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부터 <21세기 자본>까지,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 활용하기

2014.10.17
고전이라서, 특별 세일을 하길래, 표지가 예뻐서. 책을 사들이는 이유는 다양하고, 그중 많은 책들이 읽히지 않은 채로 남는다. 토마 피케티가 쓴 <21세기 자본>처럼 저자의 내한이나 시대의 흐름과 함께 순식간에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책이라면 더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다. 처음엔 의욕적으로 구매했지만, 펼쳐보지도 않거나 앞부분만 읽고도 흥미를 잃어 결국은 책장에 고이 모셔두게 되는 것이다. <아이즈>는 그렇게 누군가의 책장에 한 권쯤은 있을 만한 책 일곱 권을 골라 애초에 왜 샀던 것인지, 도대체 왜 끝까지 읽을 수 없는 건지, 그렇다면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정리했다.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에 대한, 다소 구차한 핑계.



<총, 균, 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 752p

이상: 무슨 내용인지 한 번에 감이 확 오진 않지만, 제목이 간결하면서도 그럴싸해 보인다. 1998년에 출간됐는데도 베스트셀러 목록과 서울대학교 도서관 대출 순위 상위권에 꾸준히 들어 있는 걸 보면 아무튼 훌륭한 책인 것 같다.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사실도 플러스 요인.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니, 인류사 공부에 더없이 적절할 듯하다. 사두면 언젠가는 읽겠지.
현실: 저자가 뉴기니의 정치가와 나눈 대화를 인용한 도입부는 흥미롭다. 그런데 총 4부 18장이나 되고, 처음부터 비보정 방사성 탄소 연대니 보정 방사성 탄소 연대니 하는 단어로 헷갈리게 만든다. 게다가 둘의 차이를 바로 설명해주지도 않고 무려 5장에서야 알려준단다. 각종 대륙에 얽힌 이야기, 모리오리족과 마오리족의 갈등에 관한 부분은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 같아서 졸릴 위험도 있다. 중간중간 삽입돼 있는 사진만이라도 다 볼 수 있으면 다행이다. 클로비스 수렵인이 만든 돌촉,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서예 하는 일본 소녀 등이 실려 있다. 그중 제일 귀여운 건 라마 사진이다.
활용: 책 사이에 돈을 끼워 넣어 저금통처럼 써본다. 한동안은 펼쳐보지 않을 것이므로 돈을 절약할 수 있다. 단, 그 사실을 잊고 중고서점에 갖다 팔면 낭패.

<통섭>
에드워드 윌슨 / 560p

이상: 여기저기서 ‘통섭형 인재’, ‘통섭교육’ 등의 단어가 보이는데, 도대체 그 ‘통섭’이란 게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다. 심지어 그 유명한 스티브 잡스가 통섭형 인재의 대표적인 예다. 대강 설명하자면 이것저것 다 아우르는 게 통섭이고,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크로스오버라는 점에서 양손잡이 같은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 이 책을 읽고 나면 좌뇌와 우뇌를 다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다지 어렵지 않은 내용이라 구입 후 몇 시간 만에 다 소화할 수 있을 거다.
현실:그래서 나는 그것이 내가 진정으로 알 수 있는 하나의 작은 지식 세계라고 생각했다.’ 책을 펼치자마자 적혀 있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명언이 가슴을 두근두근하게 만든다. “실패해도 기억할 만한 것이라면 상관없다”는 저자의 글도 왠지 뭉클하다. 난관은 마리장앙트완니콜라 카리타 마르키 드 콩도르세라는, 이름도 길뿐더러 전혀 들어본 적 없을 프랑스 최후의 계몽사상가에 관한 부분부터다. 잘 모르는 사람의 생애가 너무 자세하게 묘사돼 있어 60쪽밖에 안 됐는데도 다소 지루하다. 처음부터 힘겹게 읽어왔는데 저자는 “이제 미지의 영역을 향하여 멀고도 험한 행진을 해보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당연히 책을 덮을 수밖에 없다. 참고로 책날개 안쪽에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추천사가 실려 있다. 맞다. <총, 균, 쇠>의 그 저자다.
용: <통섭>의 무게는 912g이다. 웨이트 운동 초보인 여성이 아령으로 사용하기에 적당한 정도다. 두 손으로 책을 잡고 머리 뒤로 넘기는 동작을 10세트씩 반복하면, 팔뚝 안쪽 살을 쉽게 뺄 수 있다.

