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드>, 거울처럼 보는 연극

2014.10.16
영화 <향수>의 벤 위쇼와 <한니발>의 휴 댄시가 2010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라 화제가 된 작품. 두 명의 동성애자와 한 명의 이성애자가 1958년과 2014년을 오가며 셋의 관계에 집중한 작품. 연극 <프라이드>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하지만 <프라이드>는 보이는 이야기 뒤로 더 많은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다. 이 연극에는 갇혀 있던 삶을 박차고 나오는 한 남자의 처절한 고백과, 함께 있지만 언제나 외로움을 느끼는 여자의 눈물과, 정처 없이 떠도는 또 다른 남자의 공허함이 있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깊은 고뇌와 혼란 속에서 이룩해낸 역사의 환희가 있다. 연극열전5의 두 번째 작품으로 선정되어 높은 유료객석 점유율을 기록 중인 <프라이드>를 공연 칼럼니스트 이유진과 함께 이야기했다.
※ 10월부터는 ‘월간 뮤지컬’이 ‘극장전’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어 격주로 뮤지컬과 연극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프라이드> 
라이선스 초연│2014.08.16.~11.09│아트원씨어터 2관 
원작: 알렉시 캠벨│각색: 지이선│연출: 김동연│주요 배우: 이명행·정상윤(필립), 박은석·오종혁(올리버), 김소진·김지현(실비아), 최대훈·김종구(피터)
줄거리: 1958년과 2014년을 관통하며 두 남자와 한 여자가 이룩해낸 사랑에 대한 정의. 


[한눈에 본 연극]
장경진: ★★★★ 영국과 게이를 넘어 나에게 닿은 목소리.
<프라이드>는 그동안 성소수자를 다룬 작품 중에서도 수위가 높고 정치적이다. 하지만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과 국내 초연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유료점유율을 기록한 데는 한국화 작업의 힘이 컸다. 큰 틀은 바꾸지 않되 두 시대를 연결하는 것으로 차이코프스키, 라벨 등 동성애 뮤지션들의 음악을 이용하거나, 1958년에만 사용된 존댓말로 갇혀 있는 인물의 삶을 적확하게 그려낸다. 그중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실비아다. 실비아는 성소수자를 낯설어하는 이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관찰자로 설정되어 있지만, 그것을 넘어 자신의 외로움을 드러내고 아픔을 딛고 일어나 결국 두 남자의 삶 전체에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관객들은 실비아를 통해 태도를 배우고, 필립과 올리버를 통해 내면을 바라보는 것의 어려움과 행복을 느끼고, 결국 ‘동행’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이유진: ★★★★ 켜켜이 쌓아올린 상처의 역사가 빚어낸 시(詩)적 성취.
<프라이드>는 태도가 좋은 작품이다. 사회적 이슈나 역사를 다루는 경우, 파격적인 형식으로 혹은 직설적인 대사로 시위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프라이드>는 시적인 언어로 예술적 성취를 이뤄낸다. 좋은 작가는 자기 이야기를 하되 치열함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고고한 신념의 작가를 만나 너무 반가웠다. 개인의 역사를 통해 시대를 보여주는 대부분의 극들이 캐릭터를 흔드는 반면, <프라이드>는 50여 년의 세월 동안 올곧게 자신을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을 비추면서 주변의 변화를 보여준다. 투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구조로 극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고전의 조건을 갖췄다. 좋은 대사가 많지만, 그 대사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더 곱씹다 보면 이 연극이 얼마나 어른 같은 작품인지를 알게 될 거다. 개인의 투쟁으로 역사를 이룬 작가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넓은 눈으로 본 연극]
이유진: 뮤지컬은 쇼뮤지컬이 아니어도 쇼적인 부분을 담고 있기 때문에 연출의 영역이 중요하다. 하지만 대화의 힘으로 가는 연극은 작가의 비중이 더 높다. <프라이드>는 좋은 텍스트에 집중하기 위해 본인의 스타일이 뚜렷하기보다는 배우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좋고 슬픔을 품은 인물을 다루는 데 탁월한 김동연 연출을 선택해 좋은 합을 보여준다. 특히 서로 다른 두 시대를 보여주는 경우 장치적으로 바꿔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기 마련인데, 극의 흐름을 해치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움을 보여주는 연출이 효과적이었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집중한 흔적이 보이고, 그동안 대중적인 작품을 주로 선정해왔던 ‘연극열전’이 초심으로 돌아간 느낌이 있다.

장경진: <프라이드>는 세트나 동선, 조명의 변화가 다이나믹하지 않기 때문에 순간 집중력을 놓치면 굉장히 밋밋하고 지루해질 수 있는 극이다. 관객의 집중도를 잡아주는 것은 결국 최종 플레이어인 배우인 셈인데, 오랫동안 연극 무대를 지켜온 이명행은 이 작품으로 관객의 신뢰를 더 굳건히 다진다. 깨끗한 발성과 따뜻한 목소리는 필립의 다정다감함을 그려내고, 명확한 딕션과 호흡조절은 대사를 허공에 날리지 않고 관객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시킨다. 이명행이야말로 스스로의 역사를 증명한 느낌이랄까.

사진제공. 연극열전│교정.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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