을 만들어내는 유재석의 장기가 발휘된 결과였다. 데프콘의 활약 당시 길은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감추지 않았으나 데프콘은 이를 극구 부정하며 “그저 스페어타이어라고 생각해달라”고 했으며 그를 달력배달 특집에 부른 유재석 역시 “대준이는 고정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편을 들었다. 비록 그 후 데프콘은 KBS <해피선데이> ‘1박 2일’의 고정 멤버가 되었지만, 유재석은 정형돈에 이어 데프콘이 평생 고마워해야 할 사람일지도.


11. 김제동: 얼굴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의 것이다 
유재석이 <해피투게더> ‘쟁반 노래방’ 시절부터 김제동을 몹시 아꼈던 사실은 유명하다. 물론 당시에도 서로 “란제리 쇼의 권위자”, “요즘 인터넷에 흠뻑 취하셨다던데” 등 자잘한 폭로전을 펼쳤던 이들의 인연은 유재석이 목욕탕에서 나오는 김제동에게 “목욕 가니?”라고 물어봄으로써 복수를 결심하게 하거나, 함께 사우나에 갔을 때 “제동아, 안 쓰는 거 있으면 팔아”라고 충고했다는 식으로 김제동의 자학 개그에 종종 활용된다. 뿐만 아니라 몇 해 전 김제동이 방송사들로부터 갑작스레 외면당했을 때도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꾸준히 김제동을 초대했던 유재석은 요즘도 추석 연휴 첫날 해외 촬영이 있는 척 고향 집에 가지 않은 김제동을 <무한도전> 녹화에 부르고, 다음 녹화는 SBS <힐링캠프>와 겹쳐 출연할 수 없다고 하자 “일주일에 이틀 일할 수 있었는데!”라며 안쓰러워하는 척 놀리며 ‘쓸쓸한 독거인’으로서 그의 캐릭터를 강조한다. 비록 김제동의 얼굴을 두고 “신호등 꺼진 사거리 같아. 앞이 깜깜해서”라는 농담을 던지긴 하지만 김제동이 ‘명언 제조기’보다 훨씬 웃긴 남자라는 사실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람은 역시 유재석인 것이다.


12. 권오중: 네 음란의 죄 이미 사함을 받았느니라
<놀러와> ‘트루맨쇼’에서 인연을 맺어 <무한도전>에서 이어가더니 KBS <나는 남자다>에서도 함께한다. 한 점 부끄럼 없이 19금 경험담을 술술 풀어놓고 틈만 나면 야한 농담을 던지는 권오중에게 있어 식은땀을 흘려가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미리 검열하는 유재석은 방송의 안전망 같은 존재다. 권오중이 정력에 대해 언급하는 순간 황급히 치고 들어와 말을 돌리고, 영혼이 육체로부터 이탈한 것 같은 표정으로 못 들은 척하려 애쓰는 유재석의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권오중이 야한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이를 놓치지 않고 크게 당황하거나 “뭘 얘기하고 싶어요?”라며 난감해하는 유재석의 반응은 역설적으로 토크의 효과를 증폭시키고 ‘섹드립의 대가’로서 권오중의 캐릭터를 확고히 한다. 권오중이 아내와 연애 시절 차에서 껴안고 있다가 경찰서에 갔다고 고백할 때 “그냥 계셨어요, 정말로?”라고 굳이 묻는 유재석이 아니었다면 상상의 나래가 활짝 펼쳐지지도 않았을 거란 얘기다.

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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