<육식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 462p

이상: 육식은 사람 몸에 좋지도 않고, 동물과 환경을 해치는 일이기도 하다. 되도록 오래 살고 싶다면 <육식의 종말>을 읽고 육류 섭취를 끊어보자. 고기를 먹지 않으면 체중도 감소할 것이다. 완벽한 채식주의자가 될 수 있다면 더 좋다. 여기에 더해 제레미 리프킨의 종말 시리즈라 할 수 있는 <소유의 종말>, <노동의 종말>도 함께 마스터하자. 세 권을 같이 사서 책장에 나란히 꽂아두면 금방 읽게 될 것이다.
현실: “수천 년 전에 나일강과 유프라테스 강의 토착민들 사이에서 강력한 왕이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첫 문장이다. 육식이 왜 나쁜지, 동물들이 어떤 환경에서 도축되는지 바로 알려주지 않는다. 페이지를 좀 더 넘기면 다행히 소의 생식기를 거세하는 과정과 강제로 발정하게 만드는 약, 성장 촉진을 위한 호르몬 투약과 항생제 투약 등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동물 사료에 오물을 넣는 케이스도 함께 언급되고 있어서 점점 흥미로워진다. 그런데 다시 서양 문명이 소와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국가별로 꼼꼼하게 설명하기 시작한다. 몰라도 상관없다면 50쪽 정도는 건너뛰자. 그다음에 따라 나오는 건 미국 서부의 목축업 발달긴데, 이 부분 역시 제법 길다. 중도에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활용: 어쨌든 육식을 삼가겠다는 목표는 달성해야 하지 않겠나. 주방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책을 놓아두자. 표지에 실려 있는 불쌍한 소의 사진을 보면, 적어도 소고기 섭취 횟수만큼은 줄일 수 있을 거다.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 604p

이상: 표지에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이 쓰여 있다.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동지를 만난 듯한 든든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누군가와 신에 관한 논쟁을 벌일 경우, 논리적으로 반박할 근거도 배울 수 있다. 꽤 두껍지만 의외로 가볍기 때문에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틈틈이 읽도록 한다.
현실: “사실 무신론자들을 조직화하는 일은 고양이 떼를 모으는 일에 비유되어 왔다. (중략) 떼 지어 몰려다니지는 않는다 해도, 수많은 ‘고양이’가 모이면 아주 시끄러워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일단 고양이 이야기가 나왔다는 점에서 벌써 재미있다. 이 정도로 단호하고 설득력 있는 태도라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빨리 증명해줄 것 같지만, 저자는 아인슈타인이 유신론자로 오해받아온 역사를 자세히 서술하며 뜸을 들인다. 그리고 “나는 일부러 분노를 자극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것들을 다룰 때보다 더 부드럽게 종교를 다룬답시고 미적지근하게 글을 전개해 나가지도 않을 것이다”, “신은 망상이다. 그리고 앞으로 드러나겠지만, 그것은 유해한 망상이다”, “나는 어디에선가 날조되었거나 언젠가 날조될 초자연적인 모든 것, 모든 신들을 공격한다”라고 계속해서 겁만 준다. 저자가 본격적으로 유신론자들을 공격하기 전에, 읽는 사람이 먼저 지쳐서 나가떨어질 위험이 상당하다.
활용: 품에 꼭 안고 다니면서 호신용으로 사용하자. 길거리에서 “도를 아십니까”라고 접근하는 사람을 만났을 경우, 조용히 이 책을 보여주면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 925p

이상: 스티브 잡스는 한 시대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며, 심지어 지난 2011년 타계했다. 그의 사망을 애도하며 생애를 되짚어보기에 이 책만 한 자료가 없다. 더욱이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맥북 등을 쓰고 있다면, 적어도 이 물건들을 어떤 사람이 만들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철학이나 역사에 관한 딱딱한 이야기가 아니라, 흥미로운 업적을 남긴 사람에 관한 글이기 때문에 술술 읽힐 것이다.
현실:티브 잡스의 시시콜콜한 에피소드를 그야말로 집대성했다. 그래서 지겹진 않지만, 읽을수록 잡스라는 사람에 대한 호감이 감소할 수 있다. 특히 본인 입으로 “어릴 때 부모님보다 내가 똑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하거나, 여자친구와 동거하겠다고 아버지와 다툰 후 집을 나갔지만 차 폭발 때문에 다시 아버지한테 연락했다는 부분에서는 절로 혀를 차게 된다. 그래 놓고 대학교에 입학할 땐 무슨 놈의 반항심 때문인지 부모님한테 작별인사도 안 했단다. 가장 충격적인 건 당근이나 사과만 먹으면서 몇 주를 버텼다는 잡스의 식습관이다. 먹는 것까진 그렇다 쳐도, 채식주의 습관이 해로운 점액뿐 아니라 체취도 막아준다고 믿어서 정기적으로 샤워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고. 주변 사람들이 겪었을 후각적 고통을 상상하며 조용히 책을 덮게 된다.
활용: 블랙앤화이트 톤으로 디자인되어 있어 세련돼 보인다. 아이맥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줄 데스크 소품으로 사용하자. 그냥 놓아두기만 하면 된다.

<코스모스>
칼 세이건 / 719p

이상: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방송한 <코스모스> 다큐멘터리와 함께 보기에 유용하다. 한국의 과학자들이 청소년에게 권하는 과학도서 1위라고 하니, 성인이라면 누구든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영상을 미리 상상해봐도 좋겠다.
현실: 별의 개수부터 헷갈릴 수 있다. 10^11X10^11만큼 별이 있다는데, 어렵지 않은 수식이지만 너무 큰 단위 때문에 지레 겁먹게 된다. “이제 우리의 여행은 지구로부터 200만 광년”이라는 설명도 나오지만, 그게 어느 정도인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에라토스테네스라는 사람이 알아낸 태양의 둘레를 측정하는 방법도 무슨 원리인지 이해할 수 없고, 태양과 그림자의 관계에 관한 그림도 괜히 복잡해 보인다. 춘분점과 추분점의 세차 운동, 대기의 굴절 현상, 퀘이서, 펄서, 폭발 은하, 공생별, 격변 변광성, 엑스선 광원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아주 약간 남아 있던 독서 의욕까지 바닥나게 된다. 지쳐서 중간중간 삽입된 이미지를 보려 해도, 흥이 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사진이 아니라 대부분은 그림이기 때문이다. 역시 TV 다큐멘터리를 보는 게 낫다.
활용: 언젠가는 <코스모스> TV 시리즈가 또 리메이크될지 모른다. 그날을 기약하며 책장 한구석에 얌전히 꽂아두도록 한다.

<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 / 820p

이상: 현재와 미래의 경제 상황에 대해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라고 한다. 게다가 저자인 토마 피케티는 내한 강연까지 한 바 있다. 어디 가서 ‘피케티가 티셔츠 종류를 가리키는 건 줄 알았다’는 말은 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읽어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총 16장으로 구성돼 있어 하루에 1장씩 읽을 경우 약 2주 만에 독파 가능.
현실: “과거에 그랬듯이 오늘날에도 동일한 연령집단 내에서도 불평등은 존재하며, 상속재산은 21세기 초에도 발자크 소설의 고리오 영감이 살던 시대와 마찬가지로 결정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는 문장은 이 자체로 책 내용의 요약인 것 같아 벌써 중요한 사실을 알아낸 듯 뿌듯해진다. 그러나 곧 그래프와 수식의 향연이 펼쳐진다. 미국 소득불평등 그래프, r(연평균 자본수익률)>g(경제성장률), 국민소득=국내생산+해외순소득, 국민소득=자본소득+노동소득, ‘자본주의의 제1기본 법칙: α=rxβ’ 기타 등등이 마구 쏟아지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려운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수학책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는 순간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겨우 1장을 읽고 있을 뿐인데 말이다. 저자는 서장에서 “나는 수학에 별로 정통하지 않은 독자들이 참을성을 갖기를, 그리고 즉각 책을 덮어버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지만… 미안하다.
활용: 이 책을 다 읽을 필요는 없다. r>g라는 부등식만 외워두자. <21세기 자본>에 대해 이야기할 일이 있을 땐, “그 책의 핵심은 r>g이지!”라고만 말해도 충분하다.

교정.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